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간사>

분류없음 | 2017.03.21 12:47 | sspublica

< 폐간사 >

 

 

안녕하세요. 성신여대 자치언론 <성신퍼블리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3월에는 정규기사가 아닌 폐간 인사로 독자분들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저희가 독자분들과 함께한지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성신퍼블리카>는 학우들의 제대로 된 알 권리 충족과, 건강한 학내 공론장 형성을 취지로 출범했습니다. 창간한 이래로 학교 공동체를 위한 진정한 보도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왔으며, 학내 부조리와 닿아 있는 지점에서 성역 없는 비판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크고 작은 위기들도 있었으나, 독자분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저희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자분들의 응원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결국 폐간의 말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자치언론에게 인력난은 항상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 이것이 저희가 폐간하는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저희 기자들도 <성신퍼블리카>의 기자이기 이전에 보통의학우들입니다. 따라서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졸업과 취업 등 대학생으로서 현실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들과 기자 생활의 병행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성신퍼블리카> 신입기자 모집은 다른 때보다 절실했습니다. 신입기자 모집 공고문에 감히 폐간을 내걸었던 만큼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모집 마감이 끝난 현재까지 지원자는 단 한분이었고, 이 인원으로는 더 이상 자치언론사를 운영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폐간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저희는 마지막까지도 1만 학우 중 누군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와 함께 해주리라는 기대를 하며 지원자를 기다렸습니다. 결론적으로는 폐간을 선택하게 돼 무거운 죄책감과 책임감을 마음에 이고 떠나가지만, 그런 사치스러운 기대를 할 만큼의 믿음이 저희에게 있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지나간 것들은 각자의 의미를 남기고 떠나가듯이, <성신퍼블리카> 폐간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날의 저희의 존재가 기자들에게 있어 지난하지만 열정적이었다고 추억되는 시간들이었다면, 다가올 저희의 부재는 <성신퍼블리카> 관심을 가져주셨던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금의 폐간이 성신여대 학내 언론과 학생자치가 직면한 위기에 대해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비록 <성신퍼블리카>는 사라지지만, 건강한 비판이 오가는 학내 공론의 장은 계속 존재해야만 합니다. 학내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모순들에 계속 분노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그동안 <성신퍼블리카>의 기사와 행보를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 <성신퍼블리카> 기자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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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동아리 탐구>

 

학교를 페미니즘으로 물들이고 싶다

- 성신여자대학교 페미니즘동아리 ‘NOON’ 인터뷰 -

 

 

- 16년도 10월에 이루어진 인터뷰입니다.

 

지난 1012일 퍼블리카는 성신여대 앞 카페에서 본교 페미니즘 동아리 ‘NOON’과 인터뷰를 가졌다. 보다 다양하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NOON의 회원들의 호칭은 각각 A, B, C, D로 대신했다. 퍼블리카는 이하 로 표기.

 

 

1. 동아리를 만들게 된 시기는 언제이며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한 'NOON'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뭔가요?

 

D : 동아리 시작은 저널 동아리였어요. 현재까지 남아있는 창설 멤버는 없지만, 2013년 겨울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준비 기간을 가졌다고 전해 들었어요. 창설 준비와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성신여대 학우들의 인식 조사도 했었고요. 여대인데도 여성주의 동아리가 없다는 게 계기였다고 해요. NOON정오(noon)'가 오전과 오후가 공존하는 시간이듯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경계, 사회와 여성의 경계가 지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는 이름입니다.

 

: 그럼 언제부터 동아리의 성격이 바뀐 건가요?

 

D : 저널 모임이라 글을 쓰려면 준비할 게 너무 많았고 무거운 느낌도 들어서 가볍고 쉽게 바꿔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2015년 하반기부턴 독서토론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 위주로 진행되고 있죠.

 

 

 

 

2. 모두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살면서 느껴왔던(특히 성신 교내에서) 성차별 사례들이 있었거나, 또는 그것을 성차별로 인식하고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B : 저는 '안전이별'에 실패했어요. 이런 게 개개인의 문제일 뿐인가 생각하던 즈음 메르스 갤러리사건이 터졌어요. 이때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제가 각성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D : 맞아, 그때 메갤이 플랫폼이 된 것 같아.

B : 그렇지. SNS가 하나의 계기가 됐지.

 

 

: A분은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 저희 집은 딸만 셋이예요. 저는 그 중 첫째고요. 집안에 가부장적인 문화가 깔려 있었어요. 제사문제 같이, 사소한 것부터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저 또한 몰카가 직접적인 (각성) 계기입니다. 가해자는 기숙사 룸메이트였어요.

 

: 그럼 가해자가 여성, 그것도 같은 학우였다는 건가요?

A : 본인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제 속옷만 입은 사진을 올려놨더라고요. 그래서 고소를 했어요. 결국 유죄판결이 났구요.

 

: 대체 그랬던 이유가 뭔가요?

A : 제가 청소를 하라고 말한 게 싫었대요. 그래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제 얼굴은 찍히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데 피의자가 나중에) 경찰에 말하기를 나는 성소수자고, 그 사진은 내가 사귀는 사람의 몸이라고 하더라고요. 웃기는 게 누가 봐도 본인 몸은 본인이 알잖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이러한 사건을 제가 직접 마주하다보니, 여성의 몸으로 협박하고 권력처럼 남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에 너무 만연해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어요.

 

: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그대로 보고 흡수했다고 볼 수 있네요. 그런데 B씨는 어떻게 페미니즘 공부를 했나요? SNS를 통해서?

B : 아니요. 저는 SNS 영향은 거의 안 받았어요.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페미통신 연재글과 영화나 책, 국문과 현대문학읽기 수업에서 국내 페미니즘 문학과 그 계보를 읽으며 페미니즘을 익혔어요.

 

: 자 그럼 C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C : 반대로 저희 집은 저 빼고 다 아들이에요. 저희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일찍 이혼하셔서, 현재는 아버지와 저와 남동생. 이렇게 셋이 살아요. 사촌 쪽도 다 남자밖에 없어요. 친할머니가 거의 유일한 여성이신데 가부장의 끝을 달리시죠. 어머니가 그래서 이혼을 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이혼 후부터 엄마가 없으니 네가 엄마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거의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던 것 같아요.

 

: 그때 몇 살이었어요?

C :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B : 초등학교 4학년한테?

: 라면도 못 끓이겠다.

 

C : 그때부터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집안일을 하는 건 별 상관없었어요. 아빠는 일을 나가니까 저라도 해야죠. 하지만 전 동생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면 아빠는 항상 남자니까 안 된다는 식으로 넘기고, ‘넌 그렇게 동생을 시키고 싶냐면서 제가 잘못되고,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몰기 일쑤였어요. 집안의 불합리함을 느끼며 자라서, 우리 집만 이런가 보다 했는데...

 

: (여성이라 가사 전담을 요구하는) 사회가 사실 이상한 거 아닌가 싶어요.

B : 비정상이 정상 같은 사회야.

 

C : 집안에서 당했던 차별과 중·고등학생 때 은근히 존재하는 성차별을 보면서 부당하다고 생각해왔어요. 지금은 (비교적)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해도 지지를 해주지만 예전에는 그런 게 지배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잖아요.

D: 그렇지. 최근에나 이렇게 바뀐 거지.

 

C: 예전에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성평등을 전제로 깔고는 있지만, 추가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제대로 공부를 해본 사람만이 페미니스트이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죠. 예전에 TV에서 연예인이 전 성평등주의자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이런 얘기도 했잖아요.

 

D: 맞아 뭐 젠더 이퀄리즘? 이러더라?

 

B: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말 안하죠. 젠더 이퀄리즘이라고 하죠.’ 근데 오바마가 나와서 들고 있는 플랜카드엔 아이 엠 페미니스트웃긴 거예요. 페미니즘도 성평등이 전제로 깔린건데...

 

C: 예전에는 정치적 진보관에 왜곡되지 않은 여성관도 깔려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은 일부분이고요. 저도 처음엔 온건한 페미니스트였어요.

 

: 그럼 작년부터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건가요?

C: ‘메르스 갤러리장동민 사건이 터지고 난 후를 말씀하시는 거죠? 초기에는 그 흐름에 편승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미러링같은 급진적인 운동에 대한 사회의 격한 반응을 보며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들은 헛짓거리였던 것 같은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물론 그런 급진적인 행동을 전에도 할 수는 있었어요.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회가 바뀔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거죠. 이런 사건들이 각성까지는 모르겠지만 인식의 전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복학하고 나서 학교에 페미니즘 분위기가 생겨서 좋았어요. 최근까지도 궁극적인 성차별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요즘에는 회의감이 드네요.

 

 

: D씨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D: 저희 집은 딸이 둘인데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딸이 최고다라는 분위기예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난이 심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엄마가 네가 먼저 주먹을 날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걔한테 주먹을 날렸죠. 전 정말 조용했던 애였는데, 주먹을 날리니까 교실이 뒤집어졌어요. 물론 제가 그 남자애보다 훨씬 많이 맞았죠. (웃음)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아무도 저에게 시비를 걸진 않았어요. 그때 이후로 제 성격도 활발해졌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한 직접적인 계기는 정말 최근이에요. ‘장동민 사건이 결정적이었어요.

 

B: 그때 엄청 많은 여성분들이 페미니즘에 눈을 뜨셨죠.

 

D: 저는 비상식적인 장동민의 발언에 대한 대중의 비상식적인 반응이 더 충격적이었어요. ‘그럴 수도 있지’, ‘식스맨 시키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농담으로 하는 얘기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냐뭐 이런 댓글들? 이때부터 사회 전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페북의 상남자만화라는 만화를 보면서 충격을 받아서, 문제가 있구나하고 인식했죠. (B. 그거랑 이주용!) 그런데 그런 게시글의 댓글들이 더 이해가 안가요. 너무 심각한 수준이에요.

