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동아리 탐구>

 

학교를 페미니즘으로 물들이고 싶다

- 성신여자대학교 페미니즘동아리 ‘NOON’ 인터뷰 -

 

 

- 16년도 10월에 이루어진 인터뷰입니다.

 

지난 1012일 퍼블리카는 성신여대 앞 카페에서 본교 페미니즘 동아리 ‘NOON’과 인터뷰를 가졌다. 보다 다양하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NOON의 회원들의 호칭은 각각 A, B, C, D로 대신했다. 퍼블리카는 이하 로 표기.

 

 

1. 동아리를 만들게 된 시기는 언제이며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한 'NOON'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뭔가요?

 

D : 동아리 시작은 저널 동아리였어요. 현재까지 남아있는 창설 멤버는 없지만, 2013년 겨울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준비 기간을 가졌다고 전해 들었어요. 창설 준비와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성신여대 학우들의 인식 조사도 했었고요. 여대인데도 여성주의 동아리가 없다는 게 계기였다고 해요. NOON정오(noon)'가 오전과 오후가 공존하는 시간이듯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경계, 사회와 여성의 경계가 지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는 이름입니다.

 

: 그럼 언제부터 동아리의 성격이 바뀐 건가요?

 

D : 저널 모임이라 글을 쓰려면 준비할 게 너무 많았고 무거운 느낌도 들어서 가볍고 쉽게 바꿔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2015년 하반기부턴 독서토론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 위주로 진행되고 있죠.

 

 

 

 

2. 모두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살면서 느껴왔던(특히 성신 교내에서) 성차별 사례들이 있었거나, 또는 그것을 성차별로 인식하고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B : 저는 '안전이별'에 실패했어요. 이런 게 개개인의 문제일 뿐인가 생각하던 즈음 메르스 갤러리사건이 터졌어요. 이때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제가 각성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D : 맞아, 그때 메갤이 플랫폼이 된 것 같아.

B : 그렇지. SNS가 하나의 계기가 됐지.

 

 

: A분은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 저희 집은 딸만 셋이예요. 저는 그 중 첫째고요. 집안에 가부장적인 문화가 깔려 있었어요. 제사문제 같이, 사소한 것부터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저 또한 몰카가 직접적인 (각성) 계기입니다. 가해자는 기숙사 룸메이트였어요.

 

: 그럼 가해자가 여성, 그것도 같은 학우였다는 건가요?

A : 본인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제 속옷만 입은 사진을 올려놨더라고요. 그래서 고소를 했어요. 결국 유죄판결이 났구요.

 

: 대체 그랬던 이유가 뭔가요?

A : 제가 청소를 하라고 말한 게 싫었대요. 그래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제 얼굴은 찍히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데 피의자가 나중에) 경찰에 말하기를 나는 성소수자고, 그 사진은 내가 사귀는 사람의 몸이라고 하더라고요. 웃기는 게 누가 봐도 본인 몸은 본인이 알잖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이러한 사건을 제가 직접 마주하다보니, 여성의 몸으로 협박하고 권력처럼 남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에 너무 만연해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어요.

 

: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그대로 보고 흡수했다고 볼 수 있네요. 그런데 B씨는 어떻게 페미니즘 공부를 했나요? SNS를 통해서?

B : 아니요. 저는 SNS 영향은 거의 안 받았어요.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페미통신 연재글과 영화나 책, 국문과 현대문학읽기 수업에서 국내 페미니즘 문학과 그 계보를 읽으며 페미니즘을 익혔어요.

 

: 자 그럼 C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C : 반대로 저희 집은 저 빼고 다 아들이에요. 저희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일찍 이혼하셔서, 현재는 아버지와 저와 남동생. 이렇게 셋이 살아요. 사촌 쪽도 다 남자밖에 없어요. 친할머니가 거의 유일한 여성이신데 가부장의 끝을 달리시죠. 어머니가 그래서 이혼을 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이혼 후부터 엄마가 없으니 네가 엄마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거의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던 것 같아요.

 

: 그때 몇 살이었어요?

C :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B : 초등학교 4학년한테?

: 라면도 못 끓이겠다.

 

C : 그때부터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집안일을 하는 건 별 상관없었어요. 아빠는 일을 나가니까 저라도 해야죠. 하지만 전 동생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면 아빠는 항상 남자니까 안 된다는 식으로 넘기고, ‘넌 그렇게 동생을 시키고 싶냐면서 제가 잘못되고,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몰기 일쑤였어요. 집안의 불합리함을 느끼며 자라서, 우리 집만 이런가 보다 했는데...

