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느이 대학엔 이런 거 없지?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께를 할금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김유정 동백꽃 中-

 

 

지난 6월, 성신퍼블리카 기자들은 “자치언론이면 학교에 좋은 것도 쓰고 그래야지!”라는 학생지원팀장의 말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창간 이래 퍼블리카는 학교를 자랑하는 기사라곤 단 한 개도 쓴 적이 없던 것이었다. 날카로운 지적에 머리를 맞은 듯 했다.


그래서 기획했다. 본격 성신여대 자랑하기 기사. “얘, 느이 대학엔 이런 거 없지?”

 


1. 생리공결제도

성신여대는 생리유고결석제도가 제일 잘 운영되는 학교다. 생리유고결석제도는 한 학기에 최대 3번, 15일 간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알차게 사용하시라. 다른 대학에서는 생리유고결석증을 교수에게 따로 제출해야 하지만, 성신여대는 그럴 필요 없이 포탈에서 몇 번 클릭하면 끝이 난다. 민망함을 감수할 필요 없이 간단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2. 여대를 지켜줘

 

여자들만 있다 보니 학교는 혹시 모를 일에 철저히 대비한다. 곳곳에 CCTV를 설치해 범죄를 예방하는 한편, 절도와 같은 범죄가 일어났을 때 CCTV 기록 영상을 통해 범죄를 확인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누군가 대자보를 붙여 학생들이 모여들면 CCTV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다 대자보를 떼어가기도 한다.

 

학교의 안전을 책임지는 존재는 또 있다. ADT 캡스다. 이들은 교문, 도서관, 그리고 각 건물 로비에서 무전을 하며 대기한다. 수상한 이가 학교를 배회하면 그 사람을 제지한다. ADT캡스가 약 2년 전 처음 고용됐을 때, 뭇 학생들은 ‘개그맨 허경환을 닮았다.’, ‘아니다. 윤두준을 닮았다.’라며 그들을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젊은 처자와 총각들이 마주치다보니 누군가 번호를 따가며 인연을 만들기도 한다. 여대라고 좌절하긴 이르다. 이렇게 CC의 꿈을 달성할 수 있다.

 

 

3. 운정캠퍼스 대강당

 

운정캠퍼스엔 대강당이 있다. 영화GV도 하고, 뮤지컬도 하고 연예인들이 무슨 행사 때문에 종종 오간다. 다양한 행사 때문에 손님들이 자주 찾아오는 편이다. 바로 위층이 도서관이긴 하지만 말이다. 방음벽 설치 공사를 했다지만, 때때로 공부를 하다 보면 둥둥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내 몸도 자연스레 리듬을 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에 한 뮤지컬. 공연 기간이 방학이라 다행이었다>

 

 

4. 번쩍번쩍 빛나는 화장실

 

성신여대 화장실은 전반적으로 깨끗하다. 휴지와 물비누도 떨어지는 일 없이 잘 준비돼있다. 이 점만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특히 운정캠퍼스는 2012년 ‘아름다운 화장실’ 은상을 받은 적도 있다. 작년에 리모델링을 마친 학생회관 화장실 역시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하다.

 

 

 

<(화장실 문에 비친) 나는 트윙클 빛이 나>

 

바로 이렇게. 거울 아니다. 화장실 문이다. 변기에 앉으면 얼굴뿐만이 아니라 온 몸이 다 보인다. 옷매무새까지 알뜰하게 살펴보라는 설계자의 배려(인지 악취미인지) 덕에 볼 일 보며 눈 뜨고 정면을 볼 수가 없다.

 


5. 성신여대 3대 퀸카

 

잊을만하면 언론에 등장하는 성신여대 3대 퀸카. 잘은 모르겠지만 언론보도에 의하면 3대 퀸카는 구하라, 이세영, 민지원이라고 한다. 2013년 1월 전까지만 해도 성신여대 퀸카는 구하라와 이세영이었다. 특히 2011년에 새로 생긴 미디어 영상연기학과는 구하라와 이세영 덕을 톡톡히 본 편.

