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동아리 탐구>

 

학교를 페미니즘으로 물들이고 싶다

- 성신여자대학교 페미니즘동아리 ‘NOON’ 인터뷰 -

 

 

- 16년도 10월에 이루어진 인터뷰입니다.

 

지난 1012일 퍼블리카는 성신여대 앞 카페에서 본교 페미니즘 동아리 ‘NOON’과 인터뷰를 가졌다. 보다 다양하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NOON의 회원들의 호칭은 각각 A, B, C, D로 대신했다. 퍼블리카는 이하 로 표기.

 

 

1. 동아리를 만들게 된 시기는 언제이며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한 'NOON'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뭔가요?

 

D : 동아리 시작은 저널 동아리였어요. 현재까지 남아있는 창설 멤버는 없지만, 2013년 겨울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준비 기간을 가졌다고 전해 들었어요. 창설 준비와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성신여대 학우들의 인식 조사도 했었고요. 여대인데도 여성주의 동아리가 없다는 게 계기였다고 해요. NOON정오(noon)'가 오전과 오후가 공존하는 시간이듯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경계, 사회와 여성의 경계가 지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는 이름입니다.

 

: 그럼 언제부터 동아리의 성격이 바뀐 건가요?

 

D : 저널 모임이라 글을 쓰려면 준비할 게 너무 많았고 무거운 느낌도 들어서 가볍고 쉽게 바꿔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2015년 하반기부턴 독서토론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 위주로 진행되고 있죠.

 

 

 

 

2. 모두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살면서 느껴왔던(특히 성신 교내에서) 성차별 사례들이 있었거나, 또는 그것을 성차별로 인식하고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B : 저는 '안전이별'에 실패했어요. 이런 게 개개인의 문제일 뿐인가 생각하던 즈음 메르스 갤러리사건이 터졌어요. 이때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제가 각성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D : 맞아, 그때 메갤이 플랫폼이 된 것 같아.

B : 그렇지. SNS가 하나의 계기가 됐지.

 

 

: A분은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 저희 집은 딸만 셋이예요. 저는 그 중 첫째고요. 집안에 가부장적인 문화가 깔려 있었어요. 제사문제 같이, 사소한 것부터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저 또한 몰카가 직접적인 (각성) 계기입니다. 가해자는 기숙사 룸메이트였어요.

 

: 그럼 가해자가 여성, 그것도 같은 학우였다는 건가요?

A : 본인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제 속옷만 입은 사진을 올려놨더라고요. 그래서 고소를 했어요. 결국 유죄판결이 났구요.

 

: 대체 그랬던 이유가 뭔가요?

A : 제가 청소를 하라고 말한 게 싫었대요. 그래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제 얼굴은 찍히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데 피의자가 나중에) 경찰에 말하기를 나는 성소수자고, 그 사진은 내가 사귀는 사람의 몸이라고 하더라고요. 웃기는 게 누가 봐도 본인 몸은 본인이 알잖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이러한 사건을 제가 직접 마주하다보니, 여성의 몸으로 협박하고 권력처럼 남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에 너무 만연해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어요.

 

: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그대로 보고 흡수했다고 볼 수 있네요. 그런데 B씨는 어떻게 페미니즘 공부를 했나요? SNS를 통해서?

B : 아니요. 저는 SNS 영향은 거의 안 받았어요.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페미통신 연재글과 영화나 책, 국문과 현대문학읽기 수업에서 국내 페미니즘 문학과 그 계보를 읽으며 페미니즘을 익혔어요.

 

: 자 그럼 C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C : 반대로 저희 집은 저 빼고 다 아들이에요. 저희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일찍 이혼하셔서, 현재는 아버지와 저와 남동생. 이렇게 셋이 살아요. 사촌 쪽도 다 남자밖에 없어요. 친할머니가 거의 유일한 여성이신데 가부장의 끝을 달리시죠. 어머니가 그래서 이혼을 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이혼 후부터 엄마가 없으니 네가 엄마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거의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던 것 같아요.

 

: 그때 몇 살이었어요?

C :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B : 초등학교 4학년한테?

: 라면도 못 끓이겠다.

 

C : 그때부터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집안일을 하는 건 별 상관없었어요. 아빠는 일을 나가니까 저라도 해야죠. 하지만 전 동생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면 아빠는 항상 남자니까 안 된다는 식으로 넘기고, ‘넌 그렇게 동생을 시키고 싶냐면서 제가 잘못되고,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몰기 일쑤였어요. 집안의 불합리함을 느끼며 자라서, 우리 집만 이런가 보다 했는데...

 

: (여성이라 가사 전담을 요구하는) 사회가 사실 이상한 거 아닌가 싶어요.

B : 비정상이 정상 같은 사회야.

 

C : 집안에서 당했던 차별과 중·고등학생 때 은근히 존재하는 성차별을 보면서 부당하다고 생각해왔어요. 지금은 (비교적)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해도 지지를 해주지만 예전에는 그런 게 지배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잖아요.

D: 그렇지. 최근에나 이렇게 바뀐 거지.

 

C: 예전에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성평등을 전제로 깔고는 있지만, 추가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제대로 공부를 해본 사람만이 페미니스트이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죠. 예전에 TV에서 연예인이 전 성평등주의자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이런 얘기도 했잖아요.

 

D: 맞아 뭐 젠더 이퀄리즘? 이러더라?

 

B: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말 안하죠. 젠더 이퀄리즘이라고 하죠.’ 근데 오바마가 나와서 들고 있는 플랜카드엔 아이 엠 페미니스트웃긴 거예요. 페미니즘도 성평등이 전제로 깔린건데...

 

C: 예전에는 정치적 진보관에 왜곡되지 않은 여성관도 깔려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은 일부분이고요. 저도 처음엔 온건한 페미니스트였어요.

 

: 그럼 작년부터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건가요?

C: ‘메르스 갤러리장동민 사건이 터지고 난 후를 말씀하시는 거죠? 초기에는 그 흐름에 편승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미러링같은 급진적인 운동에 대한 사회의 격한 반응을 보며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들은 헛짓거리였던 것 같은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물론 그런 급진적인 행동을 전에도 할 수는 있었어요.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회가 바뀔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거죠. 이런 사건들이 각성까지는 모르겠지만 인식의 전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복학하고 나서 학교에 페미니즘 분위기가 생겨서 좋았어요. 최근까지도 궁극적인 성차별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요즘에는 회의감이 드네요.

 

 

: D씨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D: 저희 집은 딸이 둘인데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딸이 최고다라는 분위기예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난이 심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엄마가 네가 먼저 주먹을 날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걔한테 주먹을 날렸죠. 전 정말 조용했던 애였는데, 주먹을 날리니까 교실이 뒤집어졌어요. 물론 제가 그 남자애보다 훨씬 많이 맞았죠. (웃음)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아무도 저에게 시비를 걸진 않았어요. 그때 이후로 제 성격도 활발해졌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한 직접적인 계기는 정말 최근이에요. ‘장동민 사건이 결정적이었어요.

 

B: 그때 엄청 많은 여성분들이 페미니즘에 눈을 뜨셨죠.

 

D: 저는 비상식적인 장동민의 발언에 대한 대중의 비상식적인 반응이 더 충격적이었어요. ‘그럴 수도 있지’, ‘식스맨 시키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농담으로 하는 얘기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냐뭐 이런 댓글들? 이때부터 사회 전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페북의 상남자만화라는 만화를 보면서 충격을 받아서, 문제가 있구나하고 인식했죠. (B. 그거랑 이주용!) 그런데 그런 게시글의 댓글들이 더 이해가 안가요. 너무 심각한 수준이에요.

 

B: 거기에 막 '웃기다', ‘공감된다이런 댓글들이 많이 달려있죠.

 

D: 20151학기에 국민대 학점교류를 가서 페미니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일상생활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들을 학문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현대사회와 여성이라는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인권에 대해 많은 고찰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혐오에 대해서 조별과제로 발표도 했었는데, 그 이후에 메르스 갤러리사건이 터지더라고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이 중 그나마 '무난한' 과정을 거치셨네요.

D: 그렇다고 저도 성차별을 당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때는 그게 잘못된 것인지를 몰랐었을 뿐이죠.

 

 

 

3. 에브리타임을 하는 학우들에게는 모 회원 분이 하시는 페미통신으로 익숙할 텐데, 이건 개인이 하는 건가요?

