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놀러가는 거 아니에요” 성대 자치언론 <고급찌라시> (2부)


고급 찌라시. 2012년 3월 창간 이후 그들은 늘 베일에 싸여 있었다. 다른 매체의 연락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들이 늘 궁금하던 차. 그들은 ‘콕 찌르기’ 버튼으로 <국민저널>과 <성신 퍼블리카> 페이스북을 찌르며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2부 기사는 4월 4일, 고급찌라시 편집장 개마고원과 뒤늦게 동석한 밍기뉴, 분노의 메로나와 함께 진행했다. 밍기뉴는 고급찌라시 창간 당시부터 있었고, 분노의 메로나는 올해부터 <고급찌라시>에 새로 합류하게 됐다. 그리하여 인터뷰는 어쩌다 보니 <고급찌라시>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게 됐다. 



돈도 안 주고 기자들 사비를 털어서 매체를 만든다. 다들 뭘 보고 <고급찌라시>에 들어오는 걸까? 편집장이 보는 <고급찌라시>의 매력은? 


개마고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고찌 지원서를 보면 그런 말들이 많이 쓰여 있기도 하고. 



오후 4시, 늦잠을 자고 이제 일어나 나왔다는 분노의 메로나가 동석했다. ‘분노의 포도’라는 작품을 읽고 감명을 받은 나머지 ‘분노의 포도’로 필명을 지으려던 찰나, 자신은 ‘포도’보다 ‘메론’을 더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단다. 여기에 개마고원이 “발음하기도 힘들고 뭔가 덜 닦은 기분이라” ‘메로나’로 바꿔서 ‘분노의 메로나’가 됐다. 분노의 메로나는 올해 2월에 새로 들어온 신참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기자다. 성대신문이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으로 안다. 


분노의 메로나(이하 분메): 성대신문은 내 선택지 안에 없었다. 그냥 찌라시여서 들어온 거다. 언론을 할 생각이 없었다. 재미있어 보여서 들어온 거다. 그게 끝이다. 


<고급찌라시> 어떤가. 막상 들어오니 다른 점은 없던가? 


분메: 재밌다. 

개마고원: 무릎이 떨리는 것 같은데, 지금? 

분메: 그건 그냥 떠는 거다. 버릇!


재밌는 질문은 다 끝났다. (일동 시무룩) 학보사나 자치언론은 아무래도 결이 많이 다르다. 앞으로의 대학 언론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하나. 


개마고원: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옳은지 잘 모르겠다. 그걸 알고 있으면 우리가 해결책을 찾아낸 거지 않나.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이 맞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자치언론이든 학보사든 언론으로서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신문이 받침대로 사용되지 않고 받침대로 사용되더라도 신문이 제시한 화두에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수준은 돼야하지 않을까. 사실 대학 언론만이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정도 수준을 유지하면, 망한다. 그들이 망하길 원해서가 아니라,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이다. 학우들은 변하는데, 우리는 그대로지 않나. 어쨌든 변화는 필요하고 그 변화를 이야기해보고자 대학언론포럼이라는 자리가 만들어졌지만 아쉽게도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오후 4시 30분, 마지막으로 밍기뉴가 동석했다. 밍기뉴는 창간 때부터 고급찌라시에 있었다. 그에게 고급찌라시 창간 당시와 달라진 점을 물었다. 



밍기뉴: 창간했던 사람들은 완성된 형태에서 들어왔다.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확실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점차 합의해 온 형태로 이루어진 거다. 지금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고급찌라시’라는 기대치라는 게 있는 거다. ‘여기 들어오면 이럴 거야’ 라고 생각한 게 있으니 나도 바뀌는 면이 있고 다른 행동을 해야 하는 게 있는 거다.


예전의 고찌는 언론에 집중된 형태가 아니었다. 언론에 우선된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있어, 그런데 이걸 하려면 언론의 형태가 좋겠어.’라는 결정이 난 거다. 이전 고찌에게 언론이라는 형태는 도구고 수단이고 선택이었다면, 지금 같이하는 분들이랑은 이게 언론이고 이 상태에서 만들어가야 하는 거니까. 무게가 달라진 거다. 


예전의 고찌는 뭘 하고 싶었나?


밍기뉴: 처음 모인 사람들은 학생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많이 치이고 데인 친구들이 모였고, 그만큼 학교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지만 못한 이야기가 많은 친구들이었다. 우리가 가진 정보를 알려 학생 사회 정보의 간극을 메우고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언론이라는 형태가 나온 거다. 


제일 오래 있었는데 왜 편집장 안하고 있나? 


밍기뉴: 힘들다. 원래 그냥 입만 터는 역할이었다. 힘든 건 개마고원 시키고.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는 관계인가? 


개마고원: 아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착취당한다. 

밍기뉴: 양으로 솔직히 따져볼래? 착취라면 안 질 자신 있다. 

개마고원: 이게 참 자랑이 아닌데. 허허.


<고급찌라시>, 착취당하며 계속 하는 이유가 뭔가? 


밍기뉴: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대학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끝물이라고 생각한다. 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졸업이 다가오니까. 노망나기 직전이다. 졸업은 대학운동가의 숙명이다. 그 직전에서 학교의 역사를 오래 본 사람으로서 전달해줄 수 있는 게 가장 큰 것 같다. 학교에 오래 있었던 것만으로도 할 일이 많다. 흐름이 끊기지 않나. 뭘 알 것 같으면 졸업해서 떠나고 그러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일의 원인이 뭔지 기억조차 남아있게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남아있고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본다. 


<고급찌라시> 활동을 운동이라고 보나? 


밍기뉴: 나에게는 운동이다. 학생 운동이 대학 운동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라 생각한다. 안녕들하십니까나 독립 언론이 대학 운동으로서 하나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운동과 학생운동의 차이점이 뭔가? 


밍기뉴: 학생운동이라는 건 8-90년대 군부 독재 치하에서 했던 특수한 운동이다. 한국의 학생 운동을 영어로 번역하자면 student activist, 운동가가 학생이라는 뜻이다. 한국 학생운동의 경우 민주주의나 노동 운동의 선봉장에 서는 운동을 했지 않나. 첨병, 기수 역할을 했는데 단정적으로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이게 슬슬 한계에 부딪히지 않았나 생각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이는 한국에만 있는 예외적인 현상이다. 이제 대학 운동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노동 운동도 좋지만 학생 운동 자체가 노동 운동이 된다는 것 자체에 좀 회의적인 입장이다. 대학 내에서 대학 구성원이 대학에 거점을 두고 대학, 대학 문제를 중심에 두고 해야 한다는 거다. 결국 당사자 운동이다. 


약 3시간동안 떠들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개마고원: 부모님께 하겠다. 엄마. 나 절대 놀러가는 게 아니다. 진짜 바쁘고 만날 회의하느라 바쁜데, 그걸 말하지 못한다는 게. 나 절대 다른 거 안 한다. 열심히 공부 중이다. 엄마랑 아빠랑 내가 만날 놈팽이처럼 군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말 꼭 하고 싶었다. 어디 나갈 때마다 혼난다. 또 학교 가냐고. 내가 학교에 가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분노의 메로나: ‘분메’라고 줄여 부르지 말아달라. 풀네임으로 불러달라. 미들네임도 만들 거다. 분노의 ‘드’ 메로나. 미들네임 ‘드’ 붙여달라. 


개마고원: 우리 다음 호 공지로 띄우자. ‘공지: 개마고원, 개마 드 고원으로 개명’ 오 역시 미들네임이란 건 노블레스 같다. 

밍기뉴: 다음 호 다 이렇게 바꾸자. 제호 노블레스로 하자. ‘고찌에게 노블레스란? 미들네임’ 






밍기뉴: 총장님에게 하고 싶다. ‘총장님 이번 만우절 장난의 주역은 저였습니다. 제가 샤이니 오빠들을 좋아하듯이 평범하게 총장 오빠를 좋아하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제 개그센스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매우 슬프네요. 총장님만은 제 마음을 알아주세요... ♥’ 아참 마음은 채워져야 하니 검은 하트로 처리해주세요. 