 

B: 거기에 막 '웃기다', ‘공감된다이런 댓글들이 많이 달려있죠.

 

D: 20151학기에 국민대 학점교류를 가서 페미니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일상생활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들을 학문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현대사회와 여성이라는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인권에 대해 많은 고찰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혐오에 대해서 조별과제로 발표도 했었는데, 그 이후에 메르스 갤러리사건이 터지더라고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이 중 그나마 '무난한' 과정을 거치셨네요.

D: 그렇다고 저도 성차별을 당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때는 그게 잘못된 것인지를 몰랐었을 뿐이죠.

 

 

 

3. 에브리타임을 하는 학우들에게는 모 회원 분이 하시는 페미통신으로 익숙할 텐데, 이건 개인이 하는 건가요?

 

D : 제 닉네임이 그거예요. 개인 차원에서 하는 활동이고 동아리 차원에서 하는 건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학우들과 공유하고 싶은 콘텐츠를 외부에서 가져와서 게시해요. 사실 예전에는 에타에서도 몰카나 성폭력에 관련된 게시물을 올리면, ‘피해여성이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반응들이 꽤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많이 답답했죠.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시는 분들도 다른 차원에선 피해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페미통신활동 이후에 다른 학우 분들도 콘텐츠를 가져오기 시작하며 이러한 페미니즘에 대한 공론이 점점 더 활성화됐고요. 특히 학우 분들이 제가 게시하는 글을 잘 읽고 있다고 해주실 때마다 고마움을 느껴요. 페미니스트들의 글이 하나라도 더 퍼지는 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4. 올해 대동제에서 페미니즘 굿즈를 파는 활동을 하셨던데, 참여하게 된 경위와 소감은 뭐였나요?

 

D : ‘우리도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1학기 모임부터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죠. 게임이나 이벤트 등을 통해 페미니즘을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학우들이 눈 앞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음을 느낄 수 있길 바랐습니다. 굿즈도 여러 안이 있었는데, 원래는 투명 생리대 파우치를 제작하려고 했어요. 그때 당시에 노브라 논란과 같이 관련 이슈가 대두됐었거든요. 생리는 숨겨야 할 것으로 여기는 생리 터부도 이와 연관이 있죠. 이런 터부에 대항해서 투명한 생리대 파우치에 생리는 숨길 것이 아니다.’란 문구를 새길 생각이었어요. 근데 제작 단위가 크고 인쇄비도 비싸서 접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거울이었다. 문구를 ‘Just For Me',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등으로 새겼는데요, 학우분들이 이걸 보고 무슨 의미냐고 여쭤보시기도 했어요.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하는 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란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거죠. 무엇보다 학우들이랑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A : 우리 스스로 뭔가 제작하는 것에도 의의가 있었어요. 우리가 주장하는 것들을 굿즈로 만들어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는 일이니까요. 이 밖에도 데이트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보다 올바른 대처를 소망하며 관련 소책자들을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D : 이건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아서 하게 됐어요. 여자의 잘못이 아닌데 대처라고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현실이니까요. 이런 것을 보면 언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시로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초반에는 단어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점차 이에 대한 여성들의 대화가 많아지고 사회적으로 부각되며 (단어와 성희롱 실태가) 떠올랐죠. 최근 시선강간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도 매우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런데서 위협을 느끼는 게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이기 때문이잖아요. 불편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라 지정해서 부를 단어가 없었는데 새롭게 생겼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나눌 담론이 늘어나니까.

 

: 동아리가 밖으로 나가 굿즈를 팔며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참 의의가 있는 활동인 것 같네요.

 

D : 굿즈를 소비하고, 또 소유한다는 것은 굿즈에 대한 의미를 지지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5. 판매했던 굿즈에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라는 문구를 사용하셨는데. 사실 해당 문구는 옹달샘 여혐 논란때 발견된 개그맨 장동민의 과거 발언을 비꼬는 것이기도 하죠. 그 논란을 시작한 메갈을 포함해 한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어요.

 

 

D :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낸다는 게 고무적이에요. 우리가 인터넷 세대인 덕도 큰 것 같고. 바람이 불 때 돛 달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소라넷을 비롯해 여성혐오 이슈들이 터질 때마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모인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이 흩어져 있을 때는 (사회가) 목소리를 듣기 힘들잖아요. 미러링이 폭력적인 것은 그 원본이 폭력적이기 때문이죠. 거울을 깬다고 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A : 여성 연대가 생겼다는 것을 크게 쳐줘야 해요. 그 전엔 전무했으니까. 최근엔 경제력 있는 여성들도 합류해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어요. 방향성을 잘 찾지 못해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 줘야 할 것 같네요.

 

D : ‘메갈리안이라는 말이 무의미 해졌다고 할 정도잖아요. 많은 여성들이 한남과 시선강간이라는 말에 동감하고 있으니까.

 

 

6.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때는 언제인가요?

 

C. 페미니즘에 대해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동아리에 들어왔기 때문에, 확실히 함께 공부하는 편이 혼자서 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토론하면서 내가 내리지 못한 답을 다른 분이 내주시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되짚어주기도 하면서요.

 

D. 저는 개인적으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목소리를 많이 내는 편이예요. 100명이 침묵할 때 1명이 목소리를 내는 것 보다, 20명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주위사람들이 자문을 많이 구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보람을 느껴요.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주위 분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물어볼 때는 내가 옳게 가르쳐주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해 조심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뿌듯하기도 합니다.

 

A. 주위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곤 해요. 굳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는 얘기도 많이 듣지만,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어오니까 정체성이 더 공고해지는 것 같아 좋아요.

 

 

7. 동아리 NOON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D. 성평등의식 고취가 가장 먼저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엔, 페미니즘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미나를 하다 보니 많은 문의가 와요. ‘혹시 어렵지 않을까요?’라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사실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배우는 책들이 어렵지도 않구요. 쉽고 재밌게 페미니즘을 얘기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에 대한 희망찬 얘기가 많이 오갔으면 좋겠어요. 학교를 페미니즘으로 물들이고 싶어요.

 

C. 주위 사람들에게 본인들이 고통을 합리화 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어요.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알고, 또 거기에 대해 눈을 뜨면 페미니즘을 더 잘 알게 되니까요. 한정되게는 교내의 학우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네요.

 

A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주위 친구들이 좀 더 예민해 졌으면 좋겠어요. , 내 삶의 방식을 전반적으로 바꾸고 싶어요.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앞으로 결혼을 하더라도 나의 삶의 방식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나부터도 내면의 차별성을 깨부시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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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카 기자들의 수다- Q&A편>

 * 16년도에 저희 게시글로 적어주신 질문댓글들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

참여해주신 학우분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Q1. 성신퍼블리카 이름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A : 미국의 온라인 탐사보도 언론 프로 퍼블리카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EBS 지식채널e 에서 한번 프로 퍼블리카를 다룬 적이 있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을 한번 보시면 저희가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지 이해하기 쉬우실 거에요!

핑구: 그 영상링크를 그냥 걸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차차: 혹시 저작권 문제가 될까 봐….ㅎㅎ

 

Q2. 학교로부터 연락이 온 적이 있나요?

차차: 그때 소통소톡으로 연락 온 것이 처음이었죠?.

엄브릿지: 근데 자료를 잘 제공 해주셨으면..더 좋겠다 싶고ㅠㅠ

그알: 우리한테 줄 리가 없지 공식 언론도 아니니까ㅠㅠ. 우리를 프레스로 인정 안 하니까ㅋㅋㅋ

핑구: 그치 우리는 그들에게 그저 찌라시일뿐….

차차 : 그 이후로 저희가 알아서 더더욱 잘 꼼꼼히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알….

그알: 그래도 그 후에 취업계 관련 공고문 다 게시판에 붙여졌잖아.

핑구: 맞아 차차가 쏘아올린 작은 공….

 

Q3. 퍼블리카에게 심화진총장이란?

엄브릿지: 나의 끝없는 창작의 샘

차차: 심화진총장이란나를 망치러 온나의

그알: 어 나 이거 어디서 들었는데?

핑구: 은교 아니야?

엄브릿지: 은교아니야 아가씨야!!

핑구: 아 그래 미안ㅋㅋㅋㅋ

차차: 나의 기사를 망치러 온나의 구원자나의 화

핑구: 사실 나에게 심화진총장은내가 여기에 들어온 이유였죠.

차차: 약간 페미니즘에서 장동민이 이러한 존재 아닐까요계속 일깨워주는...

엄브릿지: 애교심이 막 생깁니다

그알: 만약 학교가 조용했으면 우리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Q4.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그알: 지금 이 순간.. 아니 11월ㅋㅋㅋ

핑구: 아니 이상하게 맨날 일이 시험기간에 터져;;

차차: 중간고사도 말아먹고기말고사도 말아먹고

핑구: 어디든 취재현장을 가야 하는 거아 특히 재판하면 거기까지 1시간 반 걸리는데ㅠㅠ

아 또 시험기간인데 간담회도 가야 해서 그때도 힘들었어

그알: 아 학교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불러주지 않고, 정보도 제공도 안해주니까그것도 힘들어

차차: 아 장소 없는 것도! 회의실 없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그래서 가끔 저의 자취방을 이용하기도 하죠

 

Q5. 필명을 따로 사용하시는 것 같던데, 기자명의 뜻이 무엇인가요?

그알: 나는 그냥 그것이 알고싶다. 우리 학교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핑구: 나는 여기 들어올 때쯤 생긴 별명이 핑구여서 그냥 핑구라 했어. 걸음걸이가 핑구같대.