 

D : 제 닉네임이 그거예요. 개인 차원에서 하는 활동이고 동아리 차원에서 하는 건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학우들과 공유하고 싶은 콘텐츠를 외부에서 가져와서 게시해요. 사실 예전에는 에타에서도 몰카나 성폭력에 관련된 게시물을 올리면, ‘피해여성이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반응들이 꽤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많이 답답했죠.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시는 분들도 다른 차원에선 피해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페미통신활동 이후에 다른 학우 분들도 콘텐츠를 가져오기 시작하며 이러한 페미니즘에 대한 공론이 점점 더 활성화됐고요. 특히 학우 분들이 제가 게시하는 글을 잘 읽고 있다고 해주실 때마다 고마움을 느껴요. 페미니스트들의 글이 하나라도 더 퍼지는 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4. 올해 대동제에서 페미니즘 굿즈를 파는 활동을 하셨던데, 참여하게 된 경위와 소감은 뭐였나요?

 

D : ‘우리도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1학기 모임부터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죠. 게임이나 이벤트 등을 통해 페미니즘을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학우들이 눈 앞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음을 느낄 수 있길 바랐습니다. 굿즈도 여러 안이 있었는데, 원래는 투명 생리대 파우치를 제작하려고 했어요. 그때 당시에 노브라 논란과 같이 관련 이슈가 대두됐었거든요. 생리는 숨겨야 할 것으로 여기는 생리 터부도 이와 연관이 있죠. 이런 터부에 대항해서 투명한 생리대 파우치에 생리는 숨길 것이 아니다.’란 문구를 새길 생각이었어요. 근데 제작 단위가 크고 인쇄비도 비싸서 접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거울이었다. 문구를 ‘Just For Me',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등으로 새겼는데요, 학우분들이 이걸 보고 무슨 의미냐고 여쭤보시기도 했어요.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하는 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란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거죠. 무엇보다 학우들이랑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A : 우리 스스로 뭔가 제작하는 것에도 의의가 있었어요. 우리가 주장하는 것들을 굿즈로 만들어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는 일이니까요. 이 밖에도 데이트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보다 올바른 대처를 소망하며 관련 소책자들을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D : 이건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아서 하게 됐어요. 여자의 잘못이 아닌데 대처라고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현실이니까요. 이런 것을 보면 언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시로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초반에는 단어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점차 이에 대한 여성들의 대화가 많아지고 사회적으로 부각되며 (단어와 성희롱 실태가) 떠올랐죠. 최근 시선강간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도 매우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런데서 위협을 느끼는 게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이기 때문이잖아요. 불편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라 지정해서 부를 단어가 없었는데 새롭게 생겼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나눌 담론이 늘어나니까.

 

: 동아리가 밖으로 나가 굿즈를 팔며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참 의의가 있는 활동인 것 같네요.

 

D : 굿즈를 소비하고, 또 소유한다는 것은 굿즈에 대한 의미를 지지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5. 판매했던 굿즈에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라는 문구를 사용하셨는데. 사실 해당 문구는 옹달샘 여혐 논란때 발견된 개그맨 장동민의 과거 발언을 비꼬는 것이기도 하죠. 그 논란을 시작한 메갈을 포함해 한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어요.

 

 

D :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낸다는 게 고무적이에요. 우리가 인터넷 세대인 덕도 큰 것 같고. 바람이 불 때 돛 달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소라넷을 비롯해 여성혐오 이슈들이 터질 때마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모인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이 흩어져 있을 때는 (사회가) 목소리를 듣기 힘들잖아요. 미러링이 폭력적인 것은 그 원본이 폭력적이기 때문이죠. 거울을 깬다고 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A : 여성 연대가 생겼다는 것을 크게 쳐줘야 해요. 그 전엔 전무했으니까. 최근엔 경제력 있는 여성들도 합류해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어요. 방향성을 잘 찾지 못해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 줘야 할 것 같네요.

 

D : ‘메갈리안이라는 말이 무의미 해졌다고 할 정도잖아요. 많은 여성들이 한남과 시선강간이라는 말에 동감하고 있으니까.

 

 

6.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때는 언제인가요?

 

C. 페미니즘에 대해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동아리에 들어왔기 때문에, 확실히 함께 공부하는 편이 혼자서 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토론하면서 내가 내리지 못한 답을 다른 분이 내주시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되짚어주기도 하면서요.

 

D. 저는 개인적으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목소리를 많이 내는 편이예요. 100명이 침묵할 때 1명이 목소리를 내는 것 보다, 20명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주위사람들이 자문을 많이 구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보람을 느껴요.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주위 분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물어볼 때는 내가 옳게 가르쳐주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해 조심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뿌듯하기도 합니다.

 

A. 주위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곤 해요. 굳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는 얘기도 많이 듣지만,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어오니까 정체성이 더 공고해지는 것 같아 좋아요.

 

 

7. 동아리 NOON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D. 성평등의식 고취가 가장 먼저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엔, 페미니즘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미나를 하다 보니 많은 문의가 와요. ‘혹시 어렵지 않을까요?’라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사실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배우는 책들이 어렵지도 않구요. 쉽고 재밌게 페미니즘을 얘기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에 대한 희망찬 얘기가 많이 오갔으면 좋겠어요. 학교를 페미니즘으로 물들이고 싶어요.

 

C. 주위 사람들에게 본인들이 고통을 합리화 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어요.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알고, 또 거기에 대해 눈을 뜨면 페미니즘을 더 잘 알게 되니까요. 한정되게는 교내의 학우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네요.

 

A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주위 친구들이 좀 더 예민해 졌으면 좋겠어요. , 내 삶의 방식을 전반적으로 바꾸고 싶어요.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앞으로 결혼을 하더라도 나의 삶의 방식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나부터도 내면의 차별성을 깨부시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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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카 기자들이 뽑은
성신여대 참말
·막말 어워즈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한편, 말 한마디로 없던 천냥 빚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성신여대 안에서도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언사가 있어왔다. 수정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참말들부터 가슴을 쾅쾅 치게 만드는 막말까지. 그래서 퍼블리카 기자들이 뽑아보았다. 성신여대 참말·막말 어워즈!

 

<참말>

 

1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심화진 총장 퇴진하라.”

(2016118일 비상총회- 성신여대 학생들)

 

2016118일 비상총회 안건 통과 후 잔디밭에서 공동행동이 있었다. 총회에서 받은 심화진총장 OUT'이 프린팅 된 노란풍선을 다 같이 하늘에 날리는 시간이었다. 학우들은 잔디밭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모아 외쳤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심화진 총장 퇴진하라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2015119비상총회에서, 프라임 사업 반대시위에서, 2016년 비상총회에서 수 없이 외쳐도 듣지 않는 그들이지만 학우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누구나 상식이라고 여기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당연한 것을 지키기 위해 높이는 목소리가 주는 울림을 생각하며, 비상총회에서 학우들이 자발적으로 외친 구호를 1위에 선정했다.

 

 

 

2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 않으며,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2016118일 비상총회- 성신여대 A동문)

 

1위와 마찬가지로 118일 비상총회에서의 발언이다. 마이크를 잡은 A동문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 않으며,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비상총회에 참석한 학우들을 비롯해 미처 참석하지 못하여 총회 상황을 전해들은 학우들 사이에서도 이 발언이 인상 깊었다는 후기가 다수 있었다.

 

학교가 겪는 여러 진통을 보며 재학생만큼이나 힘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성신여대를 모교로 두고 있는 선배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의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동창회의 호소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우리도 언젠가는 졸업생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성신여대는 우리의 모교가 된다.

 

 

 

3

"그런 학교에 학생들을 어떻게 맡깁니까?"

(언론 인터뷰- B교수)

 

성신여대는 심화진 총장의 비리의혹에 대해 알리고자 앞장서던 학생들을 경찰에 수사의뢰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때 수사의뢰를 위한 변호사 자문료를 학생들이 낸 등록금인 교비로 충당했다. 이에 성신여대 B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학생들을 고발하는 데 사용했다는 거죠. 그런 학교에 어떻게 학생들을 맡깁니까?”

 

심화진 총장은 2010년 언론을 통해 학생들을 교육할 때 항상 그들을 소중히 키워주신 부모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그들의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합니다.”라고 인터뷰 한 바 있다.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피땀어린 등록금으로 변호사 자문료를 지출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부모의 마음을 고민한다면 비위행위를 지적한다고 하여 학생을 수사기관에 출입하게 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학생을 고발하는 데 등록금을 사용하는 학교에 어떻게 학생들을 맡기냐는 B교수의 인터뷰가 더욱 사무치는 이유다.