 

그러나 2013년 1월부터 언론엔 ‘성신여대 3대 퀸카’라며 민지원(11·무용예술)까지 엮어 보도되기 시작했다. 언론사들은 그녀의 소속사인 토비스 미디어가 제공한 자료를 통해 그녀의 근황을 전한다. 예를 들면 “‘성신여대 퀸카’ 민지원 꽃할배수사대 인증샷 공개! '미모 작렬'”(2014년 7월 25일 매일신문), “‘성신여대 3대 퀸카’ 민지원, ‘가족끼리 왜 이래’로 드라마 전격 데뷔”(2014년 7월 17일 스포츠동아)라는 식이다. 검색 결과 7개의 기사에 등장하는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민지원 여신 미모 작렬"라는 말을 했다.

 

 

6. 형형색색의 졸업가운

 

<졸업식 때 절대 뒷모습을 찍히고 싶진 않다>

 

평범한 졸업가운은 가라! 기존 학위복은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흰색 등의 띠를 둘렀다.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다. 성신여대는 다르다. 명색이 의류학을 전공한 총장이 있는 학교인 만큼 파격을 추구한다. 무려 핫핑크 띠가 있다. 뒤를 돌면 태극 문양을 형상화한 것 같은 모양도 있다. 최소 세 가지 색을 사용해 그라데이션 효과를 줌으로써 공작새 같은 화려함을 더했다.

 

 

7. 심화진 총장

 

성신여대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2010년부터 국립발레단 이사장을 역임 중이다. 총장으로서는 성신여대 역사상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 또한 한국대학 총장 중 처음으로 이탈리아 대통령 문화훈장을 받았다고 한다(2010년 6월 1일, 한국일보 “심화진 총장, 이탈리아 정부 문화훈장”). 최근 7월엔 두 명의 이사와 함께 이사장을 고소했다.

 



-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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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감성의 해부, 영감의 메시지 대림 트로이카 전


TROIKA(트로이카) :소리, 빛 시간 - 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

 

 

<대림 미술관 정문>

 
런던이 주목하는 천재 아티스트 트리오 - 트로이카(TROIKA)가 한국에 상륙했다. 올해 4월 10일을 기점으로 오는 10월 12일까지 대림미술관은 <트로이카: 소리, 빛, 시간 - 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 전을 개최한다. 러시아어로 숫자 3을 뜻하는 트로이카는 말 그대로 세바스찬 노엘(Sebastien Noel, 1977년 프랑스 출생), 코니 프리어(Conny Freyer, 1976년 독일 출생), 에바 루키(Eva Ruc ki, 1976년 독일 출생) 이렇게 3인으로 구성된 혼성 아티스트 그룹이다.
 
트로이카는 장르의 구애 없이 조각과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현대 예술의 한 획을 긋고 있다. 이들은 일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을 토대로 과학과 예술을 교차시키고 기술과 감성을 융합하는 흥미로운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 사라져 가는 테크놀로지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과학의 언어로 표현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 볼만하다. 트로이카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상상하는 예술을 추구한다. 이들의 다채로운 시각과 감성은 때문에 현대인들의 무뎌진 뇌에 짜릿한 전기신호를 보낸다.

 

 

 


    <대림 미술관 트로이카 전시 작품>

 

 

이들의 색채는 과연 어디까지 인가

 

트로이카는 2010년 상하이 월드 엑스포에서 영국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국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어 800만 명 이상의 관람객들에게 소개돼 큰 화제를 모은 바도 있다. 또한 이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인하여 이들의 작품들은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뉴욕 현대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전시, 영구소장 되기도 했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여진 게 아니라는 사실.

 

해외에서 한창 주목받는 아티스트 그룹 트로이카의 국내 첫 전시회이니만큼, 평일 낮에도 물론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각 전시회장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로 붐비었으며 주로 가족이나 커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학교에서 단체 관람 온 초등학생 친구들도 보였으며 고상한 노인들의 모임도 있었다.

