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2016년 10월 23호'에 해당되는 글 2

  1. 2016.10.31 11월 17일의 광화문을 추적하다
  2. 2016.10.31 그들은 왜 법원에서 도촬을 했을까


1117일의 광화문을 추적하다


20151114, 백남기 농민은 쌀값 폭락을 저지하기 위한 ‘1차 민중총궐기시위에서 차벽을 뚫기 위해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이후 뇌출혈로 구급차에 실려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317일 동안 투병생활을 하던 중, 지난 925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사망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후 경찰 측에서 백 씨의 시신 부검 영장을 발부했다. 지금까지도 백남기 농민의 사인, 경찰의 시위 진압에 대한 위법성, 부검의 필요성 등에 대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많은 논란 속에서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 논란이 된 빨간 우의장면



빨간 우의인가, ‘물대포인가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은 시위 당시 경찰이 살포한 물대포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를 비롯한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그가 쓰러진 당시의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빨간 우의를 입은 한 남성이 그를 가격했다는 주장을 유포했다. 또한 김도읍·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201511월 김수남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빨간 우의설을 제기하며 수사를 촉구했고, 같은 해 11월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다시금 주목 받았다. 이와 관련해 본교 정치외교학과 학생이 뉴데일리에 기고한 글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민중총궐기 이틀 뒤 백씨의 주치의인 백선하 서울대 신경외과장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백 과장은 함몰 부위를 보면 단순 외상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외상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에서 논란이 된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빨간 우의 가격설과는 정반대의 분석이 나왔다. 해당 남성은 백 씨를 향해 발사된 물대포를 막기 위해 물대포를 등지고 서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물대포의 강한 수압을 못 이겨 앞으로 넘어졌을 뿐 가격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빨간 우의를 입었던 남성 본인이 나타나 백씨를 덮치지 않기 위해 팔을 뻗어 땅을 짚었다고 진술해 백 씨의 사인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검경은 사망 경위를 명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부검 영장을 두 차례 신청, 발부에 성공한다.



폭력 시위인가, ‘과잉 진압인가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은 1차 민중총궐기 당시 시위의 폭력성 그리고 백 씨가 차벽을 뚫기 위해 경찰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행위와 경찰 측이 보인 대응, 이 두 가지 행위의 적법성이다.

 

1차 민중총궐기 당시 집회 참가자들은 신고한 경로대로 서울광장에 집결한 후 광화문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은 교통 혼잡을 우려하여 집회 신고를 반려하고 종로사거리 일대에 대규모 차벽을 세웠으나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그러자 경찰은 살수차를 도입,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향해 캡사이신과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발사했다. 경찰의 차벽으로 길이 막힌 것에 분노한 시위 참가자들은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경찰 버스에 밧줄을 맨 뒤 이를 끌어당겼다. 경찰은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버스 위에서 살수하는가 하면, 시위대가 버스에 오르지 못하도록 버스에 콩기름을 부었다이 과정에서 일부 흥분한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큰 마찰이 빚어졌다.


밧줄을 끌어당기던 중 물대포를 맞는 백남기 농민


경찰 측에서는 백남기 농민이 차벽을 뚫기 위해 버스에 밧줄을 매달고 끌어당겼기 때문에 물대포를 직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당시 시위 전체적으로 쇠파이프와 횃불을 사용했고, 경찰에 폭력을 행사했으므로 강경 진압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그들의 근거다. 하지만 민중총궐기 대회는 해가 지기 전, 서울광장 등지에서 집결하고 광화문으로 향할 때는 행진과 발언을 중심으로 진행된 평화 시위였다. 일부 집회 참가자의 격앙된 행동은 경찰과 충돌한 후 발생하기 시작했다.


오후 430분 경, 시위자들이 차벽을 흔들고 기어오르기 시작하자 경찰은 살수차를 이용한 강경 진압을 시작했다. 이를 겪었던 시위대들은 경찰의 대응이 분명한 과잉 진압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물대포에 섞인 최루액과 캡사이신의 농도가 여타 시위에 비해 상당히 짙었고, 살수차의 수압 또한 규정된 정도보다 점점 더 세졌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경찰 내부 지침을 따져봐도, 백 씨가 맞은 물대포는 지침보다 800rpm 더 세게 직사됐고, 허리 아래로 쏘아야 한다는 규정 역시 어긴 것으로 나타난다.



다친 자는 있지만 책임을 무는 자는 없다

해당 시위가 불법 시위인지 혹은 평화 시위인지 말이 엇갈리고 있으나, 결국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민간인의 사상이 발생했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 이와 같은 지적에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시위 현장에서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경찰이 무조건 사과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물대포는 전술한대로 내부 지침조차 준수하지 못했으나, 경찰 관계자들은 당시 살수차는 적법하게 운용됐다는 진술을 내놓았다. 죽은 자는 있으나 피의자와 책임자는 없는 셈이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시위 중 농민 2명이 사망하자 결국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나서 대국민 사과를 했던 것에 비춰보면 너무나 무책임한 대응인 것이다.

