예의가 아닙니다, '군기'입니다.

-3편 융합문화예술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운동재활복지학과에만 군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강도와 형태가 다르지만 타 학과들에도 군기 문화가 잔존해있음을 다수의 제보로 확인할 수 있었다. 주로 선후배 간 위계 관계를 확립하려 하거나, 과 행사에 참여할 것을 강권하는 식이다.

 

 

 

(1) 과에 들어왔으면 서로서로 다 알고 지내야지
    - 예절을 빙자한 군기

 


문화예술경영학과 신입생 대표가 재학생에게 보낸 문자

 

   문화예술경영학과(이하 문예경) 학우들의 제보에 의하면, 신입생 학년 대표와 부대표는 모든 선배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문자를 돌려야 한다. 재학생들에게 개인정보를 넘겨도 되겠냐는 별도의 동의 절차는 없었다. 또한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받는 선배들 이름을 하나하나 삽입, 비슷한 내용의 문자를 고쳐서 몇 십 번을 전송해야 한다. 과거에는 문예경 뿐 아니라 융합문화예술대학(이하 융대) 소속 여러 학과 신입생이 과 선배 모두에게 문자를 돌려야 했으며, 다음 해에는 본인들도 마찬가지로 신입생들의 문자를 받고 연락처를 저장해야만 했다. 개별적으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입학과 동시에 과 모든 사람들과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보자들은 입을 모아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는 의견을 냈다.

 

  연락처 교환뿐만이 아니다. 군기 문화가 있는 과에서는 후배가 선배와 마주칠 때마다 반드시 인사를 해야 한다. 운정그린캠퍼스 부근에서 융대 모 과 선배가 후배들을 세워놓고 인사와 소개를 듣다, 학번이 더 높은 선배가 지나가자 달려가서 인사하라고 시켰다는 목격담이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운캠 1층 강당 앞에서 일렬로 서서 선배에게 인사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는 제보도 있었다.

 

 

 

재학생에게서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들어온 단체 채팅방

(아띠는 짝선배를 이르는 말)

이때 실제로 신입생들은 집합을 당할 뻔 했다.

 

   만약 선배가 인사를 받지 못하고 지나쳤거나, 인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해당 학번 과대에게 ㅇㅇ학번 인사 잘 안하더라, 똑바로 하라며 지적을 넣는 경우가 상당했다.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고학번들이 인사 관련 지적을 하는 경우는 흔하고, 문예경에서는 인사 문제로 집합을 시키려다 기존 재학생의 제지로 무산된 적도 있다. 운캠 앞 편의점에서 너희는 어떻게 전공 실기 선배 얼굴도 못 알아보고 인사를 안 하느냐며 혼나는 무용과 학생들이 목격된 적도 있다. 선배와 같은 수업을 듣는 경우에도 수업을 듣는 동기가 모두 모여 인사를 해야 한다.

 

  인사를 하지 못하고 지나치면 선배들에게서 저런 훈계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신입생, 저학년들은 필사적으로 지나가는 선배들을 놓치지 않고자 노력한다. 선배의 말대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서라도 얼굴을 익히고, 확실치 않지만 학과 선배 같다면 달려가서 인사한다. ‘모르는 과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아서 당황했다는 경험담들이 꾸준히 전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선배를 마주칠 때만 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선배에게 연락을 할 때도 항상 긴장을 해야 한다. 문예경의 경우 선배에게 연락을 드릴 때는 무조건 문자를 드려야 하며,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하려 할 때도 먼저 문자를 보내야 한다. 대화를 끝내는 것도 무조건 후배가 한다. 생활과학대학 모 과의 경우 몇 년 전 타 학교에서 화제가 되었던 전화 예절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배가 전화를 받으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는 ㅇㅇ학과 ㅇㅇ학번 ㅇㅇㅇ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라고 말하라며 신입생들에게 문장을 외우게 하는 식이다.

 

 

 (2) 학과 행사 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 행사 참여 강요


 

신입생 참여가 미진하자 특강 날짜를 바꾸는 단체 채팅 캡쳐

 

 

  학과 사무실과 과 학생회에서는 학과 행사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모이도록 독려한다. 선후배 간 교류의 장을 제공해 친목을 다지기 위함이다. 하지만 군기 문화가 있는 과의 경우 학과 행사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기 보다는 강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문예경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 2학년은 특강에 필참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특별한 사유가 없어왕복 2시간이 넘는 통학 시간을 거쳐 특강에 참석한 경우도 있었다. 사유가 있다면 학생회에게 말해야 한다. 불참 의사를 밝히면 과 학생회장에게 개인적인 연락이 와 직접 사유를 설명해야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여대생 투신 미스테리 사라진 14분에서 캡쳐

 

  신입생들은 군기가 만든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있는 집단이자 주된 필참대상이다. 올해 한 특강의 경우, 문예경 신입생들이 대부분 참여가 불가능하자 학생회 측에서는 날짜를 바꿨다. 기존 재학생 또한 1학년 시절 제비뽑기로 사람을 뽑아 인원을 채운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참석 인원이 차지 않으면 더 강한 압박이 들어온다. 학년 대표와 부대표가 대표로 혼나는 것은 기본, 학년 전체가 혼나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예경 엠티도 아닌 융대 단과대 엠티 참석이 미진하자, 당시 문예경 신입생들은 수업이 끝나고 학년 전체가 남아 과 학생회장에게 훈계를 들었다. 이후에는 결국 집합을 당했다.