 

이들이 표를 끊고 2층으로 올라가서 제일 먼저 보는 작품이 바로 스와로브스키(Swarovski)와의 협업 작품 ‘Falling Light’이다. ‘Falling Light’는 2010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조명과 렌즈를 통해 묘사하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과학의 힘을 빌려 예술로 승화시킨 굉장히 기발한 작품.

 

다음으로 같은 층에 설치된 ‘Cloud’는 트로이카의 유명한 대표작으로서 런던 히드로 공항에 설치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반짝이는 원형 플립 장치들로 표현한 디지털 조


형물로, 유튜브 동영상 100만뷰에 육박하는 놀라운 인기를 끈 작품.  미술관 입구 천장에서 도미노처럼 은빛으로 변하는 신비한 조형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런던에서 온 구름 ‘Cloud’다.

 

대림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이번 트로이카 전은 총 여섯 가지 스토리(소리로 들어가다/ 시간을 담다/ 물을 그리다/ 바람을 만지다/ 자연을 새기다/ 빛으로 나오다)로 구성되었으며, 단순한 시각적 조형물에서 벗어나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전시회이니만큼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전시회이다.

 

본 전시회는 올해 10월 12일까지 하므로 기간 또한 넉넉하다. 티켓은 인터파크나 카카오톡에서 최대 4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미리 구매 가능하며, 당일 구매도 가능. 전시회 관람 후 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하는 카페 ‘D’ 또한 추천한다. 보통은 인터파크 등에서 패키지 형식으로 커피 쿠폰을 함께 판매하므로 알뜰한 관람이 가능하도록 패키지 형식을 추천한다.   

 

또한 핸드폰 플레이 스토어에서 대림 미술관 모바일 앱을 설치하여 가는 것도 아주 좋은 팁 중 하나. 수석 큐레이터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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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범 청년위원회 주무관 인터뷰

'교육'의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변화'를 꿈꾸다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모두들 흔히 ‘교육이 희망이다.’, ‘교육이 미래다.’라고 얘기한다. 100점, 1등을 하는 것만이 진정한 교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쟁사회인 대한민국에서는 최고를 위한 교육을 하는 경우가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선 최고를 만드는 교육이 아닌,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이 존재한다.


교육을 통한 행복한 성장을 꿈꾸는, 지금은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주무관인 최진범씨의 교육이야기를 들어보자.

 


1.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며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청년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멘토링 프로그램 운영, 다양한 인재상 제시 및 소통 활성화를 위한 전략 마련, 멘토링 네트워크 구축 및 맞춤형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운영·발굴하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인재양성부 멘토링팀 최진범 주무관입니다.

 

 

2. 경력사항들을 보면 그리 평범한 길을 걸어온 것 같지는 않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그런 길을 걸어오게 된 이유는(간단하게 말하자면 계기가 무엇인지)?

 

중학교 시절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어린나이에 가족과 떨어져서 살다보니 향수병이 꽤 심하게 찾아왔죠. 그때 내가 왜 가족과 떨어져서 미국유학이라는 길을 택했는지, 그리고 소위말해 ‘공부 좀 한다.’,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전 세계적으로) 왜 미국으로 몰려오는지 궁금했어요. 혼자서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1920,30년대에 ‘American dream'을 알게 됐어요. '당신들의 종교, 학벌, 배경, 인종이랑 상관없이 누구든 미국에 와서 열심히 일을 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잘 살 수 있습니다.'고 얘기를 하는, 실제로 있지도 않은 무형의 가치를 일컫는 단어에요.

 

하지만 막상 미국에서 유학을 해보니 뭐가 그렇게 특별한지 모르겠어요. 단지 영어가 어렵다 뿐이지, 당시 학업 내용은 한국에서 훨씬 어릴 적 배웠던 내용들이었어요. 교육의 양과 질이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았고요. 그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하였는데,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내가 처음 유학을 시작했던 15살이 되었을 때는 굳이 해외로 유학을 보내지 않아도 충분히 원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그런 교육강국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처럼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될 수 있게. 구체적이진 않지만 이런 목표가 생기고 나니,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찾아보며 도전을 하기 시작했어요.