글‧인터뷰/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공동 인터뷰/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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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니깐요. 찌라시가 신문처럼 하고 다니면 좀 그렇잖아요.” 성대 자치언론 <고급찌라시> (1부)


고급 찌라시. 2012년 3월 창간 이후 그들은 늘 베일에 싸여 있었다. 다른 매체의 연락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들이 늘 궁금하던 차. 그들은 ‘콕 찌르기’ 버튼으로 <국민저널>과 <성신 퍼블리카> 페이스북을 찌르며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1부 기사는 4월 4일, 고급찌라시 편집장인 개마고원과 진행한 일문일답이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 자리에 늦는 기자들(밍기뉴, 분노의 메로나)을 향해 “오면 마구 채찍질을 해줘야지.”라고 중얼거렸다. 




 

 




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건가? 예전에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무시하지 않았나.


메시지는 오해한 거다. 친구가 아니면 메시지가 기타 메시지 함으로 가는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나중에 다른 사람이 심심해서 메시지 함을 뒤지며 확인을 하게 됐다. 


그리고 내부에서 다른 데에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은 꾸준히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정간을 하게 됐다. 정간을 해제하고 이번에 고찌를 내면서 대학언론포럼이 열렸다. 다른 곳이랑 말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재미있었다. 


고찌는 성대신문에서 나온 기자가 만든 건가? 


성대신문과 관련은 없다. 독립언론을 생각했던 건 2011년 겨울이었다. 할 말은 해보자는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었고, 12년 3월이 되니까 류승완 박사 사건이 터지면서 성대신문이 결호 됐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등장하게 된 거다. 의도한 건 아닌데 마침 시기가 맞물려서 다른 사람들이 성대신문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한다. 


학보사 기자도 아닌데 왜 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기자만이 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말도 많았다. 그런 점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지 않나?’, ‘해야 할 말은 해야 하지 않나?’ 해서 독립언론으로 시작하게 된 거다.


문체가 독특하다. 찌라시는 왜 이런 문체를 사용했나? 


다양한 정보를 조금 더 쉽게 다가가게 하려면 쉬운 문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뢰도는 떨어지겠지만, 쉽게 읽힌다면 더 많은 정보가 쉽게 전달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문체를 사용했다. 그리고 찌라시니까. 찌라시가 신문처럼 하고 다니면 좀 그렇잖나. 그렇다고 루머를 쓰진 않는다. 


2013년 9월엔 왜 정간을 했고, 왜 나중에 정간을 해제하게 된 건가?


정간할 때 밝혔듯이 내부 사정이 있었다. 기자충원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자금 사정도 있고. 여러 가지가 몰려 ‘이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다.’싶었는데, 상황이 고찌를 다시 불렀다. 


2013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학교 측과 결탁해 선거 비리가 터졌다. 마침 그때 성대신문이 결호 됐다. 다들 불만은 많고 이게 문제라는 걸 알고 있는데 장으로 꺼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서 일단 호외를 냈다.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고, 그 호외를 통해서 학우들이 아직은 우릴 많이 필요로 하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합의 끝에 정간을 해제하려는데 기자가 필요하다고 구인을 했고 충원이 돼서 해제하게 됐다. 


고급찌라시 안에서 ‘이 기사는 잘 썼다.’, ‘이 기사라면 고급찌라시를 대표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기사가 있다면?  


제일 이슈가 됐고 지금까지 회자가 되는 기사는 평택 캠퍼스 기사다. (2012년 5월 17일 “제3캠퍼스 추진은 끝나지 않았다”) 성균관대가 평택에 제3캠퍼스를 추진하려 했는데, 우리가 이 기사를 낸 후 이 일이 전학대회(전체학생대표자회의) 안건으로 상정됐다. 그 후에 학교가 평택 캠퍼스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기사의 수준을 떠나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기사라면 평택 캠퍼스 기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아직 고급찌라시 기자가 누군지 알려지지 않은 건가? 


가끔 우리가 누군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 사람들을 모른다. 대부분 누구일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대부분 아니다. 


도대체 어디서 회의를 하기에 신분이 유지되는 건가? 


그건 밝힐 수가 없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이런 데만 찾아다닌다. (인터뷰 장소를 말하며) 당장 여기도 사람이 없지 않나. 밝게 살고 싶은데 사람이 점점 어둠침침해지는 것 같다. 자취방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거기서 마감을 하면 누가 기사를 쓰는지 안 쓰는지 눈으로 보이니까. 기사를 안 쓰면 째려보거나 채찍질하고. 


자금 조달은 어떻게 하고 있나? 


저희는 기자들 사비랑 일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보통 사비로 이뤄진다. 비슷하다. 다 제 살 깎아먹기다. (씁쓸한 듯 민트향이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씁쓸하다. 


2010년 이후 대학가에 생긴 자치언론/독립언론 중에 가장 오래 버티고 있다. 어떻게 하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해보자.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웃음). 



글‧인터뷰/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공동 인터뷰/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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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구역NISP] “학내 언론은 학생을 대표해서 학교에 경계심을 갖게 하는 존재” 연세대학교 자치언론 <연세通> 2

 

 


왼쪽부터 이진우 기자, 김수지 편집장 ⓒ자치언론네트워크

 

 

<연세通(통)>(이하 연세통) 은 1996년 <연세상경신문>으로 출발했다. 2004년부터 상경대 학생뿐만 아니라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연세통>으로 전환했다. 발행은 한 달에 한 번. 학생회비나 학교의 지원은 없다. 인터뷰는 연세대 학생회관 312호에서 진행했다. 인터뷰어는 당시 편집장이던 김수지 편집장과 이진우 기자.

 

 

“단언하는데 기수 때문에 존재하는 상하관계는 없다”

 

알고 보니 김수지 편집장은 이진우 기자의 같은 과 후배란다. 그렇지만 이진우 기자보다 한 기수 빨리 <연세통>에 들어왔다. 위계질서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진우 기자는 “여기가(편집장이) 좀 세요. 물리력이라고 하잖아요.”라고 답했다. 김수지 편집장은 웃으면서 그의 팔을 때렸다.

 

 이 기자는 “분위기 자체가 다른 언론사와는 다른 것 같다. 편집회의 때 모두 존댓말을 쓴다. 어떻게 보면 좀 더 친구 관계에 가까워서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편집장이라고 해서 내가 편집장을 지적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단언하는데 <연세통> 내에서 기수 때문에 존재하는 상하관계는 없다.”

 

 그래서 연세통의 편집회의는 길기로 유명하다. 편집국장 한 사람의 의견이 관철되는 게 아니라, 의견이 다르면 팽팽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회의는 일주일에 두 번, 보통 6시부터 시작해서 9시 30분쯤 끝난다. 마감이 코앞일 때는 열한 시에 끝난다. 12월에 선거 특별 호를 낼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회의가 이어졌다.

 

 

백양로 프로젝트를 보도하면서 회의감을 느껴

 

최근엔 어떤 걸 기사로 썼느냐고 물었다. 5월엔 ‘일베’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한쪽에선 ‘빨갱이 신문’이라는 말을, 다른 한 쪽에선 ‘일베 신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기사도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이하 백양로 프로젝트)’였다.

 

백양로 프로젝트는 연세대 정문에서부터 본관까지 있는 도로와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녹지와 광장을 만드는 사업이다. 계획이 원안과 달리 수차례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 간 협의가 부족했다.

 

 <연세통>은 10월호 커버스토리로 백양로 프로젝트를 다루며 2013년 내내 그에 대한 기사를 썼다. 주로 구성원 간 합의를 위해 소통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학교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 사안을 지속적으로 보도한 만큼 무력감과 회의를 느꼈다. 이진우 씨는 “저번 학기(2013년 1학기)부터 학내 언론사에서 백양로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다. 그런데 대부분 학생은 제대로 몰랐다고 했다. 아무리 기사를 쓰고 알려도, 기사에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허무함이 남더라. 자잘하게 실리는 기사들은 학생들이 얼마나 봐주고 문제의식을 느낄까.”라고 말했다. 

 

김수지 씨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공사가 2학기부터 진행될 것이라는 기사를 많이 보기도 했고, 많이 썼다. 그런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놀랐다는 반응을 보고 회의감이 들었다. 언론이 계속 보도하면서 여론을 형성해 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 연세춘추도 못하고, 우리도 못하고, 연세대 내 8개의 언론사 모두 못했다.”