 

: (여성이라 가사 전담을 요구하는) 사회가 사실 이상한 거 아닌가 싶어요.

B : 비정상이 정상 같은 사회야.

 

C : 집안에서 당했던 차별과 중·고등학생 때 은근히 존재하는 성차별을 보면서 부당하다고 생각해왔어요. 지금은 (비교적)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해도 지지를 해주지만 예전에는 그런 게 지배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잖아요.

D: 그렇지. 최근에나 이렇게 바뀐 거지.

 

C: 예전에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성평등을 전제로 깔고는 있지만, 추가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제대로 공부를 해본 사람만이 페미니스트이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죠. 예전에 TV에서 연예인이 전 성평등주의자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이런 얘기도 했잖아요.

 

D: 맞아 뭐 젠더 이퀄리즘? 이러더라?

 

B: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말 안하죠. 젠더 이퀄리즘이라고 하죠.’ 근데 오바마가 나와서 들고 있는 플랜카드엔 아이 엠 페미니스트웃긴 거예요. 페미니즘도 성평등이 전제로 깔린건데...

 

C: 예전에는 정치적 진보관에 왜곡되지 않은 여성관도 깔려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은 일부분이고요. 저도 처음엔 온건한 페미니스트였어요.

 

: 그럼 작년부터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건가요?

C: ‘메르스 갤러리장동민 사건이 터지고 난 후를 말씀하시는 거죠? 초기에는 그 흐름에 편승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미러링같은 급진적인 운동에 대한 사회의 격한 반응을 보며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들은 헛짓거리였던 것 같은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물론 그런 급진적인 행동을 전에도 할 수는 있었어요.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회가 바뀔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거죠. 이런 사건들이 각성까지는 모르겠지만 인식의 전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복학하고 나서 학교에 페미니즘 분위기가 생겨서 좋았어요. 최근까지도 궁극적인 성차별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요즘에는 회의감이 드네요.

 

 

: D씨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D: 저희 집은 딸이 둘인데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딸이 최고다라는 분위기예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난이 심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엄마가 네가 먼저 주먹을 날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걔한테 주먹을 날렸죠. 전 정말 조용했던 애였는데, 주먹을 날리니까 교실이 뒤집어졌어요. 물론 제가 그 남자애보다 훨씬 많이 맞았죠. (웃음)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아무도 저에게 시비를 걸진 않았어요. 그때 이후로 제 성격도 활발해졌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한 직접적인 계기는 정말 최근이에요. ‘장동민 사건이 결정적이었어요.

 

B: 그때 엄청 많은 여성분들이 페미니즘에 눈을 뜨셨죠.

 

D: 저는 비상식적인 장동민의 발언에 대한 대중의 비상식적인 반응이 더 충격적이었어요. ‘그럴 수도 있지’, ‘식스맨 시키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농담으로 하는 얘기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냐뭐 이런 댓글들? 이때부터 사회 전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페북의 상남자만화라는 만화를 보면서 충격을 받아서, 문제가 있구나하고 인식했죠. (B. 그거랑 이주용!) 그런데 그런 게시글의 댓글들이 더 이해가 안가요. 너무 심각한 수준이에요.

 

B: 거기에 막 '웃기다', ‘공감된다이런 댓글들이 많이 달려있죠.

 

D: 20151학기에 국민대 학점교류를 가서 페미니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일상생활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들을 학문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현대사회와 여성이라는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인권에 대해 많은 고찰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혐오에 대해서 조별과제로 발표도 했었는데, 그 이후에 메르스 갤러리사건이 터지더라고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이 중 그나마 '무난한' 과정을 거치셨네요.

D: 그렇다고 저도 성차별을 당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때는 그게 잘못된 것인지를 몰랐었을 뿐이죠.

 

 

 

3. 에브리타임을 하는 학우들에게는 모 회원 분이 하시는 페미통신으로 익숙할 텐데, 이건 개인이 하는 건가요?

 

D : 제 닉네임이 그거예요. 개인 차원에서 하는 활동이고 동아리 차원에서 하는 건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학우들과 공유하고 싶은 콘텐츠를 외부에서 가져와서 게시해요. 사실 예전에는 에타에서도 몰카나 성폭력에 관련된 게시물을 올리면, ‘피해여성이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반응들이 꽤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많이 답답했죠.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시는 분들도 다른 차원에선 피해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페미통신활동 이후에 다른 학우 분들도 콘텐츠를 가져오기 시작하며 이러한 페미니즘에 대한 공론이 점점 더 활성화됐고요. 특히 학우 분들이 제가 게시하는 글을 잘 읽고 있다고 해주실 때마다 고마움을 느껴요. 페미니스트들의 글이 하나라도 더 퍼지는 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4. 올해 대동제에서 페미니즘 굿즈를 파는 활동을 하셨던데, 참여하게 된 경위와 소감은 뭐였나요?