 

 

3. 사실 한국에서는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지식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데 미국은 중고등학교 때 탄탄하고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아도 대학에서 정말 양이나 질적으로 좋은 교육이 있는 건가요?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래요.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1학년 이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정답을 찾는 교육을 받더라고요. 예를 들어 1+1이라는 문제를 주면서 보기를 내주면 학생들은 그 중에서 답을 찾기 시작하죠. 그렇게 해서 답을 맞히면 사람들은 잘했다고 칭찬을 해요. 그리고 나는 잘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라게 돼요.

 

하지만 미국은 일반적으로 학교숙제를 내줄 때 보기를 주고 답을 찾으라고 하지 않아요. 보기 안에서만 답을 찾아야하는 삶도 아니고 정답을 맞고 틀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문제를 통해서 너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생각을 왜 했는지를 표현하는 것을 가르쳐요. 우리나라 요새 창의성교육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미국에서는 대부분 그런 고차원적인 교육을 해요. ‘왜’라는 질문을 중요하게 여기죠. 저도 고차원적 교육을 받고 바라보다 보니까 스스로도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게 되었어요. 꼬리를 무는, 마인드맵 같은 것 있잖아요. 그런 식의 사고가 많이 향상이 되더라고요.

 

저는 대학 다닐 때 4년 내내 오지선다의 시험을 본 적이 없어요. 특히 저는 주로 제 생각을 쓰는 시험을 봤어요. 수업시간에도 물론 교과서가 있지만 타임지나 월스트리트 저널지같은 전날의 기사를 가지고 2시간 내내 토론을 해요. 그걸로 점수를 매기고 참여도를 확인하고. 교육의 방식이라든지 방향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교육이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4. 교육연구소 대표라든지, 교육 관련된 활동을 많이 했는데 활동을 하시면서 그런 방식을 많이 활용을 하셨는지.

 

그렇죠. 제가 이제 그런 꿈을 꾸고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교육이 바뀌어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거든요. 교환학생으로 독일을 다녀왔는데 유대인들이 얘기하는 하브루타 방식, 예시바 토론법이라든지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교육에 대해 혼자서 연구를 했어요. 제가 배운 교육방법에 대한 것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광진 정보도서관의 후원을 받아서 학부모님들을 상대로 강연을 시작했죠. 그 외에도 10대 아이들을 위해 교육법에 관한 워크숍, 세미나 등을 열었었죠.

 

또 다양한 외국의 교육법을 접목시켜서 ‘10대들을 위한 행복한 성장’이라는 모토로 교육단체를 차리게 되었고요. 아이들이 시험을 보고와도 몇 점이냐고 물어보지 않아요. 지난번보다 성적이 올랐는가의 여부를 물어보고. 수학 공식을 알려줄 때에도 사칙연산만으로 고민하다보면 결국 답이 나오는 문제를 아이들에게 주었어요. 세 시간 동안 풀 7문제를 가지고 가요. 사실 아무것도 모르면 어려워요. 공식을 알면 그 문제를 바로 풀겠지만, 공식을 모르고 사칙연산으로만 풀려고 하면 아이들은 머리 쥐어뜯어요. 근데 토론하면서 서로 자기가 알고 있는 방법을 가지고 한 시간 만에 한 문제를 풀고 나면 아이들이 느끼는 희열이라고 해야 되나? ‘아 내가 작은 산을 넘었구나.’ 하는 성취감은 공식을 외우게 해서 풀게 했을 때와는 다르게 작용을 하더라구요.

 

 

5. 새로운 교육방법을 많이 배워 오시기는 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유학파인건 변하지 않잖아요? 사람들이 ‘유학파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라는 식으로 많이 말 하지 않나요?