 


대학언론의 위기는 구조적인 문제

 

김수지 씨와 이진우 씨는 이런 문제가 단순히 학내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기자가 열심히 기사를 써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김수지 씨는 “학교 안 공사 같은 건 많이 알 수 있는 사안이다. 백양로 프로젝트는 학교의 잘못이 크기도 하지만 학생들도 약간 문제가 있던 건 아닐까.”라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이진우 씨는 학생사회 내에서 어떤 사안이 충분히 논의된 후 학생회가 그 의견을 수렴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지만 이는 학내 언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우리가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낀다. 취재도 빈약한 경우도 많고 노력해야 할 점도 많고 부족한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노력할 테니 다른 학생들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학내 언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학내 언론을 한심하게 보거나 무효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학내언론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회 말고도 학생을 대표해 학교에 경계심을 갖게 하는 존재니까.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인터뷰/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공동 인터뷰‧글 /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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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구역NISP] “기사가 나가는 것, 그 자체로 가능성이 열리지 않나” 연세대학교 자치언론 <연세通> 1


 

 

연세대학교 자치언론 <연세通>과 두 번 만났다. 첫 번째 인터뷰는 김수지 편집장과 진행했고 두 번째는 이진우 기자도 함께였다. 두 번에 걸친 인터뷰 동안 연세대학교 내 언론 그리고 그 언론들이 모여 만든 언론출판협의회,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사 중인 백양로와 자치언론 <연세通>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첫 번째 인터뷰를 첫 기사에 그 다음 인터뷰를 다음 기사에 싣는다.

 


Q 작년 3월, 교육부가 ‘자율경비 선택납부제’를 권고하면서 불거졌다. 교육부의 권고에 연세대학교는 ‘자율경비’ 안에 언론 기금을 포함시켰고, 학생들에게 구독료 납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다. 납부율은 18%까지 떨어졌고 연세대학교 학보사 <연세춘추>는 백지 발행을 단행했다. 학교로부터 탄압이 들어오는 건가.


기존 학내 부속 기관인 언론의 경우 현재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확실히 선택납부제로 바뀌면서 어려워지고 있다.


<연세通>의 경우, 그냥 학교가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웃음) 연세대학교 내 언론이 소속된 언론출판협의회라는 게 있다. 만일 신문을 수거해간다든지 그런 방식의 탄압이 들어오면 언론출판협의회 차원에서 대응을 하지 않을까.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다. 하지만 대자보를 붙인다든지 그런 식으로 대응할 것 같다.

 


Q 언론출판협의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학내 부속 기관이나 자치적으로 재정을 마련하는 기관까지 섞여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매 학기마다 언론 비평을 진행한다. 언론출판협의회 소속 기자가 학내 언론에 대해 릴레이 형태로 기고 글을 쓴다. 비판을 할 수도 있고 비평을 할 수도 있고, 기성 언론을 비평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씩 내고 총학생회 선거 때 연세대 내 언론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언론출판협의회 이름으로 전체 토론회를 주최한다. 학생회칙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관습적으로 언론출판협의회가 주최해왔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같이 준비를 해나간다.

 


Q 언론출판협의회 차원에서 자치언론에 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있나. 고려대학교의 경우 ‘자치언론협의회’라는 게 따로 있더라. 학생들에게 3000원씩 받는 교지대 안에서 15%를 할당해 ‘자치언론 기금’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런 건 없다. 다만 카메라가 필요한데 돈이 없을 경우 언론출판협의회 차원에서 소액 정도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라디오방송국 같은 경우 방송을 하려면 모니터 같은 게 필요한데 일부는 지원해주더라. 학교가 아니고 학생회비에서 나오는 지원금이라 정기적으로 받는 형태가 아니다.

 

 

Q <연세通>과 지금껏 3학기를 함께했다. <연세通> 어떤가.


보람을 느낀다. 민감한 문제도 자유롭게 짚어낼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고 학생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고도 느낀다. 물론 학생들이 잘 안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면이 나갔다는 것 자체가 이 사건이 중요한 거고 학생들이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열리는 거니까. 그리고 과정에서 <연세通>이 그 방향을 생각한 거니까. 원래 개인적으로 학생사회에 대한 생각은 많이 없었다. 그런데 (<연세通>에) 들어와서 생각이 많아졌다. 학내 언론이 전반적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중요한 사안은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Q 연세대학교 안에는 이미 언론이 많다. 연세대학교 방송국 <YBS>, 학보사 <연세춘추>, 학보 <연세지>, 영자 신문인 <연세 애널스> 등. 이들과 다른 자치언론으로서의 <연세通>의 차이점과 특징이 있다면.

 

(<연세춘추> 등은) 자잘한 학교 주최 행사를 1면에 싣는다. 사실 학생들에게 이런 것들이 많이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연세通>은 1면 커버스토리에 많이 치중한다. 일관성이 있는 신문이라 생각한다. <연세춘추>는 학교 행사도 맡고 학생사회에 대해서 보도도 하고 혼재돼있는데, <연세通>의 경우 일관성을 지키는 게 있다.


△ <연세通> 2013년 12월호 1면 

 


아무래도 연세대 내 다른 언론들은 학교 소속 기관이기 때문에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교 입장의 홍보 글을 실어주는 게 있다. 하지만 그만큼 <연세춘추>는 기자도 많고 정보도 빠르고 깊은 보도도 많이 한다. 아무래도 <연세通>은 자치 언론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일반 학생들만 모여 신문을 만들지 않나.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고 학생들끼리 의견을 교류해 학생 위주의 신문을 만든다.

 


Q 앞으로의 <연세通>이 어떤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나. 생각해둔 청사진 같은 것은 있을까.

 

<연세通>을 하다보면 회의 시간이 길고 사람들끼리 생각도 입장도 달라서 토론이 길게 이뤄질 때가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모든 입장을 고려해서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고 사회를 바라볼 때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기사를 쓰는 관점을 유지해줬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점이 있지 않아?’ 같은 문제점을 계속 제시하고 기자 개인의 생각을 담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각을 담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서로의 생각이 담기고 생각할 거리를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예컨대 정보성 기사를 낼 때 기자들 내부에서도 회의를 통해 ‘굳이 비판 보도만 해야 하나? 정보성 기사를 담아도 괜찮지 않나? 유익하지 않나?’라고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모든 기사가 그렇게 나온다면 그것이 <연세通>만의 정체성과 차별성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민저널>이나 <성신 퍼블리카>나 상대적으로 <연세通>에 비해 뒤늦게 생긴 자치언론이다. 두 매체에 조언 한 마디씩 해줘도 좋다.

 

국민대학교 학생들은 되게 좋을 것 같더라. <국민저널>은 편집디자인도 예쁘고, 나중에 후배가 편집장이 되면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잘 돼있다. 매체의 호불호가 갈린다고 했는데, 그것도 인기의 척도가 아닌가. (일동 웃음)

 

<성신 퍼블리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 신문을 낸다는 게, 어떻게 보자면 자치언론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치언론이 검열이 없는 매체라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자본으로부터 자치적이라는 말이기도 하니까 그 점에서 좋은 것 같다.

 


공동 인터뷰/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인터뷰‧글/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저작권자(c)자치언론네트워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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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수원대학교 학생자유언론 <하>

 

 

왜 만들었을까? 그것도 한 학기밖에 안 남은 고학번이. 


‘수원대학교 학생자유언론’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영상 세 편(해교자들, 수원대학교 시국선언, 수원대학교 교수해임사태)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페이지 운영자는 자신을 “학보사나 학생기구와 무관한 한 명의 학생”이라고 밝힌 영문학과 장민서 씨이다. 


영상의 길이는 최소 13분에서 최대 20분. 2013년 한 해 동안 수원대에서 일어났던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장 씨는 수원대 본부의 전횡을 알리기 위해 국정감사 영상을 활용하고 위장취재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라 교육부와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라며 학교 상황을 집요하게 파헤친 걸까? 




 



Q 학생자유언론은 왜 만들었나?