차차: 좋아하는 인디밴드 기타리스트 별명이 차차예요.

엄브릿지: 저는 뭐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것일 것 같네요!^^.

 

Q6.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나요?

A : 저희는 없어요ㅎㅅㅎ 아 저희 초창기엔 잠시 있었죠

 

 

Q7. 자금난이 있진 않으신가요?

그알: 만성적인 자금난

핑구: 한 달에 만원씩발행비내고

차차: 항상 없어서 이제 자금난인지도 모르겠어

그알: 그나마 있는 자금도 삼겹살로 탕진하고

차차 : 엉생 맛있어

 

Q8.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은?

차차: 최근에는 취업계 대자보 붙었을 때!ㅋㅋㅋㅋ

엄브릿지: 에타에서 우리 둥기둥기해주실 때

핑구: 아 근데 좀 부끄럽지 않아?ㅋㅋ 가끔 퍼블리카가 성신여대의 jtbc. ‘그것이 알고싶다다라는 얘기 나올 때!

차차: 우리가 뭐라고ㅠ 더 잘할게요…ㅠㅠ

그알: 그래도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다같이: 우리가 더 열심히 할게요….!!!

 

Q9. 몇 명이 있나요?

차차: 현재는…4명이죠?

그알: 밝혀야해?ㅋㅋㅋ

차차: 그럼 4~5명이라 할까요?ㅋㅋㅋㅋㅋ

핑구: 저희 힘들어요많이 들어와주세요.

차차: 신입부원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ㅠㅠ

엄브릿지: 해치지 않아요와주세요

핑구: 게다가 한명은 유학가고 한명은 졸업한다고요….ㅠㅠ

 

 

Q10. 지금 최대의 관심사는?

차차, 핑구: 우리 오빠들… 1113집 컴백사랑해요 오빠ㅠㅠㅠㅠ

엄브릿지: 미카의 남친과 그의 결혼?

그알: 난 그냥당장 먹고 살거취직….

(다함께 말을 잇지 못한다)

갑작스레 등장한 취직얘기로 퍼블리카는 침울해졌다고 한다

 

 

Q.11 졸업하신 선배분들과의 교류가 있나요?

A : 저번 일(?)처럼 퍼블리카에 직접적인 일이 생겼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주십니다.

 

 

Q.12 기사거리는 어떻게 정하나요?

핑구: 요즘 학내외의 이슈를 다루려고 하죠.

차차: 사실 학교에 일들이 워낙 많이 생겨서 기사거리는 항상 나와요. 기본적으로는 자유주제에요.

그알: 너무 많아서 추려야하지, 없어서 짜낸 적은 없던 것 같아요.

엄브릿지: 총장님 사랑해요. 항상 기사거리를 만들어주셔서

차차: 학우분들께서 제보도 많이 해주시니까요.!

핑구: 아 근데 이번 기회로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가 그냥 제보가 들어왔다고 바로 기사를 쓸 수가 없어요. 사실관계가 명확해야 하고 심증만이 아닌 물증이 꼭 필요해요.

차차: 양측의 입장도 알아야하기 때문에

핑구: 아 그리고 학교를 통해 사실확인을 하는 것도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에ㅠㅠ 자치언론의 설움

 

Q13. 어떤 이유에서 퍼블리카에서 활동하게 되었나요?

핑구: 전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옛날에ㅋㅋㅋ 지금은 아님

차차: 전 좀 늦게 PD수첩 보고 나서 정의감 하나만으로 들어왔죠.

그알: 기본적으로 다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들어온 것 같아요.

핑구: 솔직히 이렇게 작은 규모인 줄은 몰랐어

차차: 점점 규모가 작아지고 있죠..ㅠㅠ

- 학내의 부조리함을 알리기 위해 들어왔다는 이유는 공통입니다!

 

 

 

Q14. 신입기자 모집공고들을 보면 덕후라는 단어가 꽤 나오던데혹시 기자님들 덕후신가요?

핑구, 차차: 핑구와 차차는 신화창조입니다.

그알: 난 덕후가 아니야. 여러분 전 머글입니다.

차차: 어 예전에 비투비 좋아했었잖아요.

그알: 아 좋아만했지 덕후까지는 아니었어

핑구: 그럼 나도 덕후까지는 아닌데?

차차: 거짓말 좀 하지마요. 내가 본 것들이 있는데;;

엄브릿지: 여러분 덕후 중 덕후는 양덕이죠^^

 

Q15. 퍼블리카에게 학내언론은?

다같이: 학내언론은학내언론입니다.

 

 

Q16. 퍼블리카에게 성신여대란?

차차: 나의 모교애증의 관계?

핑구: 우리가 많이 비판적인 기사를 쓰긴 하지만, 그게 학교가 잘되라고 하는거지싫어서 그러는게 아니잖아.

그알: 그렇지. 잘못되라고 그러는게 아니야.

엄브릿지: 당연하지. 내가 소속된 학교인데. 항상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거지

 

 

Q17. 취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제보? 탐사?

차차: 제보 들어온 것은 제보바탕으로 인터뷰를 따거나 기관에 전화를 해서 인터뷰를 하거나거의 익명으로 합니다.

핑구: 현장취재도 필요한 경우엔 합니다.

 

 

Q18. 내년에는 어떤 기사들을 다룰 예정인가요?

핑구: 우리는 내년에 꼭 학습권 침해를 써야해.

차차: 지금 학생회가 부재한 상태니까그것도 기사로 나가야겠죠?

핑구: 지금 대학가가 모두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엄브릿지: 홍보에 열 올리는 것도 필요하죠. 신입부원을 위해ㅠㅠ

차차: 등록금심의위원회도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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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블리카 기자들의 수다 - 2016 연말정산편 >

 

다사다난했던 2016 병신년도 어느새 저물고 있다. 유독 '이름 값'하던 올 한 해 답게,  성신여대 내부는 물론 퍼블리카도 참 많은 일을 겪었다. 퍼블리카 기자들이 2016년의 마지막에 모여 나름의 연말정산을 해보았다. 3년만에 부활한 '기자들의 수다!'

 

차차 :월별로 저희 행적을 한번 살펴봐요 올해 무슨 일이 있었죠?

엄브릿지 : 너무 많아서...(말을 잇지 못한다)

 

#3_프라임사업으로_학기시작

그알 : 3월부터 보면.. 프라임 사업이 있었죠

(잠깐의 정적)

차차 : 올 첫 한해의 학기 시작을 프라임으로 시작했죠

핑구 : 그때 굉장히 많은 분들이 저희 페이스북 좋아요를 눌러주셨어요.

관종은 행복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차 : 저희가 그때 가장 핫했어요!

핑구 : 좀 무서웠기도 하고

차차 : 저희 다들 한동안 다리를 뻗고 못잤잖아요ㅠㅠ

엄브릿지 : 그 때 이후로 퍼블리카 이름이 떡하니..

핑구 : 맞아.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는데, 아닌가 유명했나?

다같이 : 알 사람만 알았지.

차차 : 그때 빵! 이렇게 떴지

엄브릿지 : 많은 학우분들이 이렇게나 사랑해 주실 줄은 몰랐죠.

다같이 : (뜬금) 감사합니다!

 

#병신년_재앙의_씨앗

차차 : 그때 개강때 다들 까만 옷입고 오신게 기억나요.

그알 : 맞아. 까만 마스크같은거 끼고 오시고 장례식 컨셉으로

엄브릿지 : 저 그때 솔직히 감동이었어요ㅠㅠ

핑구 : 그때 대단했어요. 그리고 그때 속보낼 게 정말 많았어요!

차차 : 맞아요. 공대위 활동 시위활동 이런게 시시각각 일어나니까.. 근데 좋았어

핑구 : 진짜 바빴어ㅠㅠ 우린 그때 물 들어 올 때 노 저어야 하니까

차차 : 노가 아니고 물 들어올 때 모터를 달아야 할 수준이었죠ㅋㅋㅋㅋㅋ

핑구 : 우리 그때 재학생이 정말 얼마 없어가지고 맨날 이거 누가해요? 누가해요?’해서

차차 : 이 근처 사는 사람들이라 망정이지ㅠㅠ 그래도 그땐 몸이 힘들었는데... (아련) 아무튼 년 초부터 시작이 컸습니다...컸어요...

엄브릿지 : 학점도 그때부터였나요...

핑구 : 야 나도 (험한 말)

차차 : 프라임사업이 병신년의 재앙의 씨앗이었어요. 제가 봤을 때는

엄브릿지 : 병신년이 지나간 지금 저에게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네요

차차 : 나랑 우리가 있자나!

엄브릿지 : 아유 겨우 남은게 차차라니...

핑구 : 결국이 아니고 겨우야

차차 : 누추하네여 증말(차무룩)

 

#4_총학선거

그알 : 4월로 넘어가볼까요? 4월은 총학선거가 있었어

엄브릿지 : 정말 4월도 다사다난했어

차차 : 총학이 뽑혔죠

엄브릿지 : 저는 그렇게 총학 선거가 진행이 됐다는게 참 다행인거 같아요

차차 : 그때 고대에서도 물품 빌려 왔잖아요

그알 : 무튼 좋았어. 총학이 당선이 되어가지고.

차차 : 투표율도 되게 높았어서 좋았어요.

 

 

#노력하는_관종_그대 이름은 핑구

핑구 : (의식의 흐름) 우리 페이지 좋아요 수 떨어진 거 알아?

엄브릿지 : (정신을 차려서) 4월에 릴레이로 절도 했었죠?