 

솔직히 있었죠. ‘너는 편하게 공부했잖아’ 그런 시선이 사실 지금도 없잖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교육프로그램을 얘기할 땐 학부모들에겐, 웃기긴 한데 오히려 잘 먹혀요. ‘유학파가 배워온 이게 선진 교육입니다.’ 라고 얘기하면 학부모님들은 기본적으로 좋아해주세요.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님들을 쉽게 모을 수 있었고.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그런 교육을 시켜줄 땐 좋아해주셔요.

 

하지만 문제는 시험기간 때에요. 학부모님께서 전화하셔서 ‘처음으로 저희아이가 공부가 재미있대요. 정말 신기해요.’  이런 식으로 말을 하지만, 시험기간 때에는 결국 문제집 좀 많이 풀게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해요. 여기서 한계를 느꼈어요. 아이들에게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결국 시험기간이 되면 다 필요 없고 빨리 외워서 많이 문제 풀게 해달라 는 요청을 하시죠. 결국 사회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이건 한계가 많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실제로 한계를 느꼈죠.


 

6. 아무리 교육에 대한 열의가 있다고 해도 대기업이나 돈을 많이 버는 직장을 갈 수 있었을 텐데 청년멘토링 전문관을 택한 이유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청년위 입사 얼마 전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입사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어요. 세계적으로 역사도, 규모도 매우 큰 다국적 회사이고 복지도, 기업문화도, 그리고 연봉도 상상이상으로 좋은 회사에요. (지금 연봉과 비교했을 때 약 2.5배정도). 사실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었잖아요. 일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매우 좋은 회사임이 틀림없지만, 내가 꾸는 꿈에서는 멀어져야만 하는 길로 보였어요. 분명 놓치고 싶지 않은 좋은 기회이지만, 청년위 주무관으로써 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새로운 역량을 키워나간다면 언젠가는 그때 그 기업에서 그랬듯이 더 좋은 기회가 또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9.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내 인생에서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교육재단을 설립하는 거에요. 이왕이면 가장 큰 규모의 교육재단이었음 좋겠어요. 좀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One child, one teacher, one book, and one pen can change the world”. 말라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라는 파키스탄 소녀가 UN총회에서 했던 이야기에요. 교육을 통해서 사람이 변해요.

 

어떠한 교육, 어떠한 선생님, 어떠한 책, 또는 어떠한 글을 통해서 사람이 변하고, 변화된 사람을 통해서 주변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나라가 변하고 세상이 변해요. 그래서 교육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교육이 정말로 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감사하게도 훌륭하신 부모님 덕분에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다양한 경험들과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훨씬 많은게 사실이에요. 정말 친한 친구들 중에도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경우도 많이 봐왔어요. 정말 배움에 뜻이 있는 청년/청소년들이 마음껏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다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명사형 꿈이라기보다는 동사형 꿈인 것 같아요.

 

 

10.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은 주로 20대 초중반의 대학생 학생들일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대학을 졸업하기 전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보길 바래요. 스티브잡스의 유명한 졸업연설이 있어요. 그 중에 connecting the dots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용인 즉슨 ‘그때는 왜 내가 이것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지금의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것들이 거짓말처럼, 하나하나의 점들이 분명한 선으로 드러나서 하나의 큰 면이라는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라는 거죠. 여러분의 인생에 단 한번뿐이 대학생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험들을 통해서 수 없이 많은 점들을 찍어 놓으세요. 결국은 그 점들이 이어져 생각지도 못한 선들을 그리게 될 것이며 그 선들이 이어져 면이라는 성과로 보답을 할거니까요.

 


교육을 통해 다 같이 행복한 성장을 해나갔으면 한다는 최진범씨의 이야기는 마치 1등만을 최고로 여기는 대한민국의 교육세태에 일침을 가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최진범씨가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이 그 혼자 노력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교육을 위해 힘쓸 예비 교육자들이 그가 말하는 ‘10대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더 빨리 다가올 수 있지는 않을까.