작년에 별 사건이 다 있었다. 연극영화과 학생들을 기숙사 행정실에 가둬놓고 취조하고, 경찰서에 가겠다고 협박했다. 교수를 미행하다 걸려서 뉴스도 났다. 학생들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 교수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학생들의 글을 내리게 하고.  


그러면서 교비 50억을 TV조선에 투자하다 감사원에 걸린 이야기도 나왔다. 학교가 한다는 말이 ‘우리 학교는 영상 분야를 장려하기 때문에 종편이 장밋빛이라 투자를 했다’는 거다. 그런데 영상 분야를 장려한다는 학교가 영상을 만드는 정보미디어 학과와 연극영화과 시설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놨다. 


이쯤 되면 학교가 사과할 줄 알았다. 어느 날 공지사항에 수원대를 홍보하는 뉴스 2개가 올라왔다. 터진 일이 몇 갠데 어느 대학이 공지사항에 학교를 띄우는 뉴스만 싣나. 학생들이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말도 안 되는 프로파간다를 시작했다.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에 글을 썼다. 바로 교수를 통해 압력이 왔다. 이후에 다른 교수가 올린 글도 무단삭제를 당하고 나는 삭제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학교 홈페이지에서 차단당했다. 


학교가 실수를 했다. 첫 번째로 프로파간다 뉴스를 실으면 안 됐고, 두 번째로 날 차단하면 안 됐다. 세 번째가 교수를 징계한 것이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교수들의 징계이야기가 나왔다. 그분들의 공통점이 교수협의회에서 활동했다는 것이다.  


가만히 집에서 생각을 해봤는데, 1년을 돌이켜보니까 그분들은 학생들이 투쟁하는 걸 보고 도와줘야겠다고 해서 목숨 걸고 활동한 분들이었다. 교수들이 미행, 사찰당하고 욕먹고 고생해서 한 해에 바뀐 게 얼마나 많은데.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도의적인 문제더라. 학생 차원에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건 거창하게 뭘 하려고 한 게 아니라 학생들이 이런 걸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학생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Q 일부 교수들은 미행, 사찰, 파면까지 당했는데 본인을 징계하겠단 말은 없나?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린 다음 날 연락이 왔다. 학교의 입장은 날 징계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만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보직 교수들에게 학교가 징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들었다. 


 

 

Q 한 학기 남겼는데 징계가 무섭진 않나? 


처음 징계 얘기를 들었을 땐 인간이니까 철렁했다. 만약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나 자신에 대한 걱정보다는 부모님께 죄송하다. 그런데 그것 빼고는 걱정 안 한다. 수원대가 이걸 이유로 퇴학을 시킬 정도의 학교고, 이런 부당한 처사가 일어난 걸 방조하는 집단구성원이라면, 솔직히 퇴학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불의에 대해 침묵하거나, 애초에 불의가 행해지도록 한 학교나. 이런 학교에서 퇴학당한다는 협박에 하던 걸 멈추고, 졸업장 받아서 산다고 해도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Q 앞으로 뭘 할 건가? 


세 번째 영상을 준비하고 있다. 학교가 교직원 카페를 만들어서 보직교수와 교직원들이 교수협의회의 비밀 명단에 올라와 있는 계약직 교수들을 탈퇴시키기 위해 겁을 줬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혼자 하면 위험하다. 학교도 타깃을 한 명으로 정하면 되니까. 믿을 만한 사람 몇 명과 같이 활동할 거다. 


수원대에도 자유 언론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듣고 싶은 뉴스는 학보사엔 잘 안 실린다. 기회가 된다면 자유 언론을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그 토대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700명의 독자라는 토대를 줄 수 있지 않겠나. 


 

Q 수원대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나? 


앞으로 수원대가 소통해야 하고 투명화가 이뤄져야 한다. 의견나눔터에서 글을 싹 삭제하거나 옳은 말 하는 교수들을 자르는 건 소통이 아니다. 


학교가 잘되려면 투명성, 소통, 신뢰 구축 그리고 자신의 적극성을 보여줘야 한다. 아직까지 행보는 정 반대다. 파면, 징계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총장이 자발적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고 교수들을 사랑해서 좀 소통했으면 좋겠고. 그게 안 된다면 총장과 재단은 학교에서 물러나는 것 말고는 수원대에 희망이 없다고 본다.  


학생들도 친목과 더불어 이런 문제를 토론했으면 좋겠다. 교수협의회에서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접하게 해줬다. 기회가 왔으면 그 기회를 이용해 학생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내가 대단히 이타적이거나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학교에 무슨 대단한 정의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사회가 매뉴얼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란 걸 안다. 그래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어야 한다. 정의가 아니라 상식이 빗나가고 있다는 점이 답답하다.


 

Q 과연 학생들이 알기만 해서 뭘 할 수 있을까? 


많은 걸 할 수 있다. 최소한 후배들에게 전승될 수 있다. 역사를 알아야 실수를 반복 안 한다고. 이런 일이 있었을 때 선배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후배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영상과 기록으로 남겨놨기 때문에 학생들이 관심 있으면 볼 수 있다. 


학생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시위하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학생들이 모르쇠를 통한 면죄부를 받는 걸 막고자 했다. 가만히 있다고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훗날 이 일을 회자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어.’라고 편리하게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싶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는 알 권리를 향한 신념과 권력은 견제돼야 한다는 의견을 확고히 드러냈다. 정말 학생회나 학내 언론에서 일한 적이 없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학보를 집어서 읽어본 적이 없다. 1학년 때 집행부에 있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 그 후로 한 건 없다. 재밌어서 연극 연출을 한 번 했고.”라고 대답했다.  

 

“장민서를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일단 제대로 된 공식 여론 기구가 생겨야 한다. 정보공시가 제대로 이뤄지고 학교에 정보를 요구할 때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수 파면 건이 취소되고 학교가 종편 비리를 포함해 의혹까지 총장이 사과해야 한다. 그러면 내 진로에 100% 집중을 하지 않을까? 그 전까지 재밌는 사건이 터지거나 문제가 있다면 조사를 해서 학생들에게 알릴 거다.”


 


 

인터뷰/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인터뷰․글/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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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학교를 해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수원대학교 학생자유언론 <상> 

 

 

2013년부터 다시 한 달이 흘렀다. 하지만 수원대는 미처 2014년으로 넘어오지 못한 듯 보인다. 최근 수원대 이사회는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4명에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내린다. 작년 국정감사에서는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교육부 서남수 장관에 “감사가 시작되면 수원대를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수원대에도 ‘학생자유언론’이 만들어졌다. 검소․정의․창의라는 교훈을 가진 대학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자치언론네트워크’에서는 수원대에 ‘학생자유언론’을 만든 수원대 장민서(영어영문학과 09)씨를 만나 2013년 수원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평범한 학생’이라던 그가 왜 언론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었다. 





 

 

 


 

‘등록금 사용 내역 공개’를 요구한 글 

수원대 홈페이지에서 이내 삭제당해 

게시글 작성자, 교수에 압박 전화 받아 


작년 2월, 수원대 연극영화과 학생회장 손현규 씨는 수원대학교 홈페이지에 등록금 사용 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최소한의 기자재도 갖추지 않은 연영과에 낸 자신의 등록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알아야겠다’는 거다. 학생처장은 사용 내역을 공개하겠다며 글을 내려달라고 손현규 회장을 달랬다. 이후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다. 


시작은 사소했다. 수원대 영어영문학과 09학번으로 곧 졸업할 예정이었던 장민서 씨는 친구들에 ‘야, 연영과 애들 난리 났더라, 시위한대’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건넸다. 그저 여러 관찰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학생은 학교에 요구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며 연영과를 지지한다는 요지의 글을 ‘의견 게시판’에 게재했다. 장민서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쓴 게시글을 내리라는 영문과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교비 50억 … TV조선에 투자

수원대 “영상 분야를 장려하고 있다” 


사건은 연달아 밝혀졌다. 수원대가 대학 교비 50억을 재단 몫으로 탈바꿈해 TV조선에 투자한 것이 감사원 조사를 받았다고 알려진 것이다. 학생들은 교비를 멋대로 운용한 학교 측에 사과를 바랐지만, 학교는 “수원대는 영상 분야를 장려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이 장밋빛 전망을 가지고 있어 투자했다”고 말한다. ‘영상 분야를 장려한다’던 수원대 영상 관련 학과에서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애프터이펙트(영상 편집과 같은 콘텐츠 제작에 주로 쓰이는 합성 소프트웨어)’ 없어 수업이 3주 동안 지체됐다. 수원대 재단은 감사원에 50억을 되돌려내겠다고 약속했지만, 50억은 TV조선에 그대로 남았다. 그 틈바구니에 수원대 무도체육학과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구성원의 동의 없이 학과를 없애버린 것이다. 