그알 : 맞아 나도 그때 했었어

차차 : 우린 다 같이 절도하고 바쁘고 좋아요 수도 많았다

핑구 : 봐봐 그때 좋아요 수가 725명 정도였어

차차 : 아니 좋아요 수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시는거예요

그알 : 이거 기사로 보내자. 우리는 좋아요 수에 집착을 한다

엄브릿지 : ‘핑구, 좋아요 수 집착

핑구 : ‘노력하는 관종

 

 

#퍼블리카_해결사?

그알 : 5~6월달로 넘어가면 이제 학관에 씽크홀이 있었죠?

엄브릿지 : 씽크홀, 어린이집 이렇게 있었다.

차차 : 군기 때문에도 좀 바빴지 않아요?

핑구 : 군기 쓴 게 파장이 좀 컸어

차차 : 엄청 핫했어

핑구 : 그때 어떤 상황이라면 자꾸 우리를 찾으시는거야 우리한테 제보를 계속 주시고

차차 : 우리가 프라임을 한번 터트리고 나니까 뭔가 신문고 같은 느낌이 된거죠

다같이 : 맞아맞아

핑구 : 에타에서도 계속 퍼블리카가 써줘야 되는 거 아냐? 이런 글들이 올라오니까 우리도 그래 우리가 해야지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해? 이런 생각이었던거 같아

차차 : 뽕에 취했던거지. 그때는 뭔가 학교의 해결사가 된 거 같은 느낌이었어

 

(짤 선정에 한 기자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음) 

 

 

#군기사태_그 이후_

차차 : 맞아 저 그즈음 운캠에 교양수업을 들으러 다니고 있었어요. 근데 그때 그 수업에 융대 학생분들이 되게 많았었어. 근데 혼자서 되게 쫄고 다녔어

그알 : 괜히 혼자 쫄았어?ㅋㅋㅋ

차차 : 혼자 괜히 쫄아가지고ㅠㅠ 그분들한테도 우리 기사가 되게 화두가 됐을 거 아니예요. 얘기가 한번쯤은 나왔을 거 아니야. 그래서 되게 쫄아서 다녔어. 근데 귀는 엄청 열고!ㅋㅋㅋㅋ

 

 

#학관_어린이집에_대한_의문

그알 : 맞아 어린이집 공고문 거의 처음으로 보고 내가 여기에 알렸던 거 같아

차차 : 어린이집 시위 할 때 즈음에 당시 염수빈 부총학생회장님이 나갔죠? 혼란이 있었죠

핑구 : 맞아맞아

그알 : 그때 사물함을 들어내야 해서 문제가 됐었나?

엄브릿지 : 그냥 학생회관에 짓는다는 거 자체가 문제가 됐었지

그알 : 나는 그때 사물함을 이용하고 있었어가지고 어 뭐지 나보고 짐을 왜 빼래? 해서 관심을 가졌는데 큰 문제가 됐지

엄브릿지 : 거기 진짜 눅눅하고 습하고.. 애 키울 공간이 아닌 것 같아

차차 : 거기 뭔가 음기가 흘러 좀.. 또 거기 화장실 물 내리면 물소리가 다 들려

그알 : 맞아 소리 엄청 다 들려

차차 : 위에 파이프 있고 애기들 정서에 되게 좋지 않을 거 같아. 내가 교직원이면 거기에 내 애기를 안 맡길 거 같아

엄브릿지 : 그리고 어린이집 시위 생각하면 그 이소현 총학생회장 혼자 있는데 어른들이 둘러싸고 그런 식이 뭡니까 정말ㅠㅠ 총학생회장은 학생인데

차차 : 총학생회장단들 간 그 사이에! 그때 농활로 자리 비웠었잖아요

 

 

#학관_씽크홀

엄브릿지 : 씽크홀은 그럼 어떻게 얘기해야하지?

차차 : (단순) 그냥 무너졌습니다. !

엄브릿지 : 아니지 그때 문제가 학생들은 씽크홀 때문에 되게 빙-돌아가야했잖아요. (논리정연)

 

 

#트라우마

핑구 : (조심스레) 아 우리 그거 안 들어갔다. 뉴스타파에 나경원 의원 딸 기사 떴었잖아

그알 : 그때부터 우리학교랑 뉴스타파의 인연이 시작됐지

차차 : ..읍읍..

핑구 : 우리 그때도 좀 걱정했었어 프라임사업 다음에 이 일이 터지니까

차차 : 졸업장이 생각나고...

그알 : 졸업은 해야죠

차차 : (갑자기 신세한탄) 우리도 무섭고 발 뻗고 못 잘 때도 있고 힘들고 맥 빠질 때도 있고

그알 : 우리 다 트라우마 하나씩은 있잖아요

차차 : 저는 쫓기는 꿈을 그렇게 꿔요

그알 : 나는 그때 이후로 우리끼리 싸우는 꿈을 꿔

차차 : 그 얘기 들을 때마다 너무 짠해ㅠㅠㅠ

 

 

#시간을_달리는_핑구

핑구 : (뜬금) 야 학생총회 썼어 학생총회?

그알 : 야 아직 11월 아니야~

차차 : 혼자서 시간을 달리지 마세여!

핑구 : 엄청나게 혼자서 달리고 있었어 지금ㅋㅋㅋㅋㅋ

 

 

#총장재판은_현재진행중

그알 : 그러면 78월은 이렇게 마무리 할까요?

차차 : 방학때도 어린이집 계속 투쟁 하다가

그알 : 총장 재판 얘기도 해야될거같은데

차차 : 총장 재판은 계속 지금도 진행이 됐다가.. 중간에 임시이사 관련 판결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죠

핑구 : 우리 되게 긴 시간을 걸려서 갔는데 금방 속행되고

엄브릿지 : 한시간 반! 한시간 반!(강조) 나 여기 졸업하면 후원이라도 해야지 정말

차차 ; .....그때까지 있을까?

 

 

# ‘-1300’

차차 : 9월달에는..

핑구 : 그때 교양 정원!

차차 : 맞아 ‘-1300’이 헤드라인이었죠

엄브릿지 : 엄청 인원수가 줄었었어

차차 : 그때 수강신청이 헬이었어 진짜

엄브릿지 : 저는 덕분에 핵교 하나남았는데 못들었어요

 

 

#대동제_뭘하긴뭘해_떼창했지

차차 : 축제도 있었네.

엄브릿지 ; 저희도 축제때 무언가를 했습니다.

핑구 : 그쵸 우리가 무대에 나갔을 수도 있고

그알 : 맞아 바이킹을 탔을 수도 있고 귀신의 집에 갔어도 뭔가 하긴 한거잖아

 

#10_단대별 학생총회_그리고 중운위

엄브릿지 : 10...

(다시 찾아온 잠깐의 정적)

핑구 : 10월에 단대별 학생총회도 있었다 참.

그알 : 아 그때 중운위 보러 갔었을 때구나

핑구 : 맞네 우린 총회가고 너네는 중운위 보러가고

차차 : 그때 중운위 보러간 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죠ㅠㅠ

그알 : 여기에 그거 쓰면 안돼? 우리 그때 중운위 보러 갔는데 그건 학우들이 신청만 하면 갈수 있는건데ㅠㅠ

차차 : 저희가 따로 신청을 해서 간건데, 처음 가본 거였는데..

그알 : 그걸로 오해를 받아서 좀 속상했죠

차차 : 어떻게 아셨는지도 참 궁금하고

그알 : 누구나 보러갈 수 있고 많이들 보러가시길 독려해여.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핑구 : 우리 그때 가뜩이나 둘이는 중운위 보러가가지고 수는 적은데 어떻게 단대별로 다 갔어ㅋㅋㅋㅋ

 

 

#11_생각해보니_또바빴네

차차 : 11월 즈음 되가지고 학내 민중연합당 관련 문제가 나오나요?

엄브릿지 : 11월쯤에

그알 : 찾아보는 것도 싫다

엄브릿지 : 학생총회도 있고

핑구 : 부정청탁법 관련 기사도 있다

그알 : 헐 되게 많다 이거 어떻게 나가?

핑구 : 2017년 한 해를 되돌아보는 솔로리카 총결산 이렇게 나갈까여 그런데 솔로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ㅋㅋㅋ

그알 : 우리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솔로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차차 : 맞아 우리 되게 바빴어요

엄브릿지 : (뜬금) 마지막은 라스트 크리스마스 아이 기브 유 마이 핥

차차 : (따라 부르고 있다)

 

 

#학내_민중연합당 사태

그알 : (다시 돌아와서) 학내 민중연합당 관련 얘기는 어떻게 하지

차차 : 우리가 어디랑 엮여서 논란이 된 게 정말 처음이어가지고 정말 당황했었죠. 저희 동아리가 선후배간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닌데 먼저 선배님들이 연락이 오셨죠. 해결도 해주시고

그알 : 사실 무슨 말을 해도 좀 조심스럽지

엄브릿지 : 지금도 조심스럽고

그알 : 우리 의도가 아닌데 잘못 전달이 될 수가 있다는 걸 엄청 깨달았으니까

 

 

#휴식기

핑구 : 우리 꽤 쉬었다. 생각해보니

엄브릿지 : 됐어 우리 쉴만했어

핑구 : 이렇게만 봐도 엄청 많았네

그알 : 속상한 일이야

핑구 : 한달을 쉬었어 한달을

그알 : 우리 그때 너무 자주 만났어 일주일에 두세번이 뭐야

엄브릿지 : 다들 너무 쇠락해서

그알 : 다같이 노쇠해졌어

엄브릿지 : 우리 다 늙을 날밖에 없는데여 뭐

차차 : 맞네

 

 

#11월 학생총회와_뜬금없는_덕밍아웃

엄브릿지 : 학생총회 얘기를 해보면..