 

  집합 당시 과 학생회장과 선배들은 1학년들을 모아놓고 융대 단대 전체에서 문예경이 제일 참여율이 낮다. 참여 인원을 더 늘려라. 알바 때문에 못 간다고 한 사람들이 있던데 학교 행사가 중요하냐, 알바가 중요하냐. 00이 너는 고등학교 때 모델과라고 했었잖아. 거긴 여기보다 더 할 거 아니야. 2학년들도 가는데 너희들이 제일 적은 게 말이 되니?” 등의 훈계를 했다. 올해는 단과대 학생회가 성립되지 못해 융대 엠티 참가 관련 압박은 줄었지만, 여전히 문예경 학생회는 되도록 참여하라며 불참자의 경우 그 사유를 파악하고자 했다. 단과대 학생회비의 경우에도 왜 이리 낸 인원이 적으냐며 납부를 요구해 필수로 내야하는 것으로 착각한 학생들도 많았다.

 

  제보자들은 몇 차례 융대 내부에서 폭로가 나왔듯이 아직도 군기를 잡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융대는 신생 단과대학이다. 그렇다면 이 군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 융대 학생에게서 그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융대에서 가장 먼저 생긴 과는 무용과다. 하지만, 무용과가 아예 신설된 게 아니라 스포츠레저학과에서 분과되었기 때문에 당시 스포츠레저학과 사람들이 무용과 학생들의 군기를 잡았다. 이듬해 나머지 네 학과(실용음악, 미디어영상연기, 문화예술경영, 메이크업디자인)도 스포츠레저학과와 무용과 학생들에게 군기가 잡혔다.’ , 군기가 이미 존재하는 과에서 옮겨진것이다.

 

  작년 무용과 군기 폭로 사건처럼 이전에도 융대 내에서 군기에 항의했던 사람이 있었다. 위 융대 학생은 미디어영상연기과 13학번 분이었는데, 학부모를 통해 신고를 넣어 총장이 모든 융대 교수들과 면담한 후로 그나마 강도가 줄었다. 그 전에는 집합도 빈번하게 이뤄졌으며 신체적 폭력을 행한 과도 있었고, 언어폭력의 강도도 높았다고 말했다. 학번이 비교적 낮은 제보자들도 예전에는 훨씬 강도가 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2007년 한겨레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성신여대 학생들도 학내 군기문화에 대해 제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0년대에 들어서는 거의 매년마다 학내 군기문화가 폭로되고 있다. 군기의 강도는 약해졌을지라도, 완벽한 근절은 되지 않는 것이다. 외부에서 지적이 나오면, 명찰을 달아 타 학과 학생에게는 인사하지 않게 하는 식으로 해당 학과 학생과 타 과 학생들을 철저히 분리시킨다. 자체 해결을 약속해 놓고서 외부의 시선이 수그러들면 제보 학생을 색출하려는 시도를 한다. 군기 문화가 음성화 되는 양상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여대생 투신 미스테리 사라진 14분에서 캡쳐

 

   군기문화는 결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수들과 학교는 학생들을 관리·감독하고 피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책임과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사건이 외부 언론을 통해 알려져야만 그제서야 조치를 취하겠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실제로 폭력을 행한 당사자에게만 징계를 주고, 학과나 단대 그리고 전체 학교 대상 실태조사와 후속조치 등은 하지 않는다. 일부 선배가 군기를 잡고, 나머지 선배는 침묵하고, 조교와 교수는 이를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가운데 후배들은 선배의 졸업만을 바라면서 버텨야 한다. 이를 아는 교수와 선배들은 졸업해도 어차피 네가 이 전공을 업으로 삼아 살 거라면 나와 마주치게 될 것이라며 그러니 똑바로 해라는 조롱 및 협박을 하기도 한다.

 

  취재과정에서 성신퍼블리카는 제보자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제보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공통된 질문이 있었다. ‘타 학과는 이렇지 않은 건가요?’였다. 같은 대학에, 같은 시기에 입학했어도 대다수의 학우들이 겪은 캠퍼스 생활과 그들이 겪은 생활은 매우 달랐다. 한 제보자는 그동안은 익숙해져서 몰랐는데, 지금 대화하면서 생각해보니까 이것도 다 이상한 거였네요. 다른 과는 그렇지 않은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을 그런 분위기 속에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해당 학과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타과 학생들에 비해 너무나 달랐다.

 

  이제 우리 모두는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주변에서 후배들에게 선후배’, ‘단합이라는 명목으로 인격적인 모독과 강압을 가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이를 보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말려야 한다. 교수진과 학교 측도 이런 전근대적인 문화에 경각심을 가지고 근절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210조의 내용이다. 성신여자대학교의 모든 구성원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누구나 평등하다. 그 누구도 학번과 나이를 빌미로 타인을 깎아내릴 수 없다. 누구도 타인의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이런 미개한 문화가 완전히 근절되고 모두가 동등하게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단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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