학교 스쿨버스는 가짜 석유를 쓰다가 지나가던 학생에 의해 적발된 한편 버스 요금을 내렸다며 학교 본부와 수원대 총학생회는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버스 노선과 운행 시간 또한 함께 축소됐다. 등록금도 마찬가지 수법으로 인하했다. 등록금을 인하한 뒤 말도 없이 수업 시수가 줄었다. 오히려 수업 시수가 줄었다. 오히려 수업 시수가 줄어 등록금이 인상된 셈이었다. 


수원대 배재흠, 이상훈, 이원영 교수를 필두로 교수협의회(이하 ‘교협’)가 설립됐다. 교협에는 정년을 1년 남긴 교수부터 매년 심사를 거쳐 재임용을 받아야 할 계약직 교수까지 포함돼 있었다. 수원대 교협은 지난 1년간, 연영과 학생들을 지지하고 도왔다. 


학교 교직원이 교협 소속 교수를 미행하기 시작한 것이 드러났다. 미행 내용이 밝혀지자 학교는 ‘미행은 교직원들의 과잉충성’이라며 선을 그었다. ‘개인적 일탈 행위’라는 거다. 또한 교협 교수가 타고 다니는 자가용 바퀴에 연쇄적으로 ‘누군가’ 구멍을 내서 경찰 수사를 의뢰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수원대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연영과도 올해 처음으로 지원금과 프로그램을 제대로 받았고, 계약직 교수의 처우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다. 학교는 겨울방학이 시작하자마자 ‘해교(害校)행위’를 했다는 명목 아래 교협 소속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언론이 만들어지기에 알맞은 토양이다. 지난 12월, 스스로를 ‘강 건너 불구경한 학생’이었다던 장민서 씨는 수원대에 학생자유언론을 만들고 ‘수원대학교 시국선언’이라는 동영상을 유투브에 게시했다. “너무 좌절스럽더라고요. 수원대는 제대로 된 커뮤니티도 없지, 뛰어다니며 외쳐야 할 지경이더라. 일개 대학생인 제가 어디 가서 이걸 알리겠어요. 그런데 눈앞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 이후 그가 썼던 글과 학생들의 항의글은 해당 게시판에서 차례로 지워졌고, 그는 이내 수원대 홈페이지의 모든 게시판으로부터 ‘접근 차단’ 선고를 받는다. 그 역시 ‘학교를 해친다는’ ‘해교자’가 된 것이다. 


수원대 교직원, 아이디 바꿔가며 

카페에 교협 비방 댓글 달아 


지난달, 총장은 교협 교수와의 면담 자리에서 교협 교수 3명과 자리에 없었던 교협 소속 계약직 교수를 가리켜 ‘이 쓰레기 같은 X’이라고 욕을 하며 “내가 죄가 있으면 얼른 잡아가야지. 왜 안 잡아가? 법치주의 국가인데 왜 안 잡아가냐”고 말한다. 


이 사건으로 자리에 있었던 교협 교수들은 총장에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수원대학교 교직원-교수-학생 카페’에 자신이 수원대 교직원이라는 것과 실명을 밝힌 이용자가 ‘총장은 욕을 하지 않았다.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라’고 적었으나, 총장의 ‘막말’은 녹취록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그러자 교직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약직 교수는 교협에서 나와라’라며 협박을 시도했다. 또한 해당 카페에서는 학교 측에 가까운 교수 1명과 교직원이 조직적으로 여러 사람인양 댓글을 단 흔적이 발견됐다. 


장민서씨는 “카페를 조사하고 있다. 하나같이 교협을 비판하는 내용뿐이다. 카페 이용자는 교협 명단을 공개하거나, 교협 교수들이 총장을 비판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배은망덕하다며 비난하는 내용을 연달아 게시했다.”고 말했다. 


“총장에 잘못을 빌면 용서해준다더라”

협상 결렬, 이후 교협 교수 4명 파면 


수원대는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해당 교수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파면 사유로는 1) 허위사실 유포 및 학교 비방, 2) 학교 및 총장과 보직교수의 명예훼손, 3) 학교재산을 이용한 영리행위를 들었다.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거다. 


하지만 이사회에서는 교수 4명에 ‘잘못을 빌면 징계를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며 회유했다. 수원대 교수협의회 소속인 배재흠 교수는 ‘교협은 말도 안 되는 학교 측의 요구에 부응하며 1년 단위로 재임용 심사를 거치는 계약직 교수와 학생의 이익을 얻기 위해 만들어졌다. 계약직 교수를 제외하고 우리만 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사회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이사회에서는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계약직 교수도 포함시켜 줄 테니 수원대 교협을 해체하라는 거다. 합의는 결렬됐다. 보직 교수가 파면당한 교협 소속 교수들을 찾아와 ‘가서 총장에 잘못했다고 빌면 피곤한 일이 끝난다더라’라며 설득했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지난 14일, 수원대 이사회는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배재흠, 이상훈, 이원영, 이재익 교수를 파면시키겠다고 통보했다. 


수원대 이인수 총장은 이사회에서 파면을 결론지은 8일부터 14일 사이에 교협 교수를 만나 이들이 해당 사안에 양보하기를 종용했다. 이는 자신이 이사회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수원대 총장은 본인이 이사회 임원이기도 하다. 사실상 이인수 총장을 막을 수 있는 견제 장치가 학교 내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교협 교수들의 양보를 종용했던 수원대 이인수 총장은 이미 지난 가을 명예훼손으로 교협에 소송을 걸어두었다. 교육부는 수원대 교수의 해임된 교수들의 복직은 ‘학교의 선심’에 기대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인터뷰/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인터뷰․글/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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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구역NISP] 협동조합으로 독립언론을 꿈꾸는 외대언론협동조합


 

11월 16일, 휴대전화로 ‘땡’하는 소리와 함께 메일 한 통이 왔다. 내용인즉,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외대알리>라는 독립언론이 생기니 축사를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축사를 보내며 당장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 <국민저널>과 <성신 퍼블리카>가 외대언론협동조합 <외대알리> 창간을 축하하며 보낸 축사. <외대알리> 13면에 실려있다. 


마침 인터뷰 날이 <외대알리>의 발행일이었다. <외대알리> 창간호는 지난 22일 있었던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선거를 겨냥하고 만들어졌다. 출마한 총장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한 한편, 인기 게임 GTA 콘셉트에 맞춰 지속가능성-교수중심도-학생중심도-현안 해결의지-실현가능성-직원중심도라는 6가지 능력치를 놓고 총장 '캐릭터'를 선택하는 구성으로 꾸려졌다. 강유나 외대언론협동조합 이사장과 임채윤 외대알리 편집장은, “사실 어제까지 마감 작업을 했다. 마감을 4일 동안 해서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기운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선거특집호 발행 후 권고사직과 더 심해진 검열


다짜고짜 왜 독립언론을 만들었는지 물었다. 강유나 이사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외대학보 편집장이었다. 혹시 <외대알리>를 창간한 이유가 작년 사건과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작년 12월, 강 이사장과 외대학보 기자들은 사비로 총학생회 선거특집호를 발행해야 했다. 학교가 특정 선본의 공약을 분석하는 것은 선거 개입이라며 학보 발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선거특집호를 냈다는 이유로 학보사에 대한 모든 재정지원이 끊겼다. 주간교수는 한 달 동안 연락이 안 됐다. 1월 3일에 나타나서 처음 한다는 말이 ‘학보사의 정상화를 위해 강유나 편집장이 있으면 안 된다. 새 편집장을 뽑을 논의를 하기 바란다.’라는 말이었다. 강압적으로 나가라고 하진 않았지만 내가 있으면 다른 기자들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편집장의 권고사직 소식을 접한 기자들은 세 가지 대처방안을 생각했다. 첫 번째는 편집장과 기자들이 다 같이 사퇴하고 독립언론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나가지 말고 버티자는 방법이었고, 세 번째는 독립언론을 만들되 그 시기를 6개월 후로 늦추자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6개월 동안 여러 전략을 짜고, 월급이나 장학금을 모아 독립 언론 발행자금을 확보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임채윤 외대알리 편집장은 당시 학보에 남아있던 기자였다. 임 편집장은 “그 6개월 동안 학교가 너무 심하게 탄압했다. 신문을 보면 표제, 부제, 심지어 사진까지 바뀌어 있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신문 발행을 해주지 않았다.” 라며, 그 안에서 기자들이 점차 지쳤음을 설명했다.