그알 : 총회는 좋았어. 다 좋았어

핑구 : 학생총회 감동이었어

그알 : 학생도 많았고 기획도 좋았고 동창회에서 와주신 것도 좋았고

차차 : 맞아 과거 영상 틀어주신 것도 되게 좋았어

핑구 : 아 나 그거 못봤어

엄브릿지 : 나의 전투의지를 고취시키는

차차 : (뜬금) 그 영상에 신화 노래 나왔는데!!

핑구 아 아무말이나 하지맠ㅋㅋㅋㅋㅋ

차차 : (이미 말릴 수 없음) T.O.P! T.O.P!(빅뱅 탑 아님) 그래서 내가 열심히 풍선 흔들면서 응원 구호(신화산 ; 해당 기자의 요청이 있었음)를 외치고 있었어요 그 몇 초 안되는 노래에 맞춰서ㅋㅋㅋㅋ 근데 옆에 분이 알아봐주시는거예요 신화창조냐고ㅋㅋ 되게 뿌듯했어

엄브릿지 : 그분도 어딘가의 덕후이실거야 아이돌 덕질하면 다들 알아보니까

 



(비상총회의 수많은 노란색 풍선 물결은 마치 젝스키스 콘서트를 보는 듯 했다. 최고!)



#12
_앞 일 생각하니_현자타임

엄브릿지 : 12월 지금은... 앞 일 걱정이죠

차차 : 앞일 걱정이 우선이죠. 학교 걱정을 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정말 걱정이고

핑구 : 신입 기자도 정말 걱정이고

차차 : 네 저희가 솔직히 인력이 정말 부족하죠?

엄브릿지 : 맞아요

핑구 : 거기에 졸업생도 있고 이런저런 일도 다들 할 거 같고

차차 : 존속 자체에 위기를 겪고 있죠

핑구 : 심각합니다.

차차 : 저희의 기사를 좀 더 오래 보고 싶으시다면 신입 분들의 지원이 필요해요. 안그러면 뭐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거죠 뭐

엄브릿지 : 죄송해요 저희가 사람이 없어서 없어지게 됐어요 붙이고 떠납시다

차차 : 사람이 없으니까

핑구 : 돈도 그렇고

차차 :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지만 어느순간부터 봉사정신과 애교심만으로 활동을 하는 게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타가 왔다고 해야하나?

그알 : 근데 우리가 퍼블리카 하면서 입은 타격들은 정말 아무도 보상해 주지않아. 우리의 심적인 만족감이 크더라도 내 학점을 망쳤으면 그거는 복구를 할 수 없잖아.

엄브릿지 : 저도 각오하고 들어왔지만 학점망치고 몸 망치고 정신망치고ㅋㅋㅋ

차차 : 우리 1학기 때 어떻게 다 했는지 모르겠어요

핑구 : 그니까. 죽음이야

차차 : 이 힘든게 힘든지 모르게 무뎌지고있어요 근데ㅋㅋㅋㅋ

그알 : 아 마음아프다

차차 : 그래서 지금 잠시 쉬고 있다가 다시 쓰려니까 너무 힘들어. 좀 쉬어보니까 힘들어

핑구 : 맞아 쉴 때 너무 좋았어

그알 : 그래서 이제 끝? 이제 12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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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카 기자들이 뽑은
성신여대 참말
·막말 어워즈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한편, 말 한마디로 없던 천냥 빚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성신여대 안에서도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언사가 있어왔다. 수정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참말들부터 가슴을 쾅쾅 치게 만드는 막말까지. 그래서 퍼블리카 기자들이 뽑아보았다. 성신여대 참말·막말 어워즈!

 

<참말>

 

1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심화진 총장 퇴진하라.”

(2016118일 비상총회- 성신여대 학생들)

 

2016118일 비상총회 안건 통과 후 잔디밭에서 공동행동이 있었다. 총회에서 받은 심화진총장 OUT'이 프린팅 된 노란풍선을 다 같이 하늘에 날리는 시간이었다. 학우들은 잔디밭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모아 외쳤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심화진 총장 퇴진하라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2015119비상총회에서, 프라임 사업 반대시위에서, 2016년 비상총회에서 수 없이 외쳐도 듣지 않는 그들이지만 학우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누구나 상식이라고 여기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당연한 것을 지키기 위해 높이는 목소리가 주는 울림을 생각하며, 비상총회에서 학우들이 자발적으로 외친 구호를 1위에 선정했다.

 

 

 

2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 않으며,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2016118일 비상총회- 성신여대 A동문)

 

1위와 마찬가지로 118일 비상총회에서의 발언이다. 마이크를 잡은 A동문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 않으며,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비상총회에 참석한 학우들을 비롯해 미처 참석하지 못하여 총회 상황을 전해들은 학우들 사이에서도 이 발언이 인상 깊었다는 후기가 다수 있었다.

 

학교가 겪는 여러 진통을 보며 재학생만큼이나 힘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성신여대를 모교로 두고 있는 선배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의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동창회의 호소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우리도 언젠가는 졸업생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성신여대는 우리의 모교가 된다.

 

 

 

3

"그런 학교에 학생들을 어떻게 맡깁니까?"

(언론 인터뷰- B교수)

 

성신여대는 심화진 총장의 비리의혹에 대해 알리고자 앞장서던 학생들을 경찰에 수사의뢰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때 수사의뢰를 위한 변호사 자문료를 학생들이 낸 등록금인 교비로 충당했다. 이에 성신여대 B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학생들을 고발하는 데 사용했다는 거죠. 그런 학교에 어떻게 학생들을 맡깁니까?”

 

심화진 총장은 2010년 언론을 통해 학생들을 교육할 때 항상 그들을 소중히 키워주신 부모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그들의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합니다.”라고 인터뷰 한 바 있다.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피땀어린 등록금으로 변호사 자문료를 지출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부모의 마음을 고민한다면 비위행위를 지적한다고 하여 학생을 수사기관에 출입하게 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학생을 고발하는 데 등록금을 사용하는 학교에 어떻게 학생들을 맡기냐는 B교수의 인터뷰가 더욱 사무치는 이유다.

 

 

 

<막말>

 

1

어린여자티를 시위에서도 낸다는게 너무나 절망적이다.’

(에브리타임 커뮤니티-익명)

 

20163월 초, 학과 통폐합 및 인원 감축 가안이 학생들에게 알려지면서 프라임사업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다. 그 중 립스틱 등의 도구로 학교 유리벽에 통폐합 반대 문구를 쓰는 시위 방식이 학우들에 의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기획되기도 하였다. 이른바 립스틱 시위와 관련된 의견을 주고받던 이 시기의 어느 새벽에 나타난 익명댓글은 학우들을 분노케 했다. ‘어린 여자티를 시위에서도 낸다는 게 너무나 절망적이다.’ 라는 댓글이었다. 그는 또한 어린 티를 온몸으로 낸다’, ‘많이들 참석하고 입사 면접보실 때 뱉을 변명이나 생각해두시길...’ 등의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본교 학생들만이 인증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게시판이었지만 이날을 계기로 많은 학우들은 그 인증이 무력화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익명이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달았는지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성신여대 학우들은 서로를 어린 여자로 칭하지 않는다. 또한 학습권 보장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 표명을 변명뱉어야 할행위 따위로 격하시키지 않는다.

 

 

 

2

공부하지마, 학생 같은 사람은

(PD수첩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 C교직원)

 

2014년 방영된 PD수첩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 비리의혹이 전파를 탔다. 그리고 이 방송을 통해 성신여대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 유명한 학공마가 탄생했다. 총장 비리의혹에 대한 대자보를 붙이려는 학생을 향해 학생지원팀 C직원이 학생이면 학생 신분답게 해”, “공부하지마, 학생 같은 사람은이라며 소리친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본지 기자들은 이른바 학공마를 막말 2위로 뽑았다. 충격의 여파가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공부 하지 말라 소리치는 모순을, 학생이 준비한 대자보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학생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을 차마 잊을 수 없다. 학내분규에 대해 대자보를 쓰는 학생은 학생답지 못하고,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하는 학생인가. 그렇다면 학생다운 학생은 그 상황에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3

넌 누구니? 넌 내가 찾아낸다

(2015119일 비상총회- D교직원)

 

작년 11월 비상총회에서의 일이다. 총회에 참석한 학우들은 총학생회에서 측에서 나누어준 스티커를 학교 곳곳에 붙였다. 그러던 와중 신분을 밝히지 않은 여성이 학우들에게 다가와 "너 누구니? 너네 내 사무실에 무슨짓 해놓은거니?“라고 말했다. 학우들이 누구시냐 묻자 나 교직원이야라고 답했다. 반말하지 말아달라며 학우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에 그녀는 너는 또 누구니? 넌 내가 찾아낸다고 응수했다.

 

'학공마'에 이어 학생들을 대하는 교직원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사였다.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다짜고짜 를 시전하고, 본인에게 대항하는 학생에게는 누군지 찾아낸다며 위협했다. 교직원과 학생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또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경어를 사용하는 상대방 앞에서 그를 하대하는 것은 공적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존중받고 싶다며 감정에 호소하는 언론 플레이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의 언행을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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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거리의 기억

 

 

 

 

 

 

 

 

1112

처음에는 경악이었고 다음은 의심이었고 마지막은 분노였다. 하지만 답은 하나였다. ‘일단 나가야겠다.’ 솔직히 집회에 나간다 해서 무언가가 바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집회가 개인에게 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목소리를 내고 주장했다는 권리 행사의 실현이 아닐까 싶다.