 

 

-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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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턴 착취기]

시급 2,016원의 국회 인턴 생활

 

 

 

 

열일곱부터 스물셋까지 내 꿈은 기자였다. 그럼에도 대학 졸업 전 경험해보고 싶은 목록에 ‘국회 인턴 해보기’가 있었다, 해보고 싶다며 갖다 붙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왠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졸업 전 인턴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작년 한 해 1년 동안 휴학하고 10개월을 국회 인턴으로 생활했다. 내가 일했던 곳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소속 의원실이었다,

 

겉에서 볼 땐 분명 멋있어 보였다. 세상에,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국회가 나의 첫 직장이 되다니! 처음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갔을 때의 떨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있어 보여’ 하고 싶었던 인턴이긴 했지만, 들어갈 땐 나름의 포부도 있었다. 나오기 전까지 우리나라 교육 정책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나오겠다! 의미 있는 법 개정안을 내고 나오겠다! 그런데 이 포부는 오래가지 않아 깨졌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하루하루 닥쳐오는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처음의 포부는 어느 순간 기억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행정부 꼬투리를 잡아 질의서를 쓸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분명 처음엔 9시 출근 6시 퇴근인데 가끔 늦게 가는 날도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웬걸. 매일 8시 30분 출근, 퇴근 시간은 미정. 새벽 4시까지 회식을 하고 집에 가도 8시 30분 출근해야 했다. 이건 뭐 많은 회사가 그러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퇴근 시간이 문제다. 10시쯤 집에 가면 보통, 8시쯤 집에 가면 ‘세상에 이런 일이!’였다. 막차 시간을 넘겨 택시 타고 퇴근하는 일도 익숙해졌다. 정시 퇴근을 했던 기억은 10개월 동안 손에 꼽는다. 명절 전날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심지어 추석 다음 날에도 출근했다. 여기에 나는 의원이 지역에서 하는 행사를 보좌하게 되어 두 달 동안 매주 토요일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곳까지 출근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인턴생활이 끝날 때쯤 내 꿈은 바뀌어 있었다. 정의로운 기자가 되기보단 사생활이 있고 안정적으로 내 생활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 일하기 전 나는 누구보다 웃음 많고 여유롭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퇴근 시간이 들쑥날쑥하고, 그러다 보니 내 생활을 컨트롤 할 수 없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수 없고, 이렇게 사생활이 없어지니 사람이 피폐해졌다.

 

국회의원들 하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그 국회의원들의 보좌직원들도 한가한 거 아니냐. 9명씩이나 있을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절대 아니다. 밤에 국회의사당을 지나가다 국회의원회관을 보면 알 수 있다. 새벽까지도 불이 켜져 있는 방이 여럿 있다. 내가 일했던 곳이 ‘하필’ 이런 곳이었다.

 

내가 모든 의원실을 겪어본 것이 아니고 다른 인턴들을 아주 많이 만나본 것이 아니지만 대략 의원실 인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일은 전화받기, 손님들 오시면 음료수 내가기, 택배 받아오기, 복사하기, 문서 관리, 신문 스크랩, SNS 관리, 홈페이지 관리, 뉴스레터 발송 및 발송관리, 토론회 및 출판기념회 행사 준비, 축사 쓰기 정도가 있다. 쌓여있는 설거지를 가끔 하는 것도 인턴이 할 일이다. 흔히들 말하는 ‘잡일’에 해당한다.

 