 

D : ‘우리도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1학기 모임부터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죠. 게임이나 이벤트 등을 통해 페미니즘을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학우들이 눈 앞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음을 느낄 수 있길 바랐습니다. 굿즈도 여러 안이 있었는데, 원래는 투명 생리대 파우치를 제작하려고 했어요. 그때 당시에 노브라 논란과 같이 관련 이슈가 대두됐었거든요. 생리는 숨겨야 할 것으로 여기는 생리 터부도 이와 연관이 있죠. 이런 터부에 대항해서 투명한 생리대 파우치에 생리는 숨길 것이 아니다.’란 문구를 새길 생각이었어요. 근데 제작 단위가 크고 인쇄비도 비싸서 접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거울이었다. 문구를 ‘Just For Me',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등으로 새겼는데요, 학우분들이 이걸 보고 무슨 의미냐고 여쭤보시기도 했어요.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하는 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란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거죠. 무엇보다 학우들이랑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A : 우리 스스로 뭔가 제작하는 것에도 의의가 있었어요. 우리가 주장하는 것들을 굿즈로 만들어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는 일이니까요. 이 밖에도 데이트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보다 올바른 대처를 소망하며 관련 소책자들을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D : 이건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아서 하게 됐어요. 여자의 잘못이 아닌데 대처라고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현실이니까요. 이런 것을 보면 언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시로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초반에는 단어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점차 이에 대한 여성들의 대화가 많아지고 사회적으로 부각되며 (단어와 성희롱 실태가) 떠올랐죠. 최근 시선강간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도 매우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런데서 위협을 느끼는 게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이기 때문이잖아요. 불편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라 지정해서 부를 단어가 없었는데 새롭게 생겼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나눌 담론이 늘어나니까.

 

: 동아리가 밖으로 나가 굿즈를 팔며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참 의의가 있는 활동인 것 같네요.

 

D : 굿즈를 소비하고, 또 소유한다는 것은 굿즈에 대한 의미를 지지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5. 판매했던 굿즈에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라는 문구를 사용하셨는데. 사실 해당 문구는 옹달샘 여혐 논란때 발견된 개그맨 장동민의 과거 발언을 비꼬는 것이기도 하죠. 그 논란을 시작한 메갈을 포함해 한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어요.

 

 

D :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낸다는 게 고무적이에요. 우리가 인터넷 세대인 덕도 큰 것 같고. 바람이 불 때 돛 달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소라넷을 비롯해 여성혐오 이슈들이 터질 때마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모인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이 흩어져 있을 때는 (사회가) 목소리를 듣기 힘들잖아요. 미러링이 폭력적인 것은 그 원본이 폭력적이기 때문이죠. 거울을 깬다고 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A : 여성 연대가 생겼다는 것을 크게 쳐줘야 해요. 그 전엔 전무했으니까. 최근엔 경제력 있는 여성들도 합류해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어요. 방향성을 잘 찾지 못해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 줘야 할 것 같네요.

 

D : ‘메갈리안이라는 말이 무의미 해졌다고 할 정도잖아요. 많은 여성들이 한남과 시선강간이라는 말에 동감하고 있으니까.

 

 

6.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때는 언제인가요?

 

C. 페미니즘에 대해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동아리에 들어왔기 때문에, 확실히 함께 공부하는 편이 혼자서 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토론하면서 내가 내리지 못한 답을 다른 분이 내주시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되짚어주기도 하면서요.

 

D. 저는 개인적으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목소리를 많이 내는 편이예요. 100명이 침묵할 때 1명이 목소리를 내는 것 보다, 20명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주위사람들이 자문을 많이 구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보람을 느껴요.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주위 분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물어볼 때는 내가 옳게 가르쳐주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해 조심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뿌듯하기도 합니다.

 

A. 주위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곤 해요. 굳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는 얘기도 많이 듣지만,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어오니까 정체성이 더 공고해지는 것 같아 좋아요.

 

 

7. 동아리 NOON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D. 성평등의식 고취가 가장 먼저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엔, 페미니즘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미나를 하다 보니 많은 문의가 와요. ‘혹시 어렵지 않을까요?’라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사실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배우는 책들이 어렵지도 않구요. 쉽고 재밌게 페미니즘을 얘기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에 대한 희망찬 얘기가 많이 오갔으면 좋겠어요. 학교를 페미니즘으로 물들이고 싶어요.

