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동아리 탐구>

 

학교를 페미니즘으로 물들이고 싶다

- 성신여자대학교 페미니즘동아리 ‘NOON’ 인터뷰 -

 

 

- 16년도 10월에 이루어진 인터뷰입니다.

 

지난 1012일 퍼블리카는 성신여대 앞 카페에서 본교 페미니즘 동아리 ‘NOON’과 인터뷰를 가졌다. 보다 다양하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NOON의 회원들의 호칭은 각각 A, B, C, D로 대신했다. 퍼블리카는 이하 로 표기.

 

 

1. 동아리를 만들게 된 시기는 언제이며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한 'NOON'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뭔가요?

 

D : 동아리 시작은 저널 동아리였어요. 현재까지 남아있는 창설 멤버는 없지만, 2013년 겨울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준비 기간을 가졌다고 전해 들었어요. 창설 준비와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성신여대 학우들의 인식 조사도 했었고요. 여대인데도 여성주의 동아리가 없다는 게 계기였다고 해요. NOON정오(noon)'가 오전과 오후가 공존하는 시간이듯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경계, 사회와 여성의 경계가 지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는 이름입니다.

 

: 그럼 언제부터 동아리의 성격이 바뀐 건가요?

 

D : 저널 모임이라 글을 쓰려면 준비할 게 너무 많았고 무거운 느낌도 들어서 가볍고 쉽게 바꿔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2015년 하반기부턴 독서토론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 위주로 진행되고 있죠.

 

 

 

 

2. 모두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살면서 느껴왔던(특히 성신 교내에서) 성차별 사례들이 있었거나, 또는 그것을 성차별로 인식하고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B : 저는 '안전이별'에 실패했어요. 이런 게 개개인의 문제일 뿐인가 생각하던 즈음 메르스 갤러리사건이 터졌어요. 이때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제가 각성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D : 맞아, 그때 메갤이 플랫폼이 된 것 같아.

B : 그렇지. SNS가 하나의 계기가 됐지.

 

 

: A분은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 저희 집은 딸만 셋이예요. 저는 그 중 첫째고요. 집안에 가부장적인 문화가 깔려 있었어요. 제사문제 같이, 사소한 것부터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저 또한 몰카가 직접적인 (각성) 계기입니다. 가해자는 기숙사 룸메이트였어요.

 

: 그럼 가해자가 여성, 그것도 같은 학우였다는 건가요?

A : 본인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제 속옷만 입은 사진을 올려놨더라고요. 그래서 고소를 했어요. 결국 유죄판결이 났구요.

 

: 대체 그랬던 이유가 뭔가요?

A : 제가 청소를 하라고 말한 게 싫었대요. 그래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제 얼굴은 찍히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데 피의자가 나중에) 경찰에 말하기를 나는 성소수자고, 그 사진은 내가 사귀는 사람의 몸이라고 하더라고요. 웃기는 게 누가 봐도 본인 몸은 본인이 알잖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이러한 사건을 제가 직접 마주하다보니, 여성의 몸으로 협박하고 권력처럼 남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에 너무 만연해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어요.

 

: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그대로 보고 흡수했다고 볼 수 있네요. 그런데 B씨는 어떻게 페미니즘 공부를 했나요? SNS를 통해서?

B : 아니요. 저는 SNS 영향은 거의 안 받았어요.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페미통신 연재글과 영화나 책, 국문과 현대문학읽기 수업에서 국내 페미니즘 문학과 그 계보를 읽으며 페미니즘을 익혔어요.

 

: 자 그럼 C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C : 반대로 저희 집은 저 빼고 다 아들이에요. 저희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일찍 이혼하셔서, 현재는 아버지와 저와 남동생. 이렇게 셋이 살아요. 사촌 쪽도 다 남자밖에 없어요. 친할머니가 거의 유일한 여성이신데 가부장의 끝을 달리시죠. 어머니가 그래서 이혼을 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이혼 후부터 엄마가 없으니 네가 엄마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거의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던 것 같아요.

 

: 그때 몇 살이었어요?

C :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B : 초등학교 4학년한테?

: 라면도 못 끓이겠다.