 

 

 

<막말>

 

1

어린여자티를 시위에서도 낸다는게 너무나 절망적이다.’

(에브리타임 커뮤니티-익명)

 

20163월 초, 학과 통폐합 및 인원 감축 가안이 학생들에게 알려지면서 프라임사업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다. 그 중 립스틱 등의 도구로 학교 유리벽에 통폐합 반대 문구를 쓰는 시위 방식이 학우들에 의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기획되기도 하였다. 이른바 립스틱 시위와 관련된 의견을 주고받던 이 시기의 어느 새벽에 나타난 익명댓글은 학우들을 분노케 했다. ‘어린 여자티를 시위에서도 낸다는 게 너무나 절망적이다.’ 라는 댓글이었다. 그는 또한 어린 티를 온몸으로 낸다’, ‘많이들 참석하고 입사 면접보실 때 뱉을 변명이나 생각해두시길...’ 등의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본교 학생들만이 인증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게시판이었지만 이날을 계기로 많은 학우들은 그 인증이 무력화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익명이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달았는지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성신여대 학우들은 서로를 어린 여자로 칭하지 않는다. 또한 학습권 보장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 표명을 변명뱉어야 할행위 따위로 격하시키지 않는다.

 

 

 

2

공부하지마, 학생 같은 사람은

(PD수첩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 C교직원)

 

2014년 방영된 PD수첩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 비리의혹이 전파를 탔다. 그리고 이 방송을 통해 성신여대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 유명한 학공마가 탄생했다. 총장 비리의혹에 대한 대자보를 붙이려는 학생을 향해 학생지원팀 C직원이 학생이면 학생 신분답게 해”, “공부하지마, 학생 같은 사람은이라며 소리친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본지 기자들은 이른바 학공마를 막말 2위로 뽑았다. 충격의 여파가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공부 하지 말라 소리치는 모순을, 학생이 준비한 대자보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학생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을 차마 잊을 수 없다. 학내분규에 대해 대자보를 쓰는 학생은 학생답지 못하고,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하는 학생인가. 그렇다면 학생다운 학생은 그 상황에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3

넌 누구니? 넌 내가 찾아낸다

(2015119일 비상총회- D교직원)

 

작년 11월 비상총회에서의 일이다. 총회에 참석한 학우들은 총학생회에서 측에서 나누어준 스티커를 학교 곳곳에 붙였다. 그러던 와중 신분을 밝히지 않은 여성이 학우들에게 다가와 "너 누구니? 너네 내 사무실에 무슨짓 해놓은거니?“라고 말했다. 학우들이 누구시냐 묻자 나 교직원이야라고 답했다. 반말하지 말아달라며 학우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에 그녀는 너는 또 누구니? 넌 내가 찾아낸다고 응수했다.

 

'학공마'에 이어 학생들을 대하는 교직원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사였다.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다짜고짜 를 시전하고, 본인에게 대항하는 학생에게는 누군지 찾아낸다며 위협했다. 교직원과 학생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또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경어를 사용하는 상대방 앞에서 그를 하대하는 것은 공적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존중받고 싶다며 감정에 호소하는 언론 플레이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의 언행을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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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거리의 기억

 

 

 

 

 

 

 

 

1112

처음에는 경악이었고 다음은 의심이었고 마지막은 분노였다. 하지만 답은 하나였다. ‘일단 나가야겠다.’ 솔직히 집회에 나간다 해서 무언가가 바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집회가 개인에게 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목소리를 내고 주장했다는 권리 행사의 실현이 아닐까 싶다.

추위가 걱정돼서 입고 온 옷이 무색할 만큼 1112일 그 날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오후 2시부터 여성대회에 참가했다. 한차례의 소란이 있었지만 평화로운 시위였다고 기억한다. 서로 노래를 부르고 앞에 나가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였다. 여성대회의 기조는 차별 없는 평등 집회였다. 다양한 몸, 다양한 생각, 다양한 지향을 아우르는 대회였기에 다양한 사람이 어울릴 수 있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강남역 10번 출구(페미니즘 페이스북 페이지)부터 성소수자 관련 협회까지 많은 단체들이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편안하게 참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이제까지의 시위에서 소외되었던 보편인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전국민에게 자괴감을 주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자신들에게 국민이 부여한 지위를 사적으로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다. 이들이 한 일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사회 공통의 문제가 대두되면 주변인들은 밀려나는 법이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두고 희화화하는 많은 단어들이 발생했다. 이는 곧 우리 사회 속 주변인들의 인권도 끌어내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미스 박’, ‘강남 아줌마등으로 발현된 희화의 방향은 결국 여성 혐오와 소수자 혐오로까지 넘어갔고, ‘이런 중대한 문제에서 인권같이 국소적인 문제를 이야기해야하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성대회 발언자 중 한 분의 말과 같이 보편인권이 국소적인 문제라면 누구의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을 수 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 문제는 전국민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은 여성 희화화로 이어졌으며 그것은 여성혐오로 2차 피해를 야기했다. 그 날의 시위가 우리에게 주었던 또 다른 의미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억압이 존재하는 시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주권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듯이 인권 실현 역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국민 주권과 인권 실현은 함께 가는 것이지 하나를 억압하여 다른 하나를 이룩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한다.

- 돌로레스 엄브릿지

 

 

 

 

 

1203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촛불집회가 지속되던 중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며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모인 민심을 비하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 반박이라도 하듯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회의 새로운 풍속을 만들며 더 크게 타올랐다. 광장에 LED 촛불이 등장하고 횃불이 나타났다. LED 촛불을 판매하는 가판대를 집회가 진행되는 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촛불대신 큰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시민들도 눈에 띠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23일 행진이 한창이던 독립문역 앞에서 노래가 울려 펴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반복되는 가사와 익숙한 리듬으로 행진 대열에 있던 남녀노소 모두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사가 전달하는 의미는 무거웠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흥겨웠다. 집회와 시위는 엄숙하다는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거리의 기억이 형성되는 시점이었다.

 

- 그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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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값도 죽이고 농민도 죽이고

-백남기 농민의 진정한 사망 원인-

 

 

왜 그는 민중총궐기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나

  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에 대한 주장은 분분하지만, 결국 민중총궐기에서 입은 부상이 일차적 사망원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백남기씨는, 그리고 농민들은 이러한 비극이 발생한 민중총궐기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을까?

 

  201511141차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2대 요구안을 내놨다. 농업 부문에서의 요구안은 밥쌀 수입 저지,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반대,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이었다. 이 세 요구안은 모두 수입 농산물로 심각한 가격 하락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 농산물과 쌀의 적정 가격 보장을 위한 것이다. 이전부터 농민들은 쌀의 적정 가격 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응해 대선 당시 쌀 1포대(80kg)의 가격을 17만원에서 2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공약과는 정반대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쌀값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85일 기준으로 전국 평지 산지 쌀값은 1포대에 137152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시점의 159972원보다 14.3%가 하락한 가격이다.

 

 

 

 

 

  이렇게 쌀값이 폭락한 이유 중 하나는 생산과다와 소비감소라는 구조적인 원인이다. 실제로 정부는 쌀 수급 문제의 주원인을 소비량에 비해 과다한 공급을 보이는 현 시장구조에서 찾고 있으며, 최근 4년동안의 풍작과 지속적인 쌀 소비감소가 현상황의 가장 큰 문제라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 쌀 소비량은 매해 감소세를 보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20141인당 쌀 소비량은 65.1kg으로 10년전인 20051인당 쌀 소비량 80.7kg에 비해 15.6kg이나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4년동안의 쌀 생산량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쌀 생산량은 2012년 약 400만톤에서 2015432만톤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현재의 쌀 수급 문제의 원인이 오직 생산과다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최근 4년만 보면 쌀 생산량은 증가 추세에 있으나 전체적인 추세를 보면 쌀 생산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위 그래프를 보면 국민 총생산의 분기점인 1988년도부터 2015년도까지 쌀 생산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소비의 감소 추세에 맞춰 생산량도 줄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쌀 생산 과잉 주장은 그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미곡의 소비-생산 구조에서 또다른 공급의 문제는 무엇일까?