추위가 걱정돼서 입고 온 옷이 무색할 만큼 1112일 그 날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오후 2시부터 여성대회에 참가했다. 한차례의 소란이 있었지만 평화로운 시위였다고 기억한다. 서로 노래를 부르고 앞에 나가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였다. 여성대회의 기조는 차별 없는 평등 집회였다. 다양한 몸, 다양한 생각, 다양한 지향을 아우르는 대회였기에 다양한 사람이 어울릴 수 있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강남역 10번 출구(페미니즘 페이스북 페이지)부터 성소수자 관련 협회까지 많은 단체들이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편안하게 참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이제까지의 시위에서 소외되었던 보편인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전국민에게 자괴감을 주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자신들에게 국민이 부여한 지위를 사적으로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다. 이들이 한 일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사회 공통의 문제가 대두되면 주변인들은 밀려나는 법이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두고 희화화하는 많은 단어들이 발생했다. 이는 곧 우리 사회 속 주변인들의 인권도 끌어내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미스 박’, ‘강남 아줌마등으로 발현된 희화의 방향은 결국 여성 혐오와 소수자 혐오로까지 넘어갔고, ‘이런 중대한 문제에서 인권같이 국소적인 문제를 이야기해야하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성대회 발언자 중 한 분의 말과 같이 보편인권이 국소적인 문제라면 누구의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을 수 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 문제는 전국민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은 여성 희화화로 이어졌으며 그것은 여성혐오로 2차 피해를 야기했다. 그 날의 시위가 우리에게 주었던 또 다른 의미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억압이 존재하는 시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주권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듯이 인권 실현 역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국민 주권과 인권 실현은 함께 가는 것이지 하나를 억압하여 다른 하나를 이룩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한다.

- 돌로레스 엄브릿지

 

 

 

 

 

1203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촛불집회가 지속되던 중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며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모인 민심을 비하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 반박이라도 하듯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회의 새로운 풍속을 만들며 더 크게 타올랐다. 광장에 LED 촛불이 등장하고 횃불이 나타났다. LED 촛불을 판매하는 가판대를 집회가 진행되는 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촛불대신 큰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시민들도 눈에 띠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23일 행진이 한창이던 독립문역 앞에서 노래가 울려 펴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반복되는 가사와 익숙한 리듬으로 행진 대열에 있던 남녀노소 모두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사가 전달하는 의미는 무거웠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흥겨웠다. 집회와 시위는 엄숙하다는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거리의 기억이 형성되는 시점이었다.

 

- 그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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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값도 죽이고 농민도 죽이고

-백남기 농민의 진정한 사망 원인-

 

 

왜 그는 민중총궐기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나

  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에 대한 주장은 분분하지만, 결국 민중총궐기에서 입은 부상이 일차적 사망원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백남기씨는, 그리고 농민들은 이러한 비극이 발생한 민중총궐기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을까?

 

  201511141차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2대 요구안을 내놨다. 농업 부문에서의 요구안은 밥쌀 수입 저지,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반대,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이었다. 이 세 요구안은 모두 수입 농산물로 심각한 가격 하락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 농산물과 쌀의 적정 가격 보장을 위한 것이다. 이전부터 농민들은 쌀의 적정 가격 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응해 대선 당시 쌀 1포대(80kg)의 가격을 17만원에서 2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공약과는 정반대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쌀값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85일 기준으로 전국 평지 산지 쌀값은 1포대에 137152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시점의 159972원보다 14.3%가 하락한 가격이다.

 

 

 

 

 

  이렇게 쌀값이 폭락한 이유 중 하나는 생산과다와 소비감소라는 구조적인 원인이다. 실제로 정부는 쌀 수급 문제의 주원인을 소비량에 비해 과다한 공급을 보이는 현 시장구조에서 찾고 있으며, 최근 4년동안의 풍작과 지속적인 쌀 소비감소가 현상황의 가장 큰 문제라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 쌀 소비량은 매해 감소세를 보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20141인당 쌀 소비량은 65.1kg으로 10년전인 20051인당 쌀 소비량 80.7kg에 비해 15.6kg이나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4년동안의 쌀 생산량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쌀 생산량은 2012년 약 400만톤에서 2015432만톤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현재의 쌀 수급 문제의 원인이 오직 생산과다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최근 4년만 보면 쌀 생산량은 증가 추세에 있으나 전체적인 추세를 보면 쌀 생산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위 그래프를 보면 국민 총생산의 분기점인 1988년도부터 2015년도까지 쌀 생산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소비의 감소 추세에 맞춰 생산량도 줄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쌀 생산 과잉 주장은 그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미곡의 소비-생산 구조에서 또다른 공급의 문제는 무엇일까?

  농가 측에서는 정부의 쌀 수입 시장 개방을 그 이유를 꼽고 있다. 우리나라 쌀 수입 시장 개방은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시작된다. 당시 모든 농산물에 관세를 붙여 시장을 개방한다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약 아래,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1995-2004년까지 10년간 전면 개방을 유예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해외 농산물을 최소시장접근 물량인 MAA를 관세를 붙여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95년 국내 쌀 소비량의 1%5만톤에서 2004년에는 국내 쌀 소비량의 4%205천톤을 의무적으로 수입했다.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도하 라운드 재협상에서 정부는 쌀 개방을 막지 못하고 관세화를 통한 전면 수입을 수용하게 된다. 이로인해 쌀 시장 개방 재유예 기간인 2005-2014년이 끝나는 2015년부터 513% 과세로 국내 소비량의 8%41만톤을 수입하고 있다. 쌀 수입 문제는 공급의 과잉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장 질서 혼란이라는 악영향도 미치고 있다. 지난 2014년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수입쌀의 불법유통 적발현황은 총 1,131, 1788톤으로 이 중 84%953건이 원산지 허위표시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농가는 정부가 공급량 과잉을 해소시키기 보다 오히려 수입을 통해 심화시키고 있으며 수입쌀의 원산지 허위표시로 인해 국내산 쌀의 시장 경쟁력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대한 농가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미 20년 동안이나 유예시켜온 농산물 시장 개방을 더 이상 미루게 된다면, 유예 연장 종료 이후 농산물 의무 수입량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쌀 관세율을 농업협정 범위 내 최대 수준인 513%로 책정하였으며 이후 수입량이 일정 수준 증가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관세율을 높여 국내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긴급관세(SSG)를 적용하여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수입쌀의 부정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수입쌀, 국산쌀 혼합판매를 금지 및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의 문제가 이렇게 상반된 가운데 그렇다면 관리의 문제 과연 어떨까? 관리의 문제또한 농가와 정부의 입장이 다르다. 농가는 안일한 정책과 생산관리 실패로 인해 쌀 값의 저하를 가져왔다며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113월 농림수산식품부는 쌀 산업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통해 매년 70만톤의 과잉 물량을 예상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4만 헥타르에 타작목 재배를 추진하고, 정부쌀 할인공급과 가공용 쌀 재배단지 조성, 핵심가공기술 개발을 통해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를 꾀했다. 또한, RPC(미곡종합처리장)의 통합 규모화와 쌀 자조금제(미곡 재배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기금 조성, 소비확대를 위한 조사와 연구, 홍보 활동 등을 벌이는 것) 도입과 관세화 논의를 마무리하고 조기에 추진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쌀 산업발전 5개년 종합계획은 위에서 말한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전면개입을 제외하고 모두 실패 또는 무산으로 돌아갔다. 또한 풍작에 대한 예측은 했지만 관리가 제대로 돼지 않았다. 농촌 전문 연구소 GS&J인스티튜트의 159호 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계절진폭(전년 수확기 평균 쌀가격 대비 올해 수확기 쌀가격 변동폭)의 변동성에 대한 정확한 규정없이 담당자의 임의적인 판단과 당시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시장 격리와 방출이 결정하여 불안정성을 가중시켰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와 같은 임의성은 정부의 쌀 비축량 목표 17%를 실제로는 11%에서 35%까지 크게 변동시켰으며 비축미에 5년차 이상의 다량의 묵은 쌀을 포함하게 만들었다. 이는 비축량 관리와 품질 유지 실패뿐만이 아니라 현재 쌀 수급문제에 역계절진폭(비수확기의 쌀값이 전년 수확기보다 떨어지는 현상)까지 불러오고 있는 상태다.

 

  물론 이에 관해 정부쪽에서도 나름의 입장이 존재한다. 정부는 쌀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해 타품목 재배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로 2014년도에는 전년 대비 벼 재배 면적이 2.1% 감소했으며, 역계절진폭에 따른 쌀값의 저하를 막기 위해 RPC(미곡종합처리장)에 벼 매입 지원자금을 약 14천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더해서 올해 새누리당과 정부는 10월 초에 쌀 초과물량 시장격리를 2016년살 쌀을 연내 일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쌀 매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 쌀 공급자체의 감소는 주식으로서의 위치한 쌀이 대흉년을 맞았을 시 대책이 미비하다. 계속적인 정부 주도 쌀 매입도 결국엔 재고량 증가와 재정 부담을 낳고 있기 때문에 미봉책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현재의 매입한 쌀에 대한 처리는 선입선출법으로 처리되지만, 소비자들의 묵은 쌀에 대한 외면으로 인해 쌀의 고미화(시간의 경과로 인한 쌀의 산화, 주로 묵은쌀을 지칭)를 진행시켜 종래엔 악성 재고를 만들어내고 있다. 해결책으론 대북지원과 저소득층 쌀 지원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행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 쌀 매수는 정부의 명목금액과 시장 실질금액의 동일화에 의해 농가 경제 이득이라는 장점이 점점 퇴색되고 있으며 정부의 재정 부담까지 안겨주고 있다.