 

C. 주위 사람들에게 본인들이 고통을 합리화 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어요.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알고, 또 거기에 대해 눈을 뜨면 페미니즘을 더 잘 알게 되니까요. 한정되게는 교내의 학우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네요.

 

A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주위 친구들이 좀 더 예민해 졌으면 좋겠어요. , 내 삶의 방식을 전반적으로 바꾸고 싶어요.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앞으로 결혼을 하더라도 나의 삶의 방식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나부터도 내면의 차별성을 깨부시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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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카 기자들의 수다- Q&A편>

 * 16년도에 저희 게시글로 적어주신 질문댓글들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

참여해주신 학우분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Q1. 성신퍼블리카 이름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A : 미국의 온라인 탐사보도 언론 프로 퍼블리카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EBS 지식채널e 에서 한번 프로 퍼블리카를 다룬 적이 있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을 한번 보시면 저희가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지 이해하기 쉬우실 거에요!

핑구: 그 영상링크를 그냥 걸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차차: 혹시 저작권 문제가 될까 봐….ㅎㅎ

 

Q2. 학교로부터 연락이 온 적이 있나요?

차차: 그때 소통소톡으로 연락 온 것이 처음이었죠?.

엄브릿지: 근데 자료를 잘 제공 해주셨으면..더 좋겠다 싶고ㅠㅠ

그알: 우리한테 줄 리가 없지 공식 언론도 아니니까ㅠㅠ. 우리를 프레스로 인정 안 하니까ㅋㅋㅋ

핑구: 그치 우리는 그들에게 그저 찌라시일뿐….

차차 : 그 이후로 저희가 알아서 더더욱 잘 꼼꼼히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알….

그알: 그래도 그 후에 취업계 관련 공고문 다 게시판에 붙여졌잖아.

핑구: 맞아 차차가 쏘아올린 작은 공….

 

Q3. 퍼블리카에게 심화진총장이란?

엄브릿지: 나의 끝없는 창작의 샘

차차: 심화진총장이란나를 망치러 온나의

그알: 어 나 이거 어디서 들었는데?

핑구: 은교 아니야?

엄브릿지: 은교아니야 아가씨야!!

핑구: 아 그래 미안ㅋㅋㅋㅋ

차차: 나의 기사를 망치러 온나의 구원자나의 화

핑구: 사실 나에게 심화진총장은내가 여기에 들어온 이유였죠.

차차: 약간 페미니즘에서 장동민이 이러한 존재 아닐까요계속 일깨워주는...

엄브릿지: 애교심이 막 생깁니다

그알: 만약 학교가 조용했으면 우리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Q4.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그알: 지금 이 순간.. 아니 11월ㅋㅋㅋ

핑구: 아니 이상하게 맨날 일이 시험기간에 터져;;

차차: 중간고사도 말아먹고기말고사도 말아먹고

핑구: 어디든 취재현장을 가야 하는 거아 특히 재판하면 거기까지 1시간 반 걸리는데ㅠㅠ

아 또 시험기간인데 간담회도 가야 해서 그때도 힘들었어

그알: 아 학교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불러주지 않고, 정보도 제공도 안해주니까그것도 힘들어

차차: 아 장소 없는 것도! 회의실 없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그래서 가끔 저의 자취방을 이용하기도 하죠

 

Q5. 필명을 따로 사용하시는 것 같던데, 기자명의 뜻이 무엇인가요?

그알: 나는 그냥 그것이 알고싶다. 우리 학교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핑구: 나는 여기 들어올 때쯤 생긴 별명이 핑구여서 그냥 핑구라 했어. 걸음걸이가 핑구같대.

차차: 좋아하는 인디밴드 기타리스트 별명이 차차예요.

엄브릿지: 저는 뭐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것일 것 같네요!^^.

 

Q6.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나요?

A : 저희는 없어요ㅎㅅㅎ 아 저희 초창기엔 잠시 있었죠

 

 

Q7. 자금난이 있진 않으신가요?

그알: 만성적인 자금난

핑구: 한 달에 만원씩발행비내고

차차: 항상 없어서 이제 자금난인지도 모르겠어

그알: 그나마 있는 자금도 삼겹살로 탕진하고

차차 : 엉생 맛있어

 

Q8.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은?

차차: 최근에는 취업계 대자보 붙었을 때!ㅋㅋㅋㅋ

엄브릿지: 에타에서 우리 둥기둥기해주실 때

핑구: 아 근데 좀 부끄럽지 않아?ㅋㅋ 가끔 퍼블리카가 성신여대의 jtbc. ‘그것이 알고싶다다라는 얘기 나올 때!