  농가 측에서는 정부의 쌀 수입 시장 개방을 그 이유를 꼽고 있다. 우리나라 쌀 수입 시장 개방은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시작된다. 당시 모든 농산물에 관세를 붙여 시장을 개방한다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약 아래,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1995-2004년까지 10년간 전면 개방을 유예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해외 농산물을 최소시장접근 물량인 MAA를 관세를 붙여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95년 국내 쌀 소비량의 1%5만톤에서 2004년에는 국내 쌀 소비량의 4%205천톤을 의무적으로 수입했다.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도하 라운드 재협상에서 정부는 쌀 개방을 막지 못하고 관세화를 통한 전면 수입을 수용하게 된다. 이로인해 쌀 시장 개방 재유예 기간인 2005-2014년이 끝나는 2015년부터 513% 과세로 국내 소비량의 8%41만톤을 수입하고 있다. 쌀 수입 문제는 공급의 과잉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장 질서 혼란이라는 악영향도 미치고 있다. 지난 2014년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수입쌀의 불법유통 적발현황은 총 1,131, 1788톤으로 이 중 84%953건이 원산지 허위표시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농가는 정부가 공급량 과잉을 해소시키기 보다 오히려 수입을 통해 심화시키고 있으며 수입쌀의 원산지 허위표시로 인해 국내산 쌀의 시장 경쟁력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대한 농가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미 20년 동안이나 유예시켜온 농산물 시장 개방을 더 이상 미루게 된다면, 유예 연장 종료 이후 농산물 의무 수입량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쌀 관세율을 농업협정 범위 내 최대 수준인 513%로 책정하였으며 이후 수입량이 일정 수준 증가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관세율을 높여 국내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긴급관세(SSG)를 적용하여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수입쌀의 부정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수입쌀, 국산쌀 혼합판매를 금지 및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의 문제가 이렇게 상반된 가운데 그렇다면 관리의 문제 과연 어떨까? 관리의 문제또한 농가와 정부의 입장이 다르다. 농가는 안일한 정책과 생산관리 실패로 인해 쌀 값의 저하를 가져왔다며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113월 농림수산식품부는 쌀 산업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통해 매년 70만톤의 과잉 물량을 예상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4만 헥타르에 타작목 재배를 추진하고, 정부쌀 할인공급과 가공용 쌀 재배단지 조성, 핵심가공기술 개발을 통해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를 꾀했다. 또한, RPC(미곡종합처리장)의 통합 규모화와 쌀 자조금제(미곡 재배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기금 조성, 소비확대를 위한 조사와 연구, 홍보 활동 등을 벌이는 것) 도입과 관세화 논의를 마무리하고 조기에 추진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쌀 산업발전 5개년 종합계획은 위에서 말한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전면개입을 제외하고 모두 실패 또는 무산으로 돌아갔다. 또한 풍작에 대한 예측은 했지만 관리가 제대로 돼지 않았다. 농촌 전문 연구소 GS&J인스티튜트의 159호 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계절진폭(전년 수확기 평균 쌀가격 대비 올해 수확기 쌀가격 변동폭)의 변동성에 대한 정확한 규정없이 담당자의 임의적인 판단과 당시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시장 격리와 방출이 결정하여 불안정성을 가중시켰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와 같은 임의성은 정부의 쌀 비축량 목표 17%를 실제로는 11%에서 35%까지 크게 변동시켰으며 비축미에 5년차 이상의 다량의 묵은 쌀을 포함하게 만들었다. 이는 비축량 관리와 품질 유지 실패뿐만이 아니라 현재 쌀 수급문제에 역계절진폭(비수확기의 쌀값이 전년 수확기보다 떨어지는 현상)까지 불러오고 있는 상태다.

 

  물론 이에 관해 정부쪽에서도 나름의 입장이 존재한다. 정부는 쌀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해 타품목 재배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로 2014년도에는 전년 대비 벼 재배 면적이 2.1% 감소했으며, 역계절진폭에 따른 쌀값의 저하를 막기 위해 RPC(미곡종합처리장)에 벼 매입 지원자금을 약 14천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더해서 올해 새누리당과 정부는 10월 초에 쌀 초과물량 시장격리를 2016년살 쌀을 연내 일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쌀 매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 쌀 공급자체의 감소는 주식으로서의 위치한 쌀이 대흉년을 맞았을 시 대책이 미비하다. 계속적인 정부 주도 쌀 매입도 결국엔 재고량 증가와 재정 부담을 낳고 있기 때문에 미봉책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현재의 매입한 쌀에 대한 처리는 선입선출법으로 처리되지만, 소비자들의 묵은 쌀에 대한 외면으로 인해 쌀의 고미화(시간의 경과로 인한 쌀의 산화, 주로 묵은쌀을 지칭)를 진행시켜 종래엔 악성 재고를 만들어내고 있다. 해결책으론 대북지원과 저소득층 쌀 지원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행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 쌀 매수는 정부의 명목금액과 시장 실질금액의 동일화에 의해 농가 경제 이득이라는 장점이 점점 퇴색되고 있으며 정부의 재정 부담까지 안겨주고 있다.

 

  정부의 쌀 공급·생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농가의 시름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가하면 그것도 미지수다. 농가의 실질소득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농협조사 월보에 의하면 농가의 소득 수준은 1990년대 도시 근로자 가구 소득은 97.2%로 거의 비슷했지만, 200080.5%로 떨어지더니, 60%대까지 떨어졌다. 현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일각에선 쌀 유통의 복잡함을 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쌀 유통과정은 농민-농협-민간 미곡종합처리장-도매업체-유통업체(소매업체)-소비자의 형태로 매우 복잡한 유통 단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런 복잡한 구조의 각 단계에서 운송비와 마진이 붙으므로 소비자 가격은 초기 가격의 몇 배로 불어날 수 밖에 없으며,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의 피해를 낳고 있다는게 이 주장의 골자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주장에 허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그래프는 현재 연 평균이 최종집계된 2010년도부터 2015년도의 수확기의 원산지 평균 가격과 소매 평균가격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복잡한 유통과정에도 불구하고 원산지 가격과 소매가격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농가의 실질 소득의 저하와 소비자가의 상승을 초래하는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일부분에선 높은 생산비를 들고 있다. 밑의 자료를 보면 연간 생산원가는 최소 50%에서 최대 70%까지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판매원가에 비해 높은 생산원가가 농가 실질소득의 저하와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의 장애인 것이다.

 

 

 

  농가는 농민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와 토지용역비의 가파른 증가 그리고 농업기계화에 대해 정부가 방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 정부는 농업생산기반정비사업, 농업의 현대화·기계화, 용수 공급을 통한 농가소득 증대 등, 여러 정책을 내놓았으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책임을 회피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쌀 문제는 농민의 생존권 문제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쌀 문제는 복잡한 원인관계 속에 놓여있다. 이렇게 꼬인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해결방안은 정부의 적극적인 쌀 시장 관리와 심층적인 분석을 통한 실질적 대책 마련이다. 아무리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다지만 아직까지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쌀 수급 문제는 식량 주권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렇게 중요한 쌀 수급문제에서 정부는 그동안 무사안일한 방관을 유지했다. 20년 동안의 유예기간 동안 국산 쌀 경쟁력 향상을 거의 방치해두었으며 그로 인한 시장 개방의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이 안게 되었다. 그에 더해 생산 관리의 허술함으로 인해 쌀 가격의 불안정성을 초래했고 재고 관리도 실정에 맞지 않아 고미화로 인한 악성 재고를 양상했다. 뿐만 아니라 농가의 실질 소득이 급락하는 가운데 실질 정책을 내놓지 못해 쌀 생산비의 고액화까지 불러일으켰다. 정부의 방관이 초래한 복잡한 쌀 문제 속에서, 식량주권을 위한 최소한의 생산성을 위해 더 이상 쌀 수급 문제를 생산자인 농민에게만 넘길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민 인구는 300만 명 선마저 무너져, 전체 인구 중 6%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6%도 안 되는 수가 우리나라 국민을 먹여살 리고 있는 것이다. 백 씨를 포함해, 정작 그렇게 우리를 먹여 살리던 이들이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할 위협에 처해 거리로 나섰다.

 

  백남기 농민은 단순한 시위 참가자가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농촌 문제의 한 단면이다.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그를 민중총궐기에 참가하게 한 원인인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농업문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국가 폭력 사태로 답할 것이 아니라 한국 농업 시장 문제의 전반적인 재고로 답해야 할 것이다.