 

C : 그때부터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집안일을 하는 건 별 상관없었어요. 아빠는 일을 나가니까 저라도 해야죠. 하지만 전 동생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면 아빠는 항상 남자니까 안 된다는 식으로 넘기고, ‘넌 그렇게 동생을 시키고 싶냐면서 제가 잘못되고,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몰기 일쑤였어요. 집안의 불합리함을 느끼며 자라서, 우리 집만 이런가 보다 했는데...

 

: (여성이라 가사 전담을 요구하는) 사회가 사실 이상한 거 아닌가 싶어요.

B : 비정상이 정상 같은 사회야.

 

C : 집안에서 당했던 차별과 중·고등학생 때 은근히 존재하는 성차별을 보면서 부당하다고 생각해왔어요. 지금은 (비교적)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해도 지지를 해주지만 예전에는 그런 게 지배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잖아요.

D: 그렇지. 최근에나 이렇게 바뀐 거지.

 

C: 예전에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성평등을 전제로 깔고는 있지만, 추가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제대로 공부를 해본 사람만이 페미니스트이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죠. 예전에 TV에서 연예인이 전 성평등주의자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이런 얘기도 했잖아요.

 

D: 맞아 뭐 젠더 이퀄리즘? 이러더라?

 

B: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말 안하죠. 젠더 이퀄리즘이라고 하죠.’ 근데 오바마가 나와서 들고 있는 플랜카드엔 아이 엠 페미니스트웃긴 거예요. 페미니즘도 성평등이 전제로 깔린건데...

 

C: 예전에는 정치적 진보관에 왜곡되지 않은 여성관도 깔려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은 일부분이고요. 저도 처음엔 온건한 페미니스트였어요.

 

: 그럼 작년부터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건가요?

C: ‘메르스 갤러리장동민 사건이 터지고 난 후를 말씀하시는 거죠? 초기에는 그 흐름에 편승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미러링같은 급진적인 운동에 대한 사회의 격한 반응을 보며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들은 헛짓거리였던 것 같은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물론 그런 급진적인 행동을 전에도 할 수는 있었어요.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회가 바뀔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거죠. 이런 사건들이 각성까지는 모르겠지만 인식의 전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복학하고 나서 학교에 페미니즘 분위기가 생겨서 좋았어요. 최근까지도 궁극적인 성차별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요즘에는 회의감이 드네요.

 

 

: D씨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D: 저희 집은 딸이 둘인데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딸이 최고다라는 분위기예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난이 심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엄마가 네가 먼저 주먹을 날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걔한테 주먹을 날렸죠. 전 정말 조용했던 애였는데, 주먹을 날리니까 교실이 뒤집어졌어요. 물론 제가 그 남자애보다 훨씬 많이 맞았죠. (웃음)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아무도 저에게 시비를 걸진 않았어요. 그때 이후로 제 성격도 활발해졌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한 직접적인 계기는 정말 최근이에요. ‘장동민 사건이 결정적이었어요.

 

B: 그때 엄청 많은 여성분들이 페미니즘에 눈을 뜨셨죠.

 

D: 저는 비상식적인 장동민의 발언에 대한 대중의 비상식적인 반응이 더 충격적이었어요. ‘그럴 수도 있지’, ‘식스맨 시키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농담으로 하는 얘기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냐뭐 이런 댓글들? 이때부터 사회 전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페북의 상남자만화라는 만화를 보면서 충격을 받아서, 문제가 있구나하고 인식했죠. (B. 그거랑 이주용!) 그런데 그런 게시글의 댓글들이 더 이해가 안가요. 너무 심각한 수준이에요.

 

B: 거기에 막 '웃기다', ‘공감된다이런 댓글들이 많이 달려있죠.

 

D: 20151학기에 국민대 학점교류를 가서 페미니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일상생활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들을 학문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현대사회와 여성이라는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인권에 대해 많은 고찰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혐오에 대해서 조별과제로 발표도 했었는데, 그 이후에 메르스 갤러리사건이 터지더라고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이 중 그나마 '무난한' 과정을 거치셨네요.

D: 그렇다고 저도 성차별을 당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때는 그게 잘못된 것인지를 몰랐었을 뿐이죠.