이런 많은 잡일 중 가장 하기 싫고 힘들었던 일은 단연 음료를 내가는 일이었다. 의원실에는 하루 종일 정말 다양한 손님들이 온다. 일을 좀 할 만하면 손님들이 와서 일의 흐름이 끊기는 건 일수고 내가 이런 일 하자고 대학에서 공부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국감 직전 남자 인턴을 한 명 더 뽑았는데, 새 인턴이 들어온 이후에도 이 일은 내 몫이었다. ‘그래, 저 고릴라 같은 인턴이 차 내가는 거보다 내가 하는 게 낫지.’ 싶다가도 성차별이 아닌가 싶어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인턴이 잡일만 하는 건 아니다. 보통 임시국회나 정기국회가 열리면 보좌관이나 비서관들만큼은 아니지만 인턴들도 똑같이 정부 기관에 자료를 요청하고 그 자료를 토대로 의원이 감사장에서 읽을 질의서를 준비하고, 보도 자료를 작성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질의에 맞게 PPT 자료도 준비한다. 임시국회가 열릴 때는 운이 좋으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쉴 수 있다. 정기국회 때 감사가 잡히면 쉴 수 있는 날이 하루도 없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주일 중에 3일밖에 집에 가지 못했다. 감사가 열리는 3주 동안 화요일, 금요일, 토요일만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엔 감사가 없기 때문이다. 가지만 못하고 잠이라도 자면 다행이지, 잠도 못 잔다. 4시간 정도 자면 감사한 날이다. 왜냐하면 다음 날에도 감사는 열리고, 감사장에 누군가는 들어가 있어야 하고, 또 다음 날 질의서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이렇게 쉬는 날 없이 일하면 돈이라도 많이 받느냐. 그것도 아니다 인턴 월급은 130만 원이고 내 통장에 찍히는 금액은 대략 121만 원이었다. 국감이 진행되는 달에 하루 평균 20시간 일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해 본 내 시급은 고작 2,016원이었다. 가끔 의원실에 따라 인턴들에게 돈을 더 주는 곳도 있긴 하다.

 

어쨌든 2,016원 받고 어떻게 버텼느냐면 하나는 책임감이었고 하나는 뿌듯함이었다. 나를 믿고 뽑아준 곳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내가 찾아낸 아이템이 질의되고, 보도될 때, 실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정말 그렇게 뿌듯한 일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책임감과 뿌듯함보다 힘든 점이 더 커서 나는 복학을 핑계로 그만두고 나왔다. 국감을 마무리하자마자. 앞에서도 말했지만 물론 매달 이런 건 아니고, 모든 의원실이 이렇게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도저히 더 할 자신이 없었다. 의원실마다 2명의 인턴을 둘 수 있으니 현재 의원회관에 있는 국회인턴은 600명 정도이다. 이 중 반의반만 이렇게 일한다고 가정해도 150명이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거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그 자리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곳에 계신 분들, 앞으로 들어가실 많은 분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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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시간의 호소

*2014년/2014년 9월 10호 | 2014.08.26 09:30 | sspublica

 

192시간의 호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동조단식에 참여한 성신여대 학생들과의 인터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 농성이 벌어지고 있는 광화문 광장
 


지난 19일, 여·야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다시 만들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되지 않는 합의안은 의미가 없다며 단식을 이어나갔다. 특히 김영오 씨의 단식은 7월 14일부터 오늘(8월 26일)까지 45일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 자리에 성신여대 재학생인 박유림(미디어커뮤니케이션·13), 홍희진(미디어커뮤니케이션·13) 씨도 함께 했다. 성신퍼블리카는 지난 24일, 두 사람이 왜 동조 단식에 참여했는지 농성장인 광화문 광장에서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기사가 올라가는 26일 현재, 박유림 씨와 홍희진 씨는 각각 5일과 8일 단식 후, 건강상의 이유로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Q. 단식농성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박유림
: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특별법 제정을 위해 농성을 시작했는데, 이것을 알리고 실천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영오 씨(고 김유민 학생 아버지)를 봤는데, 너무 앙상해지신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자식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정당한 것을 위해 곡기를 끊고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던 중, 김영오 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홍희진 : 방학 동안 평화나비 활동을 위해, 광화문에서 일본대사관까지 매일 걸어서 행진했다. 그러면서 매일 광화문 광장을 지났고, 유가족들과 동조 단식하는 분들, 김영오 씨를 직접 뵀다. 아직도 1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무엇 때문인지, 누구의 잘못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고, 동조 단식에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Q. 19일 재합의 안이 발의됐는데, 유가족들은 반대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반대하는 이유와 그에 대한 두 학생의 생각을 듣고 싶다.