 

 

-돌로레스 엄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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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일의 광화문을 추적하다


20151114, 백남기 농민은 쌀값 폭락을 저지하기 위한 ‘1차 민중총궐기시위에서 차벽을 뚫기 위해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이후 뇌출혈로 구급차에 실려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317일 동안 투병생활을 하던 중, 지난 925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사망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후 경찰 측에서 백 씨의 시신 부검 영장을 발부했다. 지금까지도 백남기 농민의 사인, 경찰의 시위 진압에 대한 위법성, 부검의 필요성 등에 대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많은 논란 속에서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 논란이 된 빨간 우의장면



빨간 우의인가, ‘물대포인가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은 시위 당시 경찰이 살포한 물대포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를 비롯한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그가 쓰러진 당시의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빨간 우의를 입은 한 남성이 그를 가격했다는 주장을 유포했다. 또한 김도읍·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201511월 김수남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빨간 우의설을 제기하며 수사를 촉구했고, 같은 해 11월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다시금 주목 받았다. 이와 관련해 본교 정치외교학과 학생이 뉴데일리에 기고한 글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민중총궐기 이틀 뒤 백씨의 주치의인 백선하 서울대 신경외과장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백 과장은 함몰 부위를 보면 단순 외상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외상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에서 논란이 된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빨간 우의 가격설과는 정반대의 분석이 나왔다. 해당 남성은 백 씨를 향해 발사된 물대포를 막기 위해 물대포를 등지고 서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물대포의 강한 수압을 못 이겨 앞으로 넘어졌을 뿐 가격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빨간 우의를 입었던 남성 본인이 나타나 백씨를 덮치지 않기 위해 팔을 뻗어 땅을 짚었다고 진술해 백 씨의 사인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검경은 사망 경위를 명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부검 영장을 두 차례 신청, 발부에 성공한다.



폭력 시위인가, ‘과잉 진압인가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은 1차 민중총궐기 당시 시위의 폭력성 그리고 백 씨가 차벽을 뚫기 위해 경찰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행위와 경찰 측이 보인 대응, 이 두 가지 행위의 적법성이다.

 

1차 민중총궐기 당시 집회 참가자들은 신고한 경로대로 서울광장에 집결한 후 광화문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은 교통 혼잡을 우려하여 집회 신고를 반려하고 종로사거리 일대에 대규모 차벽을 세웠으나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그러자 경찰은 살수차를 도입,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향해 캡사이신과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발사했다. 경찰의 차벽으로 길이 막힌 것에 분노한 시위 참가자들은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경찰 버스에 밧줄을 맨 뒤 이를 끌어당겼다. 경찰은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버스 위에서 살수하는가 하면, 시위대가 버스에 오르지 못하도록 버스에 콩기름을 부었다이 과정에서 일부 흥분한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큰 마찰이 빚어졌다.


밧줄을 끌어당기던 중 물대포를 맞는 백남기 농민


경찰 측에서는 백남기 농민이 차벽을 뚫기 위해 버스에 밧줄을 매달고 끌어당겼기 때문에 물대포를 직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당시 시위 전체적으로 쇠파이프와 횃불을 사용했고, 경찰에 폭력을 행사했으므로 강경 진압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그들의 근거다. 하지만 민중총궐기 대회는 해가 지기 전, 서울광장 등지에서 집결하고 광화문으로 향할 때는 행진과 발언을 중심으로 진행된 평화 시위였다. 일부 집회 참가자의 격앙된 행동은 경찰과 충돌한 후 발생하기 시작했다.


오후 430분 경, 시위자들이 차벽을 흔들고 기어오르기 시작하자 경찰은 살수차를 이용한 강경 진압을 시작했다. 이를 겪었던 시위대들은 경찰의 대응이 분명한 과잉 진압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물대포에 섞인 최루액과 캡사이신의 농도가 여타 시위에 비해 상당히 짙었고, 살수차의 수압 또한 규정된 정도보다 점점 더 세졌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경찰 내부 지침을 따져봐도, 백 씨가 맞은 물대포는 지침보다 800rpm 더 세게 직사됐고, 허리 아래로 쏘아야 한다는 규정 역시 어긴 것으로 나타난다.



다친 자는 있지만 책임을 무는 자는 없다

해당 시위가 불법 시위인지 혹은 평화 시위인지 말이 엇갈리고 있으나, 결국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민간인의 사상이 발생했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 이와 같은 지적에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시위 현장에서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경찰이 무조건 사과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물대포는 전술한대로 내부 지침조차 준수하지 못했으나, 경찰 관계자들은 당시 살수차는 적법하게 운용됐다는 진술을 내놓았다. 죽은 자는 있으나 피의자와 책임자는 없는 셈이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시위 중 농민 2명이 사망하자 결국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나서 대국민 사과를 했던 것에 비춰보면 너무나 무책임한 대응인 것이다.

 

시위에 참가해 진압에 앞장섰던 의경이나 경찰 본인을 지적하는 여론이 있으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따지되 모든 것을 그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시민을 뽑아 시민과 대결하게 하고,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장비를 운용하고 있으면서 그 교육과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본인들의 유책을 부인하는 구조가,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민간인의 죽음에 관련 있는 자들이 책임을 질 기회를 주지 않고, 그 누구도 책임 지지 않고 있는 권력의 무책임함이 문제다. 사람이 죽었다. 시위를 나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람이 죽었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국민의 보호를 꾀한다. 그 폭력이 죄가 없는 민간인에게 향했고, 그리고 실제로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폭력의 논리를 가져와 회피하고 있는 때다. 그래서 사망의 책임 소재를 더더욱 분명하게 해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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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법원에서 도촬을 했을까


지난 928일 서울북부지방법원(형사7단독, 사건번호 2016고단296, 2016고단2272 병합)에서 업무상횡령등의 혐의로 기소된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는 피고인측 증인신청이 있었다. 이에 오는 119일 열릴 공판에서는 본교 문기탁(), 신철호(경영), 조정민(간호)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928일 재판 과정에서 언급된 제출 서류로는 본교 총동창회와 총학생회가 제출한 탄원서(2016.09.21.) 기타 성OOOOOOOOOO 탄원서(진정서등) 제출, 2016.09.27 기타 이OOOOOO 탄원서(진정서등))가 있었다.

 


쫓고 쫓기는 법원 런닝맨, 누가 왜 성신여대 구성원들을 촬영했나?

재판이 끝난 이후 법정동 4층 복도에 소란이 일었다. 이소현 총학생회장이 누군가(편의를 위해 이하 ‘A라고 지칭) 핸드폰으로 재판정 출입구 인근을 촬영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이소현 학생회장이 A에게 사진첩 확인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졌다. 재판이 끝난 직후 A씨가 핸드폰을 재판정 방향으로 들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재판을 방청한 본교 학우 및 구성원을 찍은 것으로 짐작되는 상황이었다. A씨는 사진첩 확인을 요구받자 처음에는 아니다. 핸드폰으로 다른 것을 하고 있었다.”라고 답하며 사진첩 확인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차례 부탁 끝에 결국 응했다. A씨가 보여준 사진첩에는 재판정 복도의 모습이 담긴 41초의 영상이 발견됐다.

 

이소현 총학생회장이 A씨에게 그 영상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을 때, 총동창회 부회장도 또 다른 누군가(이하 ‘B’)가 성신여대 구성원을 향해 사진을 찍는 듯한 행위를 포착했다. 이에 사진첩 확인을 요청하자 B씨는 법원 비상구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총동창회 부회장과 이소현 총학생회장이 B씨를 좇으며 사진첩 확인을 재차 요구했지만, 그는 안 찍었는데 왜 이러세요.”,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라며 거부했다. 되려 본인의 동행인(이하 C)에게 총동창회 관계자와 이소현 학생회장이 사진 확인을 요청하는 상황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C씨는 당시 상황을 핸드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사진첩 확인 요청에는 응하지 않고 한바탕 달리기와 소란만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다만, ‘도촬의혹으로 언쟁을 벌인 이들이 재판 이후에도 교내에서 종종 목격돼 총장과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사진1>



 <사진2>


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B씨에게 사진첩 확인을 요청하는

총동창회부회장<사진1>과 그 상황을 촬영하고 있는 B씨의 동행인 C<사진2>

(기사 업로드와 함께 페이스북 ‘Sungshin Publika’ 페이지에서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 확인 가능)



증인으로 채택된 성신여대 교수들은 누구?