 

 

 

3. 에브리타임을 하는 학우들에게는 모 회원 분이 하시는 페미통신으로 익숙할 텐데, 이건 개인이 하는 건가요?

 

D : 제 닉네임이 그거예요. 개인 차원에서 하는 활동이고 동아리 차원에서 하는 건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학우들과 공유하고 싶은 콘텐츠를 외부에서 가져와서 게시해요. 사실 예전에는 에타에서도 몰카나 성폭력에 관련된 게시물을 올리면, ‘피해여성이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반응들이 꽤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많이 답답했죠.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시는 분들도 다른 차원에선 피해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페미통신활동 이후에 다른 학우 분들도 콘텐츠를 가져오기 시작하며 이러한 페미니즘에 대한 공론이 점점 더 활성화됐고요. 특히 학우 분들이 제가 게시하는 글을 잘 읽고 있다고 해주실 때마다 고마움을 느껴요. 페미니스트들의 글이 하나라도 더 퍼지는 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4. 올해 대동제에서 페미니즘 굿즈를 파는 활동을 하셨던데, 참여하게 된 경위와 소감은 뭐였나요?

 

D : ‘우리도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1학기 모임부터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죠. 게임이나 이벤트 등을 통해 페미니즘을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학우들이 눈 앞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음을 느낄 수 있길 바랐습니다. 굿즈도 여러 안이 있었는데, 원래는 투명 생리대 파우치를 제작하려고 했어요. 그때 당시에 노브라 논란과 같이 관련 이슈가 대두됐었거든요. 생리는 숨겨야 할 것으로 여기는 생리 터부도 이와 연관이 있죠. 이런 터부에 대항해서 투명한 생리대 파우치에 생리는 숨길 것이 아니다.’란 문구를 새길 생각이었어요. 근데 제작 단위가 크고 인쇄비도 비싸서 접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거울이었다. 문구를 ‘Just For Me',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등으로 새겼는데요, 학우분들이 이걸 보고 무슨 의미냐고 여쭤보시기도 했어요.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하는 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란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거죠. 무엇보다 학우들이랑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A : 우리 스스로 뭔가 제작하는 것에도 의의가 있었어요. 우리가 주장하는 것들을 굿즈로 만들어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는 일이니까요. 이 밖에도 데이트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보다 올바른 대처를 소망하며 관련 소책자들을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D : 이건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아서 하게 됐어요. 여자의 잘못이 아닌데 대처라고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현실이니까요. 이런 것을 보면 언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시로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초반에는 단어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점차 이에 대한 여성들의 대화가 많아지고 사회적으로 부각되며 (단어와 성희롱 실태가) 떠올랐죠. 최근 시선강간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도 매우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런데서 위협을 느끼는 게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이기 때문이잖아요. 불편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라 지정해서 부를 단어가 없었는데 새롭게 생겼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나눌 담론이 늘어나니까.

 

: 동아리가 밖으로 나가 굿즈를 팔며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참 의의가 있는 활동인 것 같네요.

 

D : 굿즈를 소비하고, 또 소유한다는 것은 굿즈에 대한 의미를 지지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5. 판매했던 굿즈에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라는 문구를 사용하셨는데. 사실 해당 문구는 옹달샘 여혐 논란때 발견된 개그맨 장동민의 과거 발언을 비꼬는 것이기도 하죠. 그 논란을 시작한 메갈을 포함해 한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어요.

 

 

D :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낸다는 게 고무적이에요. 우리가 인터넷 세대인 덕도 큰 것 같고. 바람이 불 때 돛 달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소라넷을 비롯해 여성혐오 이슈들이 터질 때마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모인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이 흩어져 있을 때는 (사회가) 목소리를 듣기 힘들잖아요. 미러링이 폭력적인 것은 그 원본이 폭력적이기 때문이죠. 거울을 깬다고 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A : 여성 연대가 생겼다는 것을 크게 쳐줘야 해요. 그 전엔 전무했으니까. 최근엔 경제력 있는 여성들도 합류해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어요. 방향성을 잘 찾지 못해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 줘야 할 것 같네요.