 

시위에 참가해 진압에 앞장섰던 의경이나 경찰 본인을 지적하는 여론이 있으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따지되 모든 것을 그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시민을 뽑아 시민과 대결하게 하고,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장비를 운용하고 있으면서 그 교육과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본인들의 유책을 부인하는 구조가,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민간인의 죽음에 관련 있는 자들이 책임을 질 기회를 주지 않고, 그 누구도 책임 지지 않고 있는 권력의 무책임함이 문제다. 사람이 죽었다. 시위를 나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람이 죽었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국민의 보호를 꾀한다. 그 폭력이 죄가 없는 민간인에게 향했고, 그리고 실제로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폭력의 논리를 가져와 회피하고 있는 때다. 그래서 사망의 책임 소재를 더더욱 분명하게 해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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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법원에서 도촬을 했을까


지난 928일 서울북부지방법원(형사7단독, 사건번호 2016고단296, 2016고단2272 병합)에서 업무상횡령등의 혐의로 기소된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는 피고인측 증인신청이 있었다. 이에 오는 119일 열릴 공판에서는 본교 문기탁(), 신철호(경영), 조정민(간호)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928일 재판 과정에서 언급된 제출 서류로는 본교 총동창회와 총학생회가 제출한 탄원서(2016.09.21.) 기타 성OOOOOOOOOO 탄원서(진정서등) 제출, 2016.09.27 기타 이OOOOOO 탄원서(진정서등))가 있었다.

 


쫓고 쫓기는 법원 런닝맨, 누가 왜 성신여대 구성원들을 촬영했나?

재판이 끝난 이후 법정동 4층 복도에 소란이 일었다. 이소현 총학생회장이 누군가(편의를 위해 이하 ‘A라고 지칭) 핸드폰으로 재판정 출입구 인근을 촬영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이소현 학생회장이 A에게 사진첩 확인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졌다. 재판이 끝난 직후 A씨가 핸드폰을 재판정 방향으로 들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재판을 방청한 본교 학우 및 구성원을 찍은 것으로 짐작되는 상황이었다. A씨는 사진첩 확인을 요구받자 처음에는 아니다. 핸드폰으로 다른 것을 하고 있었다.”라고 답하며 사진첩 확인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차례 부탁 끝에 결국 응했다. A씨가 보여준 사진첩에는 재판정 복도의 모습이 담긴 41초의 영상이 발견됐다.

 

이소현 총학생회장이 A씨에게 그 영상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을 때, 총동창회 부회장도 또 다른 누군가(이하 ‘B’)가 성신여대 구성원을 향해 사진을 찍는 듯한 행위를 포착했다. 이에 사진첩 확인을 요청하자 B씨는 법원 비상구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총동창회 부회장과 이소현 총학생회장이 B씨를 좇으며 사진첩 확인을 재차 요구했지만, 그는 안 찍었는데 왜 이러세요.”,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라며 거부했다. 되려 본인의 동행인(이하 C)에게 총동창회 관계자와 이소현 학생회장이 사진 확인을 요청하는 상황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C씨는 당시 상황을 핸드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사진첩 확인 요청에는 응하지 않고 한바탕 달리기와 소란만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다만, ‘도촬의혹으로 언쟁을 벌인 이들이 재판 이후에도 교내에서 종종 목격돼 총장과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사진1>



 <사진2>


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B씨에게 사진첩 확인을 요청하는

총동창회부회장<사진1>과 그 상황을 촬영하고 있는 B씨의 동행인 C<사진2>

(기사 업로드와 함께 페이스북 ‘Sungshin Publika’ 페이지에서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 확인 가능)



증인으로 채택된 성신여대 교수들은 누구?

다음 공판의 증인인 법학과 문기탁 교수는 2014PD수첩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방영 당시 본교 학생처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그 방송을 통해 문 교수가 심화진 총장 비리 의혹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재학생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학내에 파장이 일자 학생처장 명의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현재는 시설관리처장직에 있다. 또 다른 증인인 경영학과 신철호 교수는 현재 본교 부총장이며, 간호학과 조정민 교수는 교무처장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119일에 있을 다음 재판에서는 심 총장측이 신청한 증인들에 대해 개인당 약 30분의 증인 신문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업무상횡령등의 재판은 지난 8월에 선고된 박세훈을 이사로 선임한 2015.4.24.자 성신학원 이사회 결의는 무효라는 판결과 더불어 성신여대 학내 분쟁의 핵심이 되는 사안이다.[관련 기사-박세훈을 이사로 선임한 이사회 결의 무효 선고.] 따라서 심화진 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된 증인들이 공판에 출석해 어떤 내용의 증언을 할 것인지, 또 그 증언이 성신여대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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