다음 공판의 증인인 법학과 문기탁 교수는 2014PD수첩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방영 당시 본교 학생처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그 방송을 통해 문 교수가 심화진 총장 비리 의혹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재학생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학내에 파장이 일자 학생처장 명의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현재는 시설관리처장직에 있다. 또 다른 증인인 경영학과 신철호 교수는 현재 본교 부총장이며, 간호학과 조정민 교수는 교무처장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119일에 있을 다음 재판에서는 심 총장측이 신청한 증인들에 대해 개인당 약 30분의 증인 신문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업무상횡령등의 재판은 지난 8월에 선고된 박세훈을 이사로 선임한 2015.4.24.자 성신학원 이사회 결의는 무효라는 판결과 더불어 성신여대 학내 분쟁의 핵심이 되는 사안이다.[관련 기사-박세훈을 이사로 선임한 이사회 결의 무효 선고.] 따라서 심화진 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된 증인들이 공판에 출석해 어떤 내용의 증언을 할 것인지, 또 그 증언이 성신여대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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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기고 - 성신여대 사회과학학회 잇츠 >

 

이화 미래라이프 대학 투쟁 승리와
성신 학내 투쟁 승리
,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구의역 사고와 미래라이프대학 투쟁,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을 논하다>
토론회를 제안하며

 

 지난 728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철회를 요구하며 본관을 점거했고, 730일 학교본부의 요청으로 경찰 1600명이 투입되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투쟁은 계속되었으며 성신여대를 포함하는 전국 대학들이 지지 입장 및 성명을 표명했다. 이에 83일 이화여대는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철회했고 교육부는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이화여대를 넘어서서 여러 대학들이 마주하는 대학 구조개혁 평가, 프라임 사업, 코어사업,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 등의 교육정책 전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 대학 투쟁이 어떤 의미를 가졌기에 이 투쟁이 이대를 넘어서 확대되고 있을까?

 

우선 교육부는 성인에게 평생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으로 선정되는 경우 35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인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여기에 지원했고, 여대라는 특성을 살려서 경력단절 여성들의 재진입 요구를 반영하겠다며 미래라이프대학을 추진했다. 미래라이프대학은 건강, 영양, 패션을 다루는 웰니스 산업 전공과 미디어 콘텐츠 기획, 제작을 다루는 뉴미디어산업 전공으로 구성되어 2017학년도부터 정원 150여명(30%는 정원내로 선발, 70% 정원 외로 선발)로 선발하는 단과대학이다. 이 정책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그 대상 중에서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졸업자, 일반고 졸업자, 기타 학력자 중에서 취업한지 3년 이상의 사람을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선발한다는 점이다. 이는 이 정책이 청년실업을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설정한 선취업 후진학,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일학습병행제라는 기조에 따라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은 여성을 대상으로 유망한 사업 으로서 뷰티와 헬스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성신여대의 프라임 사업과 공통점을 갖는다. 차이점은 프라임 사업은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과 기업들의 구직난이라는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한, 즉 대졸자를 위한 정책이라면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은 고졸자-정확히는 고졸 취업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은 결국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도 성신여대의 프라임 사업도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경제, 노동 정책들을 보완하기 위한 맥락에서 동일함을 보여준다. 대학의 고등교육 과정에서 프라임 사업을 통해 인원 감축과 유망 산업 관련 전공 강화 및 신설을 진행해 산업의 수요와 취업자들의 공급을 맞추고 있다. 동시에 대학의 과중한 인원을 감축하는 다른 방안으로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선 취업 후 진학, ·학습병행제를 통해 고졸 취업자를 늘리는 정책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의 근본 문제는 계속되는 경기 불황에서 어떻게든 취업을 늘이기 위한 방식으로 대학에서는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유망직종의 기능직 양산, 고등학교에서는 값싸고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잘못된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정부의 경제 정책과 그에 기반을 둔 교육정책에 있다.

이러한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7월 우리 모두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던 구의역 사고다. 19세 청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고, 식사할 시간이 부족하여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닐 만큼 장시간의 노동을 했다. 기업은 이런 특성화고 졸업청년들을 값싼 파견직처럼 취급했고 3개월만 일하면 정규직이라는 희망, 1년만 다니면 4년제 대학 특례입학이 가능하다는 희망은 이들이 이런 부당한 조건을 감내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정부와 교육부가 이들을 위한 내놓은 정책이 다시금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인 것이다. 정부는 삶을 꾸릴 수 있는 직장을 달라는 대학생들의 요구에 눈을 낮추고 당장 취업 가능한 학과로 뛰어들라며 프라임 사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감추고 취업만을 보장한 채 저질일자리로 내몰았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경제-노동 정책을 계속 고수한다면 이에 기반한 취업 정책과 교육 정책 또한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정부와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와 취업난 해결이라는 명분으로 계속해서 정책들을 밀고 나갈 것이다. 대학 본부는 반값등록금과 학령인원 감소로 인해 줄어든 재정 속에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정부의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받아 실행할 것이다. 그 과정은 중앙대의 학과구조조정처럼 합의에 기반을 둘 수도 있고, 우리 학교와 이화여대처럼 일방적인 밀어부침일 수도 있다. 이화여대가 코어사업과 프라임 사업, 미래라이프 사업 등 계속해서 교육부의 정책들을 받아들인 것처럼 개별 정책을 넘어서 이런 흐름 자체는 계속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4월 엄청난 동력으로 프라임 사업 반대 움직임을 만들어왔지만 프라임 사업에 대한 찬/반 쟁점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학생 내부의 분열은 결국 프라임 사업이 교육부의 소관으로 넘어간 이후로 이 문제에 대한 소강상태를 만들었다. 당장 실행시기가 17년이기에 현실적인 대응 지점이 안 보였던 것이나 학교본부의 자치탄압 문제가 급박하게 터졌던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본부의 자치탄압과 총학탄압으로 바쁘고 치열하게 싸워왔던 성신에서 학관 어린이집 문제의 해결로 승리의 경험과 활동의 동력이 생긴 지금, 우리는 다시금 지금 상황을 정리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지점을 다시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개별 사업이 아니라 이 흐름 자체를 막아내고 교육부와 정부에게 진정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교육정책과 산업정책을 고민하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학교본부의 자치 탄압에 대한 방어를 넘어서 선제적으로 성신여대의 미래를 위한 문제제기를 하자. 우리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대학들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제기하면서 전체 교육의 문제와 한국의 산업-경제-노동 문제까지 연결돼있음을,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우리 미래와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대학생들의 문제이고 대학생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지난 3월 말, 성신여대 사회과학학회 잇츠에서는 프라임 사업을 분석해보는 오픈세미나를 통해 프라임 사업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함으로서 진정으로 우리가 비판하고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는 이 문제가 학내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 경제-노동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잘못된 해결책이기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쟁점을 제기하고 논의를 확산하기도 전에 프라임 사업은 결국 교육부의 소관으로 넘어갔고 이후 4월 말, 성신여대는 프라임 사업 통과라는 결과를 맞았다. 총학생회와 공대위는 이후 타 대학과 연대하여 교육부를 대상으로 반대 활동을 벌여냈지만 학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이미 여론도 잠잠해진 상황으로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번 9, 학회 잇츠에서는 다시 한 번 프라임 사업과 성신여대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보려고 한다. 학내 민주주의라는 이상대 취업이라는 현실이라는 끝나지 않을 의견대립이 아니라 진짜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교육-경제-노동 정책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 대학생들이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98일 진행될 <구의역 사고와 미래라이프대학 투쟁,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을 논하다> 토론회에서 함께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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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관 어린이집 건설
반대 농성
, 61일 간의 기록

 

두 달 간의 공방 끝에 농성으로까지 치달았던 학생회관 직장 어린이집 설치 사태가 학교 측의 건설 계획 전면 백지화 약속으로 종결됐다. 성신퍼블리카는 611일부터 810일까지, 61일 간 진행된 농성 진행 경과와 그 전후사정을 타임라인 형식으로 정리했다.