 

D : ‘메갈리안이라는 말이 무의미 해졌다고 할 정도잖아요. 많은 여성들이 한남과 시선강간이라는 말에 동감하고 있으니까.

 

 

6.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때는 언제인가요?

 

C. 페미니즘에 대해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동아리에 들어왔기 때문에, 확실히 함께 공부하는 편이 혼자서 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토론하면서 내가 내리지 못한 답을 다른 분이 내주시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되짚어주기도 하면서요.

 

D. 저는 개인적으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목소리를 많이 내는 편이예요. 100명이 침묵할 때 1명이 목소리를 내는 것 보다, 20명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주위사람들이 자문을 많이 구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보람을 느껴요.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주위 분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물어볼 때는 내가 옳게 가르쳐주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해 조심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뿌듯하기도 합니다.

 

A. 주위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곤 해요. 굳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는 얘기도 많이 듣지만,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어오니까 정체성이 더 공고해지는 것 같아 좋아요.

 

 

7. 동아리 NOON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D. 성평등의식 고취가 가장 먼저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엔, 페미니즘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미나를 하다 보니 많은 문의가 와요. ‘혹시 어렵지 않을까요?’라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사실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배우는 책들이 어렵지도 않구요. 쉽고 재밌게 페미니즘을 얘기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에 대한 희망찬 얘기가 많이 오갔으면 좋겠어요. 학교를 페미니즘으로 물들이고 싶어요.

 

C. 주위 사람들에게 본인들이 고통을 합리화 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어요.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알고, 또 거기에 대해 눈을 뜨면 페미니즘을 더 잘 알게 되니까요. 한정되게는 교내의 학우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네요.

 

A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주위 친구들이 좀 더 예민해 졌으면 좋겠어요. , 내 삶의 방식을 전반적으로 바꾸고 싶어요.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앞으로 결혼을 하더라도 나의 삶의 방식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나부터도 내면의 차별성을 깨부시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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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카 기자들이 뽑은
성신여대 참말
·막말 어워즈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한편, 말 한마디로 없던 천냥 빚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성신여대 안에서도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언사가 있어왔다. 수정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참말들부터 가슴을 쾅쾅 치게 만드는 막말까지. 그래서 퍼블리카 기자들이 뽑아보았다. 성신여대 참말·막말 어워즈!

 

<참말>

 

1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심화진 총장 퇴진하라.”

(2016118일 비상총회- 성신여대 학생들)

 

2016118일 비상총회 안건 통과 후 잔디밭에서 공동행동이 있었다. 총회에서 받은 심화진총장 OUT'이 프린팅 된 노란풍선을 다 같이 하늘에 날리는 시간이었다. 학우들은 잔디밭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모아 외쳤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심화진 총장 퇴진하라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2015119비상총회에서, 프라임 사업 반대시위에서, 2016년 비상총회에서 수 없이 외쳐도 듣지 않는 그들이지만 학우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누구나 상식이라고 여기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당연한 것을 지키기 위해 높이는 목소리가 주는 울림을 생각하며, 비상총회에서 학우들이 자발적으로 외친 구호를 1위에 선정했다.

 

 

 

2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 않으며,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2016118일 비상총회- 성신여대 A동문)

 

1위와 마찬가지로 118일 비상총회에서의 발언이다. 마이크를 잡은 A동문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 않으며,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비상총회에 참석한 학우들을 비롯해 미처 참석하지 못하여 총회 상황을 전해들은 학우들 사이에서도 이 발언이 인상 깊었다는 후기가 다수 있었다.

 

학교가 겪는 여러 진통을 보며 재학생만큼이나 힘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성신여대를 모교로 두고 있는 선배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의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동창회의 호소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우리도 언젠가는 졸업생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성신여대는 우리의 모교가 된다.

 

 

 

3

"그런 학교에 학생들을 어떻게 맡깁니까?"

(언론 인터뷰- B교수)

 

성신여대는 심화진 총장의 비리의혹에 대해 알리고자 앞장서던 학생들을 경찰에 수사의뢰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때 수사의뢰를 위한 변호사 자문료를 학생들이 낸 등록금인 교비로 충당했다. 이에 성신여대 B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학생들을 고발하는 데 사용했다는 거죠. 그런 학교에 어떻게 학생들을 맡깁니까?”