그 사이 강유나 편집장은 전국대학언론협동조합의 이사로 취임했다. 학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강 이사장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독립언론의 길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총학생회에서 먼저 외대학보의 독립을 제안한 것.


이는 강 이사장이 영어대 학생회장이 된 것과 무관치 않았다. 그는 4월 단과대 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됐고, 학생회 회의에서 누차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생회장단은 강 이사장의 의견에 공감했다. 강 이사장은 외대학보에 학생회의 제안을 전했다.


그러나 외대학보 기자들은 학생회의 홍보지가 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 기자들은 불과 몇 개월 전 독립언론을 꿈꿨던 동료였다. 임 편집장이 학보사를 그만둔 것도 이 무렵이었다.


“협동조합은 기관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채택한 방식”


왜 하필 협동조합이었을까? 강 이사장은 협동조합이 학교나 학생회의 간섭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협동조합은 학교에서 벗어나서 서울시에 적을 두고 있다. 법인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변호사를 통해 해야 하므로 학교가 탄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외대언론협동조합은 일반회원이나 후원회원뿐 아니라 단체조합원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다. 학생회가 조합원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만일 가입하게 된다면 학생회는 자치회비 일부를 조합비로 낸다. 이렇게 모인 조합비로 <외대알리> 1,000부를 찍었다.


보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외대언론협동조합을 학생회칙에 명문화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방법을 알아보는 중이란다. 강 이사장은 “정기총회나 전학대회를 열어 학칙 추가나 개정이 가능한 지 논의를 했다. 협동조합 창립총회와 외대알리 마감 때문에 조금 바빠서 미뤄진 상태다.”라고 답했다.


외대언론협동조합의 주요 이사진과 감사는 학생회장들이다. 학생회는 다른 어떤 집단보다 학교 내부 정보가 많이 들어온다. 강 이사장은 “정보 공유 측면에서 학생회와 언론의 시너지 효과는 대단하다.”라며, 오히려 학보에서 일할 때보다 정보 수집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이사진이나 조합원이 학생회 관계자들이니 학생회를 비판하는 데 지장은 없을까? 강 이사장은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협동조합을 만들었을 때 학생회장들은 이사장 자리를 서로 마다할 정도였단다.


강 이사장은 “사전에 언론관을 공유해야 한다. 학생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고, 학생회가 잘못하면 언제든지 비판받을 수 있다는 점이 확실하게 잡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해선 안 된다.”라고 못 박았다.


강 이사장의 확신처럼 학생회와 언론 사이의 건강한 긴장 관계가 계속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성공한다면 20년째 사경을 헤매는 대학언론을 살릴 묘책임은 분명해 보인다. 새로운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글․ 인터뷰 /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공동기획. 인터뷰/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저작권자(c)자치언론네트워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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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구역NISP] ‘꿈틀하기도 전에 죽은 지렁이’를 되살리자, 외대언론협동조합 <외대알리> 

 



옛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국민저널>은 성북구에 위치한 이웃, 성신여자대학교 자치언론 <성신 퍼블리카>와 함께 백지장을 맞들어 보기로 했다. 서로의 콘텐츠를 나누고, 급한 소식들은 공유하며 함께 자치언론의 역량을 쌓아보기로. 그렇게 뜻을 모은 두 매체는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만들었다.


첫 번째 연대가 성북구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정릉라이프>와 <돈암라이프>였다면, 두 번째 연대체의 결과로 [공동취재구역NISP]라는 자치언론 인터뷰 연재를 준비했다. 여기서 NISP는 Network of Independent University Press의 약어이다. [공동취재구역NISP]는 홍수처럼 쏟아지고 썰물처럼 사라지는 대학 자치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보고 진단하고자 마련됐다. “자치언론네트워크” 안에 속한 기자 두 명이 동시에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타대 자치언론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구성과 시각을 담은 인터뷰 기사를 두 편 선보인다. [공동취재구역NISP]은 두 번째 인터뷰이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언론협동조합 이사장 강유나 씨와 외대 독립언론 <외대알리> 편집장 임채윤 씨를 만났다.

 

 

“저, <외대학보>에서 잘렸어요.” 


꼭 1년만이었다. 작년 겨울, 교수신문 주관 전국대학언론기자학교에서 ‘학내 언론 편집권 침해와 독립 언론의 사례’로 같이 발표를 진행했던 한국외국어대학교 학보사 <외대학보> 강유나 편집장과 임채윤 기자를, 외대 독립언론 <외대알리> 강유나 외대언론협동조합 이사장과 임채윤 편집장으로 다시 만나게 된 건. 


지난 1월, 지나가듯 던진 “잘 지내냐”는 말에 <외대학보> 강유나 편집장은 담담히 “학보사에서 해임 당했다”고 대답했다. 외대 선거특집호 호외를 앞세운 보복성 해임이었다. 작년 <외대학보>는 선거특집호를 냈다는 이유로 학교 본부로부터 모든 재정적 지원을 중단 당했고, 주간교수는 강유나 편집장에게 “네가 나가지 않으면, 애들(기자들)이 힘들 거다”고 말하며 강 편집장을 내몰았다.


당시, 강유나 편집장은 “독립 언론을 준비할 거”라 말했다. 이미 반년 전, 그렇게 학내 방송국을 나와 자치언론에 몸담고 있던 기자는, 그의 앞길에 그저 행운을 빌어주는 것 말고는 적당한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준비”까지 1년이 걸렸다. 같이 독립언론을 만들자 다짐했던 몇몇 <외대학보> 기자들은 다른 길을 택했고, 지난 20일 <외대알리>가 창간됐다. <외대학보>에서 <외대알리>로, 편집장에서 이사장으로, 소속도 직책도 모두 바뀐 1년 동안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가 아니면 학보를 만들 사람이 없으니까”


강유나 편집장이 <외대학보>에서 해임된 후, 학보사 기자들은 독립 언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정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6개월 후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자고 결심했건만, 학보 검열은 더욱 심해졌고 기자들은 지쳐버렸다. “책임감으로 버텼어요. 당시 <외대학보> 기자가 3명이었는데, 신문 만들기도 급급해서 독립 언론 생각은 없었던 거죠.”라고 임채윤 편집장은 전한다. 


지친 기자들에게 주간교수는 ‘위임장’ 양식을 내밀었다. ‘기사를 수정받고 싶은 기자만 제출하라’던 위임장은 사실상 기자 자신의 권리를 학교 측에 넘기라는 권유였다. 기자가 위임장을 제출하면, ‘제출했으니 마음껏 검열하겠다’고 결론 내려질 테고, 위임장을 제출하지 않으면 그것대로 학보 전체에 피해를 입히게 되는 셈이었다. “학교는 결국 기자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요구한 거고, <외대학보>의 독립 언론 가능성은 날아간 셈이었다. 그러니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해야 하는데, 꿈틀하기도 전에 지렁이가 죽어버렸어요.”라고 강유나 이사장은 말한다. 임채윤 편집장은 이 틈바구니 속에서 <외대학보>를 나와 <외대알리> 창간을 준비한다.


"학내 언론기관과 학생회가 지향하는 학교는 결과적으로 똑같지 않은가요?"