 

44: 포탈 공지 직후 학우들의 거센 반발

 44일 성신포탈에 교내 직장 어린이집 의무설치로 인해 학생회관 1층 사물함실에 어린이집 설치 예정인 관계로, 수정캠퍼스 사물함실 장소가 변경되어 사물함이 일괄 이동될 예정이라는 공지가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총장 비리 의혹과 재판 회부는 물론, 2016년 들어 강의 개설 부실 논란과 프라임 사업 지원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이미 학교 본부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던 학우들은 곧바로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학생회관은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며, 현재 갖춰진 시설도 일반 학우가 편하게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떠한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설치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된 골자였다. 학생회도 즉각 대처에 나섰으며, 직장 어린이집설치 비용이 재단 전입금이 아니라 교비에서 충당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학교-학생회, 두 달 간의 공방

429: 학생 대표자 상대 어린이집 설명회 개최

54,10: 관련 사안 중운위 의결(대학우간담회 요청 및 학생회관 운용 문제)

513: 학교 측 공지 학생회관이 어린이집 건설 최적의 장소, 해당 사물함실 사용률 48% 불과, 공사 중 학생 의견 수렴해 불편 없도록 하겠다.

520: 학생회, 난향관 201-202호 공사 항의 방문. 학교 측, “620일까지 공사 진행되지 않으면 강제이행금 1억을 문다

62: 학교 측, 학생회 주최 대책 협의회 참석과 대학우 간담회 주최 거부

66: 학교 측 재공지 공청회보다 대자보가 적절한 전달 방식, 학생 복지 악화되지 않는다, 일부 학생이 진행 경과 호도하고 있다

 

67: 학생회관 어린이집 대학우 대책협의회

협의회에 참석한 학우들은 총학생회장에게 여러 가지 대책안을 제시했다. 이미 진행하고 있던 사안은 계속하되 종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보였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한 학우는 농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협의회 종료 후 열린 중운위에서는 대책협의회에서 제안된 사항을 중운위 명의로 진행키로 결의했다. 이어 68일에는 학생회관 어린이집 건설 반대 기자회견이 열렸고, 9일에는 릴레이 1인 피켓 시위가 시작됐다.

 

611: 농성 시작과 한시적 퇴실

620일까지는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학교 본부 측의 언급에 따라, 총학생회는 611일 토요일에 사물함 이동이 시작될 것이라 예상했다. 총학생회가 학생회관 근처에서 밤을 샌 후 1층 사물함실에 들어서자, 공사 인부와 캡스는 물론 건설팀장과 보안팀장이 현장을 방문했다.

10시 반 경 학생지원팀도 농성 현장을 방문했고, 학생회는 내일 오전 9시까지는 공사가 없을 것이며 (학생회가 요구한) 대화 테이블 관련하여 관련자들에게 연락을 취해보겠다는 학생지원팀의 말에 일단 사물함실에서 물러나고, 부근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612: 농성 재돌입

아침 650분 경, 밤샘 대기 후 학생회관으로 온 학생들은 사물함실이 자물쇠로 잠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항의하자 학교 측은 공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지 잠그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생회는 자물쇠를 해체하고 농성을 재개했다.

 

616: 농성 장기화 국면

16일 총학생회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생회관 직장 어린이집 건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농성을 지속해야 할지를 묻는 설문을 시작했다. 응답자 중 99.5%가 어린이집 건설에 반대했으며, 농성을 지속해 달라 답변했다. 반면 학교 본부는 농성을 푼 후 대화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해 농성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다.

 

75: 학생지원팀의 방문 및 학생활동지도위원회의 경고문 부착

오후 4시 경 농성 현장에 학생지원팀이 방문, 학생활동지도위원회의 경고문을 부착했다. ‘학내 질서를 심각하게 어지럽히는 중대한 학칙 위반 행위이자 범죄 행위에도 해당 가능하므로, 다음날 12시까지 퇴거하지 않으면 학칙에 의거하여 엄중한 처벌을 고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711: 상지대학교의 방문 및 농성에 가담한 일부 학우 학생활동지도위원회 출석

상지대학교 총학생회가 농성현장을 방문해 연대의 의미로 플랜카드를 증정했다. 한국일보에서는 직장 어린이집 설치로 인한 고충과 갈등을 소개하며 성신여대의 농성 사례를 실었다. 출석 요구를 받은 총학생회장단과 사회대 학생회, 일반 학우 4명은 이날 학생활동지도위원회에 출두했다.

 

712: 학교, JTBC 촬영 거부

농성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학생회관에 왔던 JTBC 취재팀이 학생회관 진입과 촬영을 거부당했다.(학칙에 따르면 학생회관에 외부인이 들어와야 할 경우 먼저 학생지원팀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713: 학생회관 어린이집 건설 반대 공동행동

학생회는 수정캠퍼스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자보 백일장 및 발표를 거치고 성신관 1층에서 시위를 가졌다. 참여 학생들이 행정실 밖에서 대기하던 중 총학생회장단은 학생지원팀에 항의 방문을 가졌고, 시위 종료 후에는 정문 게시판에 자보를 부착했다.

학생지원팀의 학생회 공문은 받지 않겠다. 총학생회 공문을 받은 적 없다. 어떤 학교가 공문을 받나”, “어린이회관등의 발언이 총학생회 페이스북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학생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726: 징계 확정

21일 염수빈 부총학생회장의 사퇴 후, 26일에는 이소현 총학생회장과 배성인 사회대 정학생회장의 징계가 확정됐다. 지난해 총학생회 학생중심이 받았던 것(학기 중 30, 45일 정학)에 비해 가벼운 징계(방학 중 7일 정학)였다.

에브리타임 성신여대 게시판에서는 농성에는 찬성했지만 실제로는 참여하지 않았던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에 대한 불만이 재차 두드러졌으며, 학교 측 공고문에 삽입된 인용구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730: 이화여대 본관 경찰 투입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치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이 28부터 본관 농성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과의 대화 시한으로 삼았던 30일 정오, 천여 명의 경찰 병력이 학내에 투입돼 본관에 머무르던 교수들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학생들과 물리적인 충돌을 가졌다. 성신여대 학생들도 해당 사태에 많은 관심을 보냈으며, 총학생회는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83: 학교 측, 일부 중운위원에게 간담회 참석 요구

총학생회·인문대·사회대·자연대 학생회와 융합대·동아리연합회 비대위를 제외한 중운위원에게 학교 본부가 간담회에 참석하길 요청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인문대를 비롯한 3개 단과대학 학생회는 이를 규탄하는 입장서를 게시했으며, 당일 저녁 바로 긴급 중운위를 개최해 해당 사안을 논하는 자리를 가졌다. 다음날인 4, 중운위 일원 모두 분열을 조장하지 말라는 입장서를 발표했다.

 

85: 학교-학생대표자간 간담회

모든 중운위원(이소현 총학생회장과 배성인 사회대 정학생회장은 징계가 확정돼, 학생 대표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참여하지 못했다.)이 참가한 간담회가 열렸다. 학생 대표자들은 중운위에서 논의를 거친 후 대화를 지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810: 농성 종료

89일 중운위가 진행되고 10일에는 학교-학생 대표자 간 2차 간담회가 진행됐다. ‘학생대표는 농성이라는 학칙 위반 행위를 통해 학교 행정에 피해를 준 점에 공감하고, 대학은 충분한 학생 의견 수렴 과정이 부족했던 점에 대해 공감한다는 공지가 게시됐다. 사물함 이전 공사 업체와 해약했으며, 학생회관 어린이집 건설을 취소하고 설치 부지를 다시 모색하겠다는 학교 본부 측의 선언으로 농성이 종료됐다.

 

 

- 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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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 사업 이후
수시 모집요강 살펴보니

인문계열죽이고, ‘프라임 학과챙겨줘

 

지난 513일 본교의 프라임 사업 계획안이 통과된 이후, 2017학년도 수시모집 요강이 발표됐다. 공개된 수시모집을 살펴보면, 전년도에 비해 수시 정원은 늘었지만 전체적인 인문계열 학과들의 정원은 대폭 감소했다. 반면에 프라임 사업의 핵심 사항인 헬스&웰니스대학’, ‘뷰티생활산업국제대학의 정원은 전체적으로 증가한 추세를 보였다. 이와 같이, 본교의 수시모집요강만 보더라도 프라임 사업의 지향점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인문계열 전체적으로 인원수 감소해

 16학년도 수시 정원은 1,235명으로 전체의 59.5%였던 반면, 이번 17년도 수시 정원은 1,358명으로 전체의 65.3%를 차지한다. 인원은 총 123명이 늘고, 반영 비율도 높아진 셈이다. 이 수치만 본다면 전체적으로 인원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년도에 비해 인원수가 현저히 줄어든 과가 눈에 띈다.