 

  정부의 쌀 공급·생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농가의 시름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가하면 그것도 미지수다. 농가의 실질소득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농협조사 월보에 의하면 농가의 소득 수준은 1990년대 도시 근로자 가구 소득은 97.2%로 거의 비슷했지만, 200080.5%로 떨어지더니, 60%대까지 떨어졌다. 현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일각에선 쌀 유통의 복잡함을 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쌀 유통과정은 농민-농협-민간 미곡종합처리장-도매업체-유통업체(소매업체)-소비자의 형태로 매우 복잡한 유통 단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런 복잡한 구조의 각 단계에서 운송비와 마진이 붙으므로 소비자 가격은 초기 가격의 몇 배로 불어날 수 밖에 없으며,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의 피해를 낳고 있다는게 이 주장의 골자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주장에 허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그래프는 현재 연 평균이 최종집계된 2010년도부터 2015년도의 수확기의 원산지 평균 가격과 소매 평균가격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복잡한 유통과정에도 불구하고 원산지 가격과 소매가격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농가의 실질 소득의 저하와 소비자가의 상승을 초래하는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일부분에선 높은 생산비를 들고 있다. 밑의 자료를 보면 연간 생산원가는 최소 50%에서 최대 70%까지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판매원가에 비해 높은 생산원가가 농가 실질소득의 저하와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의 장애인 것이다.

 

 

 

  농가는 농민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와 토지용역비의 가파른 증가 그리고 농업기계화에 대해 정부가 방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 정부는 농업생산기반정비사업, 농업의 현대화·기계화, 용수 공급을 통한 농가소득 증대 등, 여러 정책을 내놓았으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책임을 회피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쌀 문제는 농민의 생존권 문제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쌀 문제는 복잡한 원인관계 속에 놓여있다. 이렇게 꼬인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해결방안은 정부의 적극적인 쌀 시장 관리와 심층적인 분석을 통한 실질적 대책 마련이다. 아무리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다지만 아직까지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쌀 수급 문제는 식량 주권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렇게 중요한 쌀 수급문제에서 정부는 그동안 무사안일한 방관을 유지했다. 20년 동안의 유예기간 동안 국산 쌀 경쟁력 향상을 거의 방치해두었으며 그로 인한 시장 개방의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이 안게 되었다. 그에 더해 생산 관리의 허술함으로 인해 쌀 가격의 불안정성을 초래했고 재고 관리도 실정에 맞지 않아 고미화로 인한 악성 재고를 양상했다. 뿐만 아니라 농가의 실질 소득이 급락하는 가운데 실질 정책을 내놓지 못해 쌀 생산비의 고액화까지 불러일으켰다. 정부의 방관이 초래한 복잡한 쌀 문제 속에서, 식량주권을 위한 최소한의 생산성을 위해 더 이상 쌀 수급 문제를 생산자인 농민에게만 넘길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민 인구는 300만 명 선마저 무너져, 전체 인구 중 6%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6%도 안 되는 수가 우리나라 국민을 먹여살 리고 있는 것이다. 백 씨를 포함해, 정작 그렇게 우리를 먹여 살리던 이들이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할 위협에 처해 거리로 나섰다.

 

  백남기 농민은 단순한 시위 참가자가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농촌 문제의 한 단면이다.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그를 민중총궐기에 참가하게 한 원인인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농업문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국가 폭력 사태로 답할 것이 아니라 한국 농업 시장 문제의 전반적인 재고로 답해야 할 것이다.

 

 

-돌로레스 엄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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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일부 간부들 정치활동에 학우 동원 의혹 불거져...

 

 

 

  < 기사에 앞서 성신퍼블리카는 총학생회장단의 최초 입장서 게시 직후부터 학내 분규사태에 관한 취재를 지속해왔습니다. 입장서를 통한 당사자들의 주장 및 반박이 이어졌고 취재를 위한 접촉 과정에서도 엇갈리는 진술이 계속되고 있으며, 기사를 올리는 바로 오늘지도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기반으로 해서는 진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혹은 자세한 정보 제공 없이 정당 활동 및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학우분들의 제보를 중심으로 한 기사를 작성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제보라 함은 본지의 메일계정을 통해 들어온 내용 및 에브리타임 커뮤니티를 통해 본지에게 쪽지를 보내는 등 구체적인 사실 관계사항을 적시하여 공식적으로 보내주신 제보들을 말합니다. 본지에게 공식적으로 들어온 제보와 공식 게시된 입장서 이외에 SNS, 게시판 등에 게시된 내용들은 담지 않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지난 1025일 성신여대 총학생회 위캔성신은 입장서를 통해 ()()연사국장 김남영, 사회대 정학생회장 배성인, ()부총학생이자 현 사회대 교육국장 홍희진, ()집행위원장 박유림이 민중연합당 당원이며, 당원인 위 4명과 자연대 공동학생회장 박혜지가 총회 성사를 무산시키려했고 그 이유가 현 총학생회장단이 본인들과 정치적 성향을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라 전했다. 또한 이들이 정확한 설명 없이 당 활동에 학우들을 동원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위와 같은 의혹들에 자연대 공동학생회장 박혜지는 학생총회를 걱정하여 선의에 한 말을 오해한 것이며 당 활동은 자신도 잘 모르는 상태에 추천한 것이고 이 점에 대해 사과를 전한다고 말했다.

 

  반면, ()()연사국장 김남영, 사회대 정학생회장 배성인, ()부총학생회장이자 현 사회대 교육국장 홍희진, ()집행위원장 박유림은 민중연합당 당원임을 인정했으나, 총회 무산 시도는 사실이 아니며 총회 성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 활동에 대한 설명 없이 학우들을 동원했다는 것 또한 사실과 무관하며 정치활동을 우선시하여 학생회 업무를 방임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입장서를 공식 SNS에 게재했다.

 

  하지만 성신퍼블리카의 계정을 통해 학우들 본인의 의지와 무관, 또는 자세한 정보 제공 없이 정당 활동 및 행사에 동원된 경험이 있다는 제보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치적 활동에 학우가 동원됐다는 의혹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도에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한국대학생문화연대 주최의 2011 새내기 콘서트가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새내기 콘서트의 주최 장소는 고려대학교 광장이었다. 그러나 해당 광장의 지반이 약해 고려대 내부에서도 안전을 문제로 개최 여부가 여러 번 부결됐다.

  문제는 당시 본교 새내기들의 서명이 해당 콘서트 개최를 위해 진행됐다는 점이다. 본교 졸업생이자 당시 새내기였던 익명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이하 미컴학과) 11학번의 제보에 따르면, ()()연사국장 김남영(이하 김남영)11년도 미컴학과 과 학생회장을 역임하면서 당시 미컴학과 신입생들에게 부당한 이유로 열리지 못할 행사가 서명을 통해 개최될 수 있다고 주장해 서명을 받았다. 제보자는 이 때 김남영은 행사와 주최 단체의 성격에 대해 정확한 설명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2011년 김남영의 정당 활동 관련 의혹은 6.10 반값등록금 집회에도 이어진다. 위 새내기 콘서트 제보자는 김남영이 반값 등록금 운동의 동력을 만들기 위해 학생들이 연행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이 믿는 후배이자 신입생인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제보자는 고민 끝에 참가하기로 결정, 529일 광화문 시위에 앞서 같이 연행을 결의한 사람과 경희대 수원캠퍼스에서 만남을 가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 자리에 김재연 전 통진당 의원이(연도상 의원 당선 이전) 연행 후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설명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610일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연행되었다고 제보자는 전했으며 김남영 또한 연행되어 기사화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1072651

 

  미컴학과 내부 학회에서도 김남영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 2011년도 당시 미컴학과 학회 혜윰소속이었던 11학번의 익명의 학우는 김남영이 선후배 위계질서를 이용하는 강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김남영은 학회 혜윰을 만들었던 초기 멤버였다. ‘혜윰학회에서는 주로 <미친 등록금의 나라>, <나쁜 사마리아인들>,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의 책을 읽는 활동을 했다. 독서토론 이후에 시위 참가 제안으로 흐름이 이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친 등록금의 나라>를 읽었으니 반값등록금 시위를 가보자와 같은 식이었다. 제보자는 후배들이 가기 싫어 완곡하게 거절해도 계속 가자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하루는 한 새내기가 이에 부담을 느끼고 지방에서 친구가 올라와 힘들 것 같다고 거절하자, 김남영이 친구는 다음에 만나면 되잖아라고 답변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 당시 미컴학과 11학번 대부분은 중간에 학회를 그만뒀지만, 그 다음 해에 학회 혜윰소속 12학번 학회원들이 선거운동원으로 뛰는 모습을 봤다고 제보자는 증언했다.

 

  당시 미컴학과 내에는 고함이라는 신문을 만드는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의 편집위원장은 김남영이었다. 이 모임에서도 김남영에 의해 사전설명 없이 정당 관련 활동에 참여하게 된 제보자가 있었다. 당시 11학번이었던 고함 소속 제보자는 김남영의 제안으로 20115·18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12일의 일정으로 광주에 가게 되었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국립묘지와 기념관 견학이 광주에 간 주 목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제보자는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당시 통진당 의원들과의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 , 민중가요나 선거운동노래에 맞춰 율동을 배우는 시간이 있어 당황했다고 한다. 여기서 선거운동 노래란, 당시 통진당 소속 모 의원의 선거운동 노래였다.