학생회가 조합원이 되는 구조, 외대언론협동조합 <외대알리>가 학생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외대학보>를 독립시키자는 제안은 오히려 학생회 쪽에서 먼저 들어왔다. 학보의 어려운 상황을 공유한 학생회장들은 언론 자유를 위해 뜻을 모았다. 전국 대학 언론 최초의 ‘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서로 도움이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요. 언론은 어떤 사안을 퍼트릴 수는 있지만, 직접 실행하는 집행력은 부족하고, 학생회는 퍼트릴 수는 없지만 집행력은 있으니까.” 


“외대 언론과 학생회가 바라는 학교가 결국 똑같지 않나요? 지향하는 바가 같으니까 말이 통한 거고, 그러다보니 언론의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고.”  






Episode1. “<외대알리>는 무슨 뜻인가” 


"‘외대인의 알 권리’라는 뜻도 있고, 뭔가를 알리다, 는 뜻도 있고. 어느 단과대 학생회장은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 ‘무하마드 알리’가 7전 8기의 대명사잖아요. 창간하려 거친 무수한 노력을 빗대 무하마드 알리다, 라고. 또 누군가는 가수 ‘알리’가 너무 좋아서(일동 웃음)” 강유나 이사장의 대답에 임채윤 편집장이 거든다. “사실 저희가 <외대알리>를 만들면서 알리 노래를 계속 들었어요.” 


Episode2. “한 성격하시는 구나”


결과적으로 <외대학보>에서 <외대알리>로, 소속을 옮긴 사람은 임채윤 편집장 한 명 뿐이었다. ‘왜 나왔냐’는 질문에 임채윤 편집장은 “너무 많이 건드려대니까, 제 기사를. 짜증나서 나왔다”고 대답한다. <성신 퍼블리카> 서혜미 편집장 왈(曰), “한 성격 하시는구나(일동 웃음)” 임채윤 편집장이 밝게 웃으며 화답한다. “저 되게 온순한 사람인데…(일동 웃음)” 


임채윤 편집장이 <외대학보>를 나온 결정적인 계기는 번역 공부를 하는 시각장애인 기사를 준비하면서였다. “시각장애인이 번역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나요? 그 아이템을 넘겼더니 … ‘이런 걸 왜 인물 면에 싣느냐. 이런 건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롯데호텔’ 사장 같은 사람 섭외해 와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Episode3. "지금 네 이름을 검색하면 기사 몇 개가 …”


강유나 편집장을 해임시키는 자리에서 학보사 주간교수는 안타까워하며 “지금 네 이름을 검색하면 기사가 몇 십 개씩 뜨는데, 나중에 대기업에는 입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단다. 강유나 이사장 왈(曰) “애초에 대기업은 생각도 안했는데! 동생이 제 이름을 검색해보고 놀라서 달려왔어요. 아빠는 이미 기사 스크랩을 해놓으셨더라고요.(웃음)” 강유나 씨는 주간교수와의 대화 이후, 영어대학 학생회장에 나갈 결심을 한다. 학교 본부는 <외대학보> 강유나 편집장 해임 건을 조용히 덮길 원했고, 그렇게 덮인 이후 <외대학보>는 기자가 써서 넘긴 표제․부제․사진․리드까지 검열 당한다. 이것이 <외대알리>의 창간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글․ 인터뷰 /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공동기획. 인터뷰/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저작권자(c)자치언론네트워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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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구역NISP]

 “다양한 단체들이 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해줬으면…”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칼바람은 유난히 자치언론에게 혹독했다. 자치언론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근래에 폐간한 대학이 부지기수. <성신 퍼블리카>도 이 위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성신 퍼블리카>는 국민대 자치언론인 <국민저널>과 뭉쳐 ‘자치언론네트워크’을 만들었다. ‘자치언론네트워크’는 자치언론의 생존은 물론 대학언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로 했다.

 

첫 번째 연대가 성북구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정릉라이프>와 <돈암라이프>였다면, 두 번째 연대체의 결과로 [공동취재구역NISP]라는 자치언론 인터뷰 연재를 준비했다. 여기서 NISP는 Network of Independent University Press의 약어이다. [공동취재구역NISP]는 홍수처럼 쏟아지고 썰물처럼 사라지는 대학 자치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보고 진단하고자 마련됐다. “자치언론네트워크”에 속한 기자 두 명이 동시에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타대 자치언론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구성과 시각을 담은 인터뷰 기사를 두 편 선보인다. [공동취재구역NISP] 첫 번째 인터뷰이로 고려대학교 정경대 학생신문 <더 호안스> 기자이자 고려대 자치언론협의회 대표 김주환 씨를 만났다.

 

 

 

Q. 자언협은 왜 생겼나?

A. 당시 자치언론들에 재정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2005년에 단체를 만들고 지원을 받아 글을 써보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알고 있다.

 

Q. 현재 자치언론협의회엔 몇 곳이 포함되어 있나?

A. 교지대로 포함된 고대문화와 석순, 그 외 자치언론으로는 The Hoans, KUTV, 몰라도 되는데, 쥐뿔, 퀴어가이드까지 총 일곱 단체가 소속돼 있다.

 

Q. 운영은 어떻게 되고 있나?

A. 매월 첫째 주 화요일에 만나 월례총회를 한다. 이 날 위원장이 안건지를 가져오는데, 안건은 논의안건과 보고안건으로 나뉜다. 예산신청과 결산내역을 같이 검토하고 총회 때 예산 신청을 하면 위원장이 예산을 배분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Q. 자언협 활동을 하는데 요구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

A. 자언협은 자치언론의 재정확보를 도와주는 단체기 때문에 딱히 요구하는 건 없다. 가입할 때는 자기 단체 소개와 앞으로의 활동계획서가 필요하고, 2회 정도는 자비로 출판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 특별히 요구하는 것은 없다.

 

Q. 새로 생긴 자치언론이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기존 자언협 구성원들이 반대하진 않나?

A. 콘텐츠 자체가 학생들에게 해가 되는 게 아닌 이상 이념에 관계없이 가입을 받는다. 예전에 리베르타스라는 고려대학교 북한인권동아리가 출판을 하기 위해 가입신청서를 낸 적이 있었다. 교지대를 나눠주는 고대문화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인 단체였지만, 자언협 구성원들이 흔쾌히 받아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Q. 예산을 둘러싼 갈등은 없나?

A. 갈등이라기보다는 자치언론기금이 제한적이다 보니, 서로 눈치를 보는 게 있다. 1년에 한 번 발행하는 자치언론은 한 번에 많은 액수를 신청하는데 그걸 부담스러워한다. 잔고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한 번에 많이 신청하면 다른 단체가 발행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생각하는 것만큼 첨예한 갈등은 없다.

 

Q.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좋은 것 같다.

A.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의가 이뤄진다. 매달 논의하거나 보고할 게 그렇게 많지 않으니 별 다른 얘기는 없다. 단체장이 자기 단체에서 나온 출판물을 소개하면 다른 사람들이 잘 읽었다고 피드백하고. 가끔 어떤 정보가 있으면 서로 나누기도 한다.

 

Q. 자언협이라는 이름 하에 세미나나 공동취재처럼 같이 진행하는 사업이 있나?

A. 재정 관련 일만 논의하고 그 외의 다른 업무를 따로 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각 단체들 중심으로 활동했다. 같이 사업을 추진하면 정말 좋겠지만 생각보다 까다롭다. 단체마다 기획 회의를 하는 시간과 발행 시기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단체장들만 와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각 단체 회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일이 얼마만큼 진행되는지 알기 어렵다.

이번 달에 처음으로 동아리 연합회 축제 때문에 부스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어떤 행사를 진행할 것인지를 논의한 것 같다.

 

Q. 최근에 학생회비-교지대 분리납부 논란이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됐나?

A. 연세대가 분리납부를 시행한 후 납부율이 10%까지 떨어졌다. 그걸 보고 현재 분리납부 안은 거의 폐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처럼 교지대와 학생회비가 같이 가는데, 지금은 총학 측에서 인상을 추진하는 것으로 안다.

대신 이번 개정안을 보면 교지대 예결산 심의에 관한 내용이 생겼다. 그동안 교지대는 전학대회 때 예산안 보고도, 심의도 안 하고 결산안 보고만 해왔다. 앞으로 전학대회에서 심의를 철저하게 할 것 같다.