 

 먼저, 인문과학대학 소속 학과들은 모두 인원수가 줄었다. 가장 적게 줄어든 학과는 독일어문·문화학과와 프랑스어문·문화학과로 6명이 줄어든 반면, 가장 많이 줄어든 학과는 영어영문학과로 13명이 줄었다. 평균 학과 당 9.4명이 줄었으며, 전체 단과대학 중 줄어든 평균 인원수가 가장 많다.

 

사회과학대학 소속 학과들도 대부분 인원수가 줄었다. 인원이 감축된 학과들은 평균 약 6명꼴로 감소되었다. 사회과학대학 소속 학과 중 유일하게 인원감축을 피한 학과는 경영학과였다. 사범대학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모든 학과가 인원이 줄었으며, 평균 약 3.6명씩 감축됐다. 결국 인문계열의 학과의 모집 정원수는 모두 줄어든 셈이다.

 반면, 자연계열 학과들의 모집 정원수는 대체로 그대로거나 늘었다. 자연과학대학과 프라임 사업으로 신설 및 재편된 지식서비스공과대학’, ‘헬스&웰니스대학’, 그리고 뷰티생활국제대학에는 상당수의 인원이 배치되어 정원수가 늘었다. 그 중에서도 뷰티생활국제대학뷰티산업학과’, ‘글로벌비즈니스학과는 각각 32, 20명을 모집했다.

 

 종합해보면, 흔히들 취업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학과들은 인원을 줄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사회과학대학에서도 경영학과만이 인원 감축을 피해간 것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결국, 취업률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명목 하에 이뤄지는 인문대 죽이기인 것이다. 여기에 올해부터 그 문이 대폭 넓어진 변경된 전과제도까지 더해진다면, 학교입장에서는 인문계열 학과를 통폐합하기에 더욱 용이해진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인문과학대학 소속 학과들의 바뀐 학과명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프라임 사업 통과로 인해 인문과학대학의 ‘~~문학과들은 ‘~어문·문화학과로 바뀌었다. 겉보기에는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과명이 ‘~어문·문화학과로 바뀌는 것은, 이후에 학과 통폐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의견들이 나오기도 했다.

 

 

 

프라임 학과챙겨주기

신입생 장학금 최대 4년 중 절반 지원해줘

 

 

(17학년도 프라임 학과 신입생 대상 장학금 제도)

 

 

 이번 프라임 사업안의 중점 내용 중 하나는 일명 프라임 학과들의 신설이다. ‘프라임 학과, 신설된 융합보안공학과 서비스·디자인 공학과 바이오식품공학과 바이오생명공학과 청정융합에너지공학과 뷰티산업학과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들이 학과들이 신설되며 기존에 있던 일부 학과들과 재편되어 헬스&웰니스대학’, ‘뷰티생활국제대학이 설치됐다.

17년도 수시모집안의 장학금 제도에는 이들 프라임 학과를 대상으로 한 파격적인 장학금 제도가 있다. ‘프라임 학과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전 장학금이 바로 그것이다. ‘특전 장학금은 지식서비스 공과대학 프라임 학과 정원 내 모든 학생들에게는 4년간 수업료의 반액을 지불하는 내용이다. 입학학기는 전액이 지급되며, 단 재학 중 학점 제한이 있다. 어쩌면 그동안 유례없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특전장학금 제도만 보아도 학교에서 프라임 학과를 얼마나 챙기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이렇듯 내년 수시 모집 인원수의 증감과 등록금 제도를 통해서 프라임 사업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전체 학과 인원수가 아닌 수시 모집에 의한 정원을 따진 것이므로 위와 같은 분석을 비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각 학과별로 수시 반영 비율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 학과 인원의 70%를 육박하는 수치이니만큼 이를 분석해 프라임 사업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전술했듯이 17학년도의 수시모집요강을 보면, 취업에 유리한 학과들에 집중하는 한편 인문계열 죽이기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사료된다. 인문계열 학생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를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여성기술인들을 양성하는’ ‘뷰티산업헬스&웰니스대학이 차지할 것이다. 이는 여성 산업을 단순한 돌봄 산업으로 한정해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성신여대에서의 프라임 사업이란 이런 의미라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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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훈을 이사로 선임한
이사회 결의 무효 선고

 

 

  지난 810일 심화진 총장의 업무상 횡령 재판이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속행으로 열렸다. 3억원의 횡령사건이 추가 기소되었다. 또한 앞으로 재판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피고 학교법인 성신학원) 이사회 결의 무효 확인 소송은 따로 진행되어 원고 승소했다.
[관련기사:우리 등록금이 변호사 비용으로? - 황당한 교육부의 사립학교법 개정안]

 

 

이사회 결의 무효 확인 소송이란?

  이사회 결의 무효 확인 소송의 원인은 지난 2015311일 사학분쟁 조정 위원회의 4명의 임시이사 파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교법인 성신학원 이사회는 이사 8명 중 4명이 임기 만료였다. 사립학교법과 성신학원 정관에 따르면 이사 정수의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의결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성신학원 이사회는 8명의 이사 정수 중 4명만 존재해 의결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
관련기사: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성신여대]

 

 

 

(학교법인 성신학원 정관 제22)

 

 

(사립학교법 제18)

 

 

  이에 교육부는 사립학교법 제25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법인 성신학원의 정상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 당시 서울과기대 총장이었던 남궁근 총장(현 서울과기대 교수, 학교법인 성신학원 이사) 송인준 아시아투데이 회장(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현 학교법인 성신학원 이사장) 편호범 딜로이트 안진 회계법인 부회장(현 수원대학교 석좌교수, 법인 성신학원 이사) 박백범 서울교육청 부교육감(현 성남 고등학교 교장)을 임시이사로 파견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파견된 임시이사 4명과 정이사 4명으로 이뤄진 이사회는 임기가 끝나가는 정이사 1명을 대신하여 새로운 정이사(이하 개방 이사)를 선임하게 된다. 당시 본교 이사회는 임시이사와 정이사가 같이 존재하는 특수한 경우였고 임시이사와 정이사가 혼재할 시 정이사 임명과 관련된 명확한 규정이 없었기에 이사회는 개방 이사 선임을 강행했다. 이렇게 임시이사들이 파견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2015424일에 박세훈 이사(현 가톨릭 관동대학교 교수)를 선임한 이사회가 결의된다. 그리고 2015722일 박세훈 이사가 포함된 이사회에서 심화진 총장이 8표 중 5표를 받으며 3연임에 성공한다.
[
관련기사:성신이기에 가능하고, 성신이기에 당연했던 10대 총장 선임]

 

 

(대법원 2010.6.24. 선고 20106069,6076 판결)

 


 

 

(판결 근거 조항인 사립학교법 제25조의3)

 

  하지만 대법원 판례와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임시이사가 파견된 학교법인의 정이사 선임은 사학분쟁 조정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이뤄진다. 즉 정이사를 뽑을 수 있는 권한은 임시이사가 아니라 사학분쟁 조정위원회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임시이사와 정이사가 혼재될 당시에 뽑힌 박세훈 이사는 이사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810일 피고 학교법인 성신학원 측으로부터 원고 승소한 내용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결의된 이사회가 무효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결의 무효가 확인된 이사회에서 심화진 총장의 선임 결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사회 결의가 무효 처리 됨에 따라 당연히 무효화된 이사회에서 뽑힌 심화진 총장의 선임 결의 또한 무효 처리 가능성이 있다.

 

 

성신의 진정한 평화를 바라며

  이번 재판에서 주목할 점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무효화된 이사회 결의에서 심화진 총장 선임 결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무효됨에 따라 총장 선임 또한 무효화된다. 이번 재판 결과로 인해 이후 총장 무효 소송도 함께 진행될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심화진 총장의 업무 상 횡령 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심화진 총장의 재판을 참관하였던 익명의 한 학생은 현재 우리 학교에서 민사, 형사 모두 재판이 진행 중이라 알고 있다. 이화여대만큼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우리 학교도 우리 학교 나름으로 잘 해결해나가는 중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음 재판 날짜는 9월 28일이다. 성신의 평화를 바라며, 앞으로도 학우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돌로레스 엄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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