 

  이러한 의혹에 관해, 김남영은 본지에 정당 관련 행사에 당원이 아닌 사람에게 고지하지 않고 참여를 제안 및 요구한 사실은 전혀 없다. 이는 민감한 부분이고 숨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한편 김남영은 개인 입장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과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성신여대에 입학한 이후 성신여대를 바꾸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 여러 활동을 했고,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동기 및 후배들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하고 활동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불찰과 부족함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분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이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2011년도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도 학내에서 정치활동 관련 학우 동원 의혹 제보가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작년 학생회 관련자는 올해 4·13 총선을 앞두고, 배성인 사회대 학생회장이 특정정당에 투표해줄 것을 부탁하는 연락을 받았다고 제보했다. 참고로 당시 정당투표 16번에 해당하는 정당은 민중연합당이었다. 배성인 사회대 학생회장은 오늘 진행된 사회대 간담회를 통해 이 부분을 해명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선거지지 sns를 보낸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권유였을 뿐 강요가 아니었고 배성인 개인의 행동이었다라고 답했다.

 

 

<제보자의 요청으로 당시 카카오톡 대화창의 내용을 재구성함>

 

 

  학내 게시판을 중심으로 화제가 된 사회대 주최의 썸머스쿨에 대한 제보들도 있었다. 먼저, 자신을 총학생회 국장단이라 밝힌 한 제보자는 올해 713일에 참가했던 썸머스쿨8월 중순에 참가했던 대행진단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제보를 했다. 30대 사회대 학생회가 주최한 썸머스쿨3일 동안 진행됐으며 총 6강의 강의로 구성됐다. 강의는 대체로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내용들이었으며 1강부터 차례대로 정세’, ‘경제’, ‘역사ǀ’, ‘역사ǁ’, ‘성신여대 운동사(인생관)’, ‘대안모색이 주제였다. 이 중 정세성신여대 운동사(인생관)’그리고 역사ǀ’ 부분은 각각 김남영과 박유림이 강연을 맡았다. 제보자가 주목했던 점은 3일차에 있었던 외부특강인 대안모색강연이었다. 외부인사가 썸머스쿨을 방문해 통일에 관한 강연을 했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후에 다룰 대행진단에서 해당 강의자가 민중연합당 소속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제보자는 외부인사가 통일에 대한 강연을 한 이후 배성인 사회대 학생회장이 배운 대로 실천해야 되지 않느냐라며 단체채팅방을 통해 사드배치반대 집회에 참여할 분들은 말해달라는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이 제보자는 이러한 부분들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지 않냐 라고 주장했다.

 

 

  익명의 총학생회 국장단 제보자는 대행진단에 대해서도 제보했다. 제보자는 총학생회 전 집행위원장 박유림의 소개로 대행진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제보자에게는 약 910일의 기간 동안 전국 곳곳을 돌며 올해의 이슈에 대해 배우고 실천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제보자는 처음에 이 행사취지에 대해 호감을 느껴 마지막 날에 시청 광장에서 크게 문화행사를 한다는 말에 따라갔다. 그러나 시청광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5000원의 참가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곳에 민중연합당 깃발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생활고에 시달리고 사전에 설명을 듣지 못했던 제보자가 당황하여 김남영에게 "이거 당 활동이었어요?" 라고 묻자 김남영은 이건 당 활동이 아니고 이런 활동을 하는 여러 단체가 있는데 여기서 제일 먼저 공지가 떠서 신청한 것이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문화행사가 끝난 뒤에는 뒤풀이가 있었다. 다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여의도공원 바닥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모두 다양한 대학에서 온 민중연합당 당원들이었다. 제보자가 이런 자리인줄 모르고 따라왔는데 다들 당원이신 것 같네요라고 말하자 그들은 당원이 아닌 사람들도 있으니 불편해 할 것 없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회대 측에서는 오늘 진행된 간담회를 통해 썸머스쿨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이들은 간담회에서 썸머스쿨중 사회대 정학생회장, 부학생회장이 강연한 경제교육, 역사교육 부분에 대해서 다시금 설명했다. 이들은 기획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만약 편향적으로 느낀 이가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특히 역사교육 부분의 내용에 대해서 사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다양한 부분을 담지 못해 아쉬운 부분은 있었으나 편향적인 부분은 없다는 답변을 얻었다 했다. 외부인사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는, 외부 인사가 민중연합당의 당원이므로 그의 당색만을 보고 초빙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력이 해당 주제에 대한 강연자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초빙한 것이라고 말하며 당 가입권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다른 대학에서도 정당의 의원들을 강연에 초청한 바가 있다는 자료들을 제시했다. ‘썸머스쿨이 끝난 뒤에 사드배치반대집회 참여에 유도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sns를 통해 권유를 한 적은 있지만 강요한 적은 없었고 결국 아무도 동행하지 않았다라고 답변했다. 또한, 익명을 요청한 한 사회대 집행부는 사회대 집행부 내부에서 집회 및 시위 참석을 강제한 적은 없다는 제보를 보내왔다.

 

  사회대 학생회장단 측은 대행진단과 관련된 부분은 재입장서를 통해 해명했다. 이들은 재입장서를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몇몇 후배들에게 참가해 보는 것을 권유했으며, 이들이 당원인 사실 및 민중연합당의 정치 성향과 주최단위, 행사의 내용과 활동에 대해 고지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본지가 받은 제보 상황은 위와 같다. 명확한 증거 없이 제공된 각 측의 입장문은 반박에 반박을 거듭하며 엇갈려만 가고 있다. 또한 학우들의 제보도 일정 시점 이후로는 본지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지금의 상황에서 더 이상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소현 총학생회장은 김남영, 박유림, 박혜지, 배성인, 홍희진이 정치적인 활동에 학우들을 개입시켜 총회를 포함한 총학생회의 업무에 피해를 야기한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에 반해 김남영, 박유림, 박혜지, 배성인, 홍희진은 박혜지를 제외한 4명이 당원인 것은 인정하나 정치적인 활동 때문에 총학생회의 업무를 소홀히 한 적은 없다.’라는 입장문을 연이어 올렸다.

  하루가 멀다하고 게시되는 입장문들은 학우들에게 많은 혼란과 무력감을 주었다. 이로 인해 사회대와 자연대 학생회, 그리고 총학생회가 모두 상당부분의 신뢰를 잃었다. 정당 활동을 위해 학교활동을 이용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단지 정당가입을 한 학생회 일원일 뿐인 것인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내용들로 인한 공방은 학우들도, 퍼블리카도 파악할 수 없다. 이 일들로 하여금 이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성신여대에게 바람직한 영향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 각자 입장서를 통해 각자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논란에 대해 사과와 부인을 하는 지금 이 상황들의 반복이, 학생총회와 심화진 총장의 재판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성신여대의 대표자들로서 적절한 행동들인 것인지 의문이다. 본지는 이 사건으로 인해 여태까지 성신여대 대표자들이 일궈온 학우들을 위한 사업들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길 바라며, 임기 종료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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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나의 첫 성신 대동제

 

우리 학교 축제 얘기를 처음 듣자마자 재미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학교와 달리 술을 마실 수 없고, 여대라서 여자 밖에 없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입학 후 과제에 시달리느라 다른 학교 축제도 구경하지 못해 우리 축제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있었고, 그래도 일단 겪어보고 실망하자는 마음으로 축제에 참가했다. 이 자리를 빌어 나의 첫 성신 대동제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써보고자 한다.

 

이번 축제가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학교 지원 없이 학생들끼리 힘을 합쳐 이뤄낸 결과물이기에 당연히 미흡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이런 점은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일단 축제 당일 날씨 상황이 아쉬웠다. 점을 쳐서 예보를 한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기상청 예보는 많이 틀리는 편이지만, 그날만큼은 예보가 맞아떨어져 축제를 즐기기에는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었다. 성신관과 수정관 앞에 마련된 부스를 방문할 때마다 천막에서 빗물이 후두둑 떨어져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급격히 피로해졌다.

부스나 체험존이 운영되는 시간도 마음에 걸렸다. 정오에 시작해 일찍 판매를 종료하는 낮시간 부스가 대부분이라, 저녁에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이 즐기기엔 야시장 부스 수가 너무 적었다. 상대적으로 낮에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학생들에 비해 구경할 거리도 적었으며, 참여도 힘들었다. 반면 저녁에만 운영되는 부스나 체험존-예를 들어 귀신의 집-은 오전부터 축제를 둘러본 학생들이 저녁까지 기다리기에 중간 텀이 너무 긴 감이 있었다.


술이 없고 여대라서 재미없다는 인식과 앞서 말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숨어있는 장점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한다면 우리 학교만의 특색 있는 축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신대동제는 천편일률적인 다른 학교 축제와는 확실히 달랐다. 손재주 있는 학우들이 플리마켓을 열어 직접 제작한 물건을 판매하는데, 딱히 뭔가 사지 않더라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판매품의 종류와 수가 좀 더 늘어난다면, 플리마켓 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술을 판매하지 않는 게 단점일 수도 있지만, 과도한 음주로 인해 교내에서 종종 발생하는 문제들 -음주로 인한 폭행, 외부인 무단출입, 과 주점 운영을 위한 학생들 간의 갈등-이 사전에 차단돼 건전하고 깨끗한 축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느꼈다.

 

플리마켓을 제외하고도 기억에 남는 부스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생리대 기부 부스와 우리 학교 자랑 중 하나라는 학군단 상담 및 홍보 부스, 퍼스널 컬러 진단 부스를 꼽을 수 있겠다. 학교 축제에서 사회 기여나 독특하고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좀 더 적극적인 홍보가 이뤄지고, 보다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부스들이 많아진다면 수정대동제만이 가진 특색으로 유명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교내 음주 금지와 여자 밖에 없어 재미가 없다는 선입견을 전복시켜 장점으로 승화하고,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적극적인 홍보가 수반된다면 우리 학교 축제는 명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학교 축제에는 조금 더 장점이 살려진 성신 대동제를 즐기고 싶다.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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