 

Q. 얘기를 들어보니 고려대학교 자치언론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자언협 내부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있나?

A. 자언협 소속 언론들끼리 항상 ‘자언협이 제대로 홍보되고 있나’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다. 각 단체들이 자치언론협의회 소속이라고 광고를 하지만 아직까지 자치언론협의회를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항상 자언협을 더 알리자는 마음은 다들 가지고 있다.

 

Q. 자치언론의 미래가 어떨 것 같나?

A. 엄청 밝을 것 같진 않다. 계속 교지대 납부율이 떨어져서 자언협 기금이 얼마나 확보될지, 앞으로 자치언론에 사람들이 얼마나 들어올 지도 모르겠다. 좀 더 많은 글과 언론을 접했으면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자언협에 들어오는 단체도 변화가 없었다.

저희의 숙제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자치언론을 알리고 학생들이 교지대를 납부할 수 있도록 좀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Q. 대표로서 그리고 있는 자언협의 청사진이 있나?

다양한 단체들이 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이든 비전문적이든 학생들만의 시선을 담은 글이 나오길 바란다. 현재 정기 출판물을 볼 수 있는 게 호안스, 고대문화, 석순, 대학내일, 스포츠 KU밖에 없다. 그러나 고대문화와 석순은 대략 한 학기에 2번 정도 나오니 가판대에 없는 때가 더 많다. 가판대에 남아있는 언론이 호안스, 대학내일, 스포츠KU 그 정도밖에 없는 거 같다. 리베르타스처럼 북한인권이든, 아니면 패션이든 분야에 관계없이 글이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

 

 

기획․인터뷰 / 유지영 기자(국민저널) 서혜미 기자 alreadyblues@gmail.com
글/ 서혜미 기자 weselson@gmail.com 

<저작권자(c)자치언론네트워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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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구역NISP] 자치언론의 미래? “아마도 상생”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칼바람은 유난히 자치언론에게 혹독했다. 자치언론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근래에 폐간한 대학이 부지기수. <성신 퍼블리카>도 이 위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성신 퍼블리카>는 국민대 자치언론인 <국민저널>과 뭉쳐 ‘자치언론네트워크’을 만들었다. ‘자치언론네트워크’는 자치언론의 생존은 물론 대학언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로 했다.

 

첫 번째 연대가 성북구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정릉라이프>와 <돈암라이프>였다면, 두 번째 연대체의 결과로 [공동취재구역NISP]라는 자치언론 인터뷰 연재를 준비했다. 여기서 NISP는 Network of Independent University Press의 약어이다. [공동취재구역NISP]는 홍수처럼 쏟아지고 썰물처럼 사라지는 대학 자치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보고 진단하고자 마련됐다. “자치언론네트워크” 안에 속한 기자 두 명이 동시에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타대 자치언론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구성과 시각을 담은 인터뷰 기사를 두 편 선보인다. [공동취재구역NISP]은 첫 번째 인터뷰이로 고려대학교 정경대 학생신문 <더 호안스> 기자이자 고려대 자치언론협의회 대표 김주환 씨를 만났다.

 

 

 

 

 

#1 “금요일, 좋습니다”

 

흔히 인터뷰 기사는 섭외에 절반 이상의 노력이 들어간다고들 말한다. 어떤 인물인지에 따라 기사 재미나 내용이 많이 좌우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르게 생각해보면, 섭외가 성사되기까지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치언론네트워크’ 기자들은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로 고려대 자치언론협의회 김주환 대표를 선정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 그가 승낙할지 거절할지 긴장하며 침을 꼴깍꼴깍 삼켜 걸었던 전화는 채 1분이 되지 않아 끝났다. 인터뷰 제안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주환 대표는 “(인터뷰를 하기에) 언제쯤이 괜찮은가요?”라고 대답했다. 그의 LTE-A급의 빠른 대답 덕분에 전화를 건 기자는 제안 받은 사람보다 더 당황해버렸다. 그렇게 잡힌 인터뷰는 추위가 성큼 다가온 어느 금요일, 고려대 정경대 학생신문 <더 호안스> 편집실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2 “현재 고려대 자치언론협의회에 소속된 자치언론은 현재 5개.”

 

현재 부속기관으로 소속된 고려대 학내 언론은 고려대 학보사 <고려대신문>, 학내 방송사 <KUBS> 그리고 영자신문사 <The Granite Tower>가 있다. 이들을 제외한 언론사 8군데는 ‘교지대’ 3000원을 학생들로부터 직접 지원받는다. 8군데 언론사에는 현재 교지 <고대문화>, 여성주의 교지 <석순>, 그리고 자치언론협의회에 소속돼있는 정경대 학생신문 <더 호안스>, 손으로 그린 한 장짜리 신문인 <거의 격월간 몰라도 되는데>, 성소수자 언론단체 <퀴어가이드 편집위원회>, 영상을 다루는 <KUTV>, 생활 소식을 다루는 <쥐뿔> 그리고 최근 ‘후계자를 찾지 못했다’며 발행을 중단한 조형학부 미술비평지 <Plastic Book>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자치언론협의회 소속이었던 스포츠 전문지 <Sports KU> 역시 학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라고. 파악된 고려대학교 학내 언론만 해도 10개가 넘는 셈이다.

 

 개수가 많은 만큼 다양성도 보장된다. 2005년부터 시작된 고려대학교 자치언론협의회는 학내 학생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자치언론협의회에 들어오게 되면, 기존에 5등분하던 자치언론협의회 기금에서 다시 파이를 나눈다. 자치언론협의회에 배당되는 기금은 교지대의 15%. “교지대도 학생회비도 선택납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학기마다 부침은 존재한다. 아무래도 1학년들은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선택납부인지 모르고 전부 지불하게 되니까.(웃음)”

 

 

#3 자치언론협의회의 고민, 더 많은 학생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봐도 목에 힘을 잔뜩 줄 것만 같은 ‘대표’라는 직함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주 웃었다. 한편, 눈을 번쩍이며 ‘불편한 점은 없나’고 묻는 질문에 “글쎄요”라고 말하며 기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고려대학교 정경대 학생신문 <더 호안스> 소속인 그에게 신문사에 들어온 동기를 묻자 “중학교 때 신문부를 했던 기억이 좋게 남아있어서”라며 예의 웃음을 지어 보인다.

 

“<더 호안스>는 월간지라는 특수성이 있고, (고려대 학보사 <고려대신문>은 주간지로, 한 주에 한 번 발행된다)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어 좋다. 내가 기획한 기사를 내가 쓰고, 지면으로 낸다. 여기에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고, 가고 싶었던 데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취재하고, 참여한다.”

 

 

#4 “자치언론의 미래가 엄청 밝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치언론의 미래를 묻자 그는 “엄청 밝을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누구나 자신의 매체를 만들 수 있는 자치언론협의회에 새로 들어오는 언론은, 최근 몇 년간 없었다고. 홍보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그런 고민들을 발판 삼아, 자치언론협의회 소속으로 학교 축제 때 부스를 하나 설치해 홍보할 생각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더 좋은 질의 글을 써야,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웃었다.

 

“학교로부터 어떤 압력도 없다. 학교랑은 별개의 단체라 그렇다.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간섭할 필요도 없다”고 대답했지만 얼마 전 고려대 학내에서는 학생회비 8000원, 교지대 3000원 총 11000원으로 학생들이 선택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기금을 학생회비와 교지대를 서로 분리납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있었다. 결국 논란은 원점으로 돌아가 분리납부는 더 이상 추진되지 않았다.

 

“총학과 같이 나아가는 방향이 됐으면 좋겠다. 상호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교지대 분리납부 이야기가 한창 대두됐을 때, 총학 측에서 자치언론협의회와 교지를 죽이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고. “상생이라고 해야 할까? 그 방향이 제일 좋은 것 같다.”

 

“학생 사회에서 좋은 담론과 비판적 시각, 필요한 정보를 주로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인정하는,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기획․인터뷰 / 서혜미 기자 유지영 기자 weselson@gmail.com
글/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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