박유림 : 유가족은 수사권 기소권이 유가족들에게 있는 법안을 요구한다. 그러나 재합의 안에는 특검추천권뿐. 그래서 반대할 수밖에 없다.

 

 

Q. 19일 재합의 안을 수용하자는 유가족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유림 : 163명 중 160명이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덧붙여, 유가족에 대한 오해와 소문이 참 많다. 그러나 그런 소문들을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자식이 죽었는데 대학 특례입학이며, 보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런 소문들을 만드는 것과 믿는 것은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Q. 여야가 합의안을 두고 유가족들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홍희진: 지금까지 밝혀졌던 것을 보면 세월호는 원래 폐기돼야 했던 배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며 기업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배의 수명을 일방적으로 늘린 것이고, 사고의 가능성이 다분했던 배에 아이들이 타게 됐던 것이다. 이렇게 세월호 사고의 뿌리를 타고 올라가 보면 사람의 안전이 아닌 기업의 이윤이 우선 되었던 사회의 분위기가 여당이 집권하고 있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세월호 사건의 본질과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를 밝히는 과정에서 여당의 잘못이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참사의 원인이 여당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에 큰 타격을 입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야당과 여당의 밀실 합의에 대해서도, 야당은 여당에 동조하기만 함으로써, 자신들의 역할인 여당 견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유가족들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이 헌법 이래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일반인에게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고 있고, 특히 참사와 같은 문제에서는 허용을 해주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줄 수 없다는 것은 입법자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유가족들이 특혜를 바란다며 물타기를 한다.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자식들이 왜 죽었는지다. 그런데도 유가족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특혜를 주겠다.’, ‘보상해주겠다.’ 이런 식으로만 얘기하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지 않는 것은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Q. 이 합의안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박유림·홍희진 : 수사권과 기소권을 유가족들에게 주는 것.

 

 

Q. 단식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홍희진 : 점심때는 광화문 근처에서 서명을 받고 피켓을 들고 농성을 알리는 것을 한다. 많은 시민분들이 참여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신다. 그러나 간혹, ‘이런 거 하지 마라’, ‘학생이 공부나 하지 왜 여기 나와서 이런 걸 하고 있느냐’. ‘시끄럽게 뭐하는 짓이냐’고 얘기하거나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가 제일 힘들다. 유가족들이 자식이 왜 죽었는지 모르고 100일을 넘게 있으신 것을 생각하면 배고픈 것은 잊힌다. 또, 사람들이 아직도 이것을 ‘종북의 논리다’, 라고 몰아붙이거나 ‘유가족들의 억지다.’라고 말할 때가 제일 힘들다.

 

박유림 : 속도 불편한 것도 있고 그렇지만, 희진이와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시민들이 비난하거나 그럴 때마다 힘이 빠진다. 나는 그냥 단식을 하는 입장이지만, 유가족들이 비난을 받는 것을 보면 힘들다. 단식으로 인해 몸이 상해 누워 계신 분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을 볼 때가 그렇다. 특히 냉소적인 시선과 무관심이 제일 힘이 빠진다. 당연한 것, 인간답게 사는 것을 위해 호소하는데 이것을 보고 국회의원들이 막말도 하고, 인간으로조차 안 보는 것 같을 때가 제일 힘들다. 무관심과 공감능력의 결여가 가장 큰 문제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그것을 못하고, 이것을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답답하다.

 

 

Q. 단식 농성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것은?


홍희진 : 대학생들이 사회에 무관심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내 살길이 바쁘고, 내 학점, 취업이 우선이다. 이런 것만 바라보게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갖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나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회구성원 중에 한 사람이고, 세월호 문제는 안산에 사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더 많이 관심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문제를 알리고 해결하는 것에 힘써주었으면 좋겠다.

 

박유림 : 무관심이 이어지면 어느 순간 부조리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갈 것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느껴야 하고, 행동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비상식적인 것을 상식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사회에서, 나름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 직접 보여줘야 한다는 호소를 하고 싶었다.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4.16 특별법안의 핵심내용과 각 정당 특별법안의 차이

 

- 다스베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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