차차: 우리가 뭐라고ㅠ 더 잘할게요…ㅠㅠ

그알: 그래도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다같이: 우리가 더 열심히 할게요….!!!

 

Q9. 몇 명이 있나요?

차차: 현재는…4명이죠?

그알: 밝혀야해?ㅋㅋㅋ

차차: 그럼 4~5명이라 할까요?ㅋㅋㅋㅋㅋ

핑구: 저희 힘들어요많이 들어와주세요.

차차: 신입부원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ㅠㅠ

엄브릿지: 해치지 않아요와주세요

핑구: 게다가 한명은 유학가고 한명은 졸업한다고요….ㅠㅠ

 

 

Q10. 지금 최대의 관심사는?

차차, 핑구: 우리 오빠들… 1113집 컴백사랑해요 오빠ㅠㅠㅠㅠ

엄브릿지: 미카의 남친과 그의 결혼?

그알: 난 그냥당장 먹고 살거취직….

(다함께 말을 잇지 못한다)

갑작스레 등장한 취직얘기로 퍼블리카는 침울해졌다고 한다

 

 

Q.11 졸업하신 선배분들과의 교류가 있나요?

A : 저번 일(?)처럼 퍼블리카에 직접적인 일이 생겼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주십니다.

 

 

Q.12 기사거리는 어떻게 정하나요?

핑구: 요즘 학내외의 이슈를 다루려고 하죠.

차차: 사실 학교에 일들이 워낙 많이 생겨서 기사거리는 항상 나와요. 기본적으로는 자유주제에요.

그알: 너무 많아서 추려야하지, 없어서 짜낸 적은 없던 것 같아요.

엄브릿지: 총장님 사랑해요. 항상 기사거리를 만들어주셔서

차차: 학우분들께서 제보도 많이 해주시니까요.!

핑구: 아 근데 이번 기회로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가 그냥 제보가 들어왔다고 바로 기사를 쓸 수가 없어요. 사실관계가 명확해야 하고 심증만이 아닌 물증이 꼭 필요해요.

차차: 양측의 입장도 알아야하기 때문에

핑구: 아 그리고 학교를 통해 사실확인을 하는 것도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에ㅠㅠ 자치언론의 설움

 

Q13. 어떤 이유에서 퍼블리카에서 활동하게 되었나요?

핑구: 전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옛날에ㅋㅋㅋ 지금은 아님

차차: 전 좀 늦게 PD수첩 보고 나서 정의감 하나만으로 들어왔죠.

그알: 기본적으로 다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들어온 것 같아요.

핑구: 솔직히 이렇게 작은 규모인 줄은 몰랐어

차차: 점점 규모가 작아지고 있죠..ㅠㅠ

- 학내의 부조리함을 알리기 위해 들어왔다는 이유는 공통입니다!

 

 

 

Q14. 신입기자 모집공고들을 보면 덕후라는 단어가 꽤 나오던데혹시 기자님들 덕후신가요?

핑구, 차차: 핑구와 차차는 신화창조입니다.

그알: 난 덕후가 아니야. 여러분 전 머글입니다.

차차: 어 예전에 비투비 좋아했었잖아요.

그알: 아 좋아만했지 덕후까지는 아니었어

핑구: 그럼 나도 덕후까지는 아닌데?

차차: 거짓말 좀 하지마요. 내가 본 것들이 있는데;;

엄브릿지: 여러분 덕후 중 덕후는 양덕이죠^^

 

Q15. 퍼블리카에게 학내언론은?

다같이: 학내언론은학내언론입니다.

 

 

Q16. 퍼블리카에게 성신여대란?

차차: 나의 모교애증의 관계?

핑구: 우리가 많이 비판적인 기사를 쓰긴 하지만, 그게 학교가 잘되라고 하는거지싫어서 그러는게 아니잖아.

그알: 그렇지. 잘못되라고 그러는게 아니야.

엄브릿지: 당연하지. 내가 소속된 학교인데. 항상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거지

 

 

Q17. 취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제보? 탐사?

차차: 제보 들어온 것은 제보바탕으로 인터뷰를 따거나 기관에 전화를 해서 인터뷰를 하거나거의 익명으로 합니다.

핑구: 현장취재도 필요한 경우엔 합니다.

 

 

Q18. 내년에는 어떤 기사들을 다룰 예정인가요?

핑구: 우리는 내년에 꼭 학습권 침해를 써야해.

차차: 지금 학생회가 부재한 상태니까그것도 기사로 나가야겠죠?

핑구: 지금 대학가가 모두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엄브릿지: 홍보에 열 올리는 것도 필요하죠. 신입부원을 위해ㅠㅠ

차차: 등록금심의위원회도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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