 

심화진 총장은 2010년 언론을 통해 학생들을 교육할 때 항상 그들을 소중히 키워주신 부모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그들의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합니다.”라고 인터뷰 한 바 있다.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피땀어린 등록금으로 변호사 자문료를 지출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부모의 마음을 고민한다면 비위행위를 지적한다고 하여 학생을 수사기관에 출입하게 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학생을 고발하는 데 등록금을 사용하는 학교에 어떻게 학생들을 맡기냐는 B교수의 인터뷰가 더욱 사무치는 이유다.

 

 

 

<막말>

 

1

어린여자티를 시위에서도 낸다는게 너무나 절망적이다.’

(에브리타임 커뮤니티-익명)

 

20163월 초, 학과 통폐합 및 인원 감축 가안이 학생들에게 알려지면서 프라임사업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다. 그 중 립스틱 등의 도구로 학교 유리벽에 통폐합 반대 문구를 쓰는 시위 방식이 학우들에 의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기획되기도 하였다. 이른바 립스틱 시위와 관련된 의견을 주고받던 이 시기의 어느 새벽에 나타난 익명댓글은 학우들을 분노케 했다. ‘어린 여자티를 시위에서도 낸다는 게 너무나 절망적이다.’ 라는 댓글이었다. 그는 또한 어린 티를 온몸으로 낸다’, ‘많이들 참석하고 입사 면접보실 때 뱉을 변명이나 생각해두시길...’ 등의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본교 학생들만이 인증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게시판이었지만 이날을 계기로 많은 학우들은 그 인증이 무력화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익명이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달았는지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성신여대 학우들은 서로를 어린 여자로 칭하지 않는다. 또한 학습권 보장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 표명을 변명뱉어야 할행위 따위로 격하시키지 않는다.

 

 

 

2

공부하지마, 학생 같은 사람은

(PD수첩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 C교직원)

 

2014년 방영된 PD수첩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 비리의혹이 전파를 탔다. 그리고 이 방송을 통해 성신여대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 유명한 학공마가 탄생했다. 총장 비리의혹에 대한 대자보를 붙이려는 학생을 향해 학생지원팀 C직원이 학생이면 학생 신분답게 해”, “공부하지마, 학생 같은 사람은이라며 소리친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본지 기자들은 이른바 학공마를 막말 2위로 뽑았다. 충격의 여파가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공부 하지 말라 소리치는 모순을, 학생이 준비한 대자보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학생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을 차마 잊을 수 없다. 학내분규에 대해 대자보를 쓰는 학생은 학생답지 못하고,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하는 학생인가. 그렇다면 학생다운 학생은 그 상황에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3

넌 누구니? 넌 내가 찾아낸다

(2015119일 비상총회- D교직원)

 

작년 11월 비상총회에서의 일이다. 총회에 참석한 학우들은 총학생회에서 측에서 나누어준 스티커를 학교 곳곳에 붙였다. 그러던 와중 신분을 밝히지 않은 여성이 학우들에게 다가와 "너 누구니? 너네 내 사무실에 무슨짓 해놓은거니?“라고 말했다. 학우들이 누구시냐 묻자 나 교직원이야라고 답했다. 반말하지 말아달라며 학우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에 그녀는 너는 또 누구니? 넌 내가 찾아낸다고 응수했다.

 

'학공마'에 이어 학생들을 대하는 교직원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사였다.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다짜고짜 를 시전하고, 본인에게 대항하는 학생에게는 누군지 찾아낸다며 위협했다. 교직원과 학생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또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경어를 사용하는 상대방 앞에서 그를 하대하는 것은 공적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존중받고 싶다며 감정에 호소하는 언론 플레이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의 언행을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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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거리의 기억

 

 

 

 

 

 

 

 

1112

처음에는 경악이었고 다음은 의심이었고 마지막은 분노였다. 하지만 답은 하나였다. ‘일단 나가야겠다.’ 솔직히 집회에 나간다 해서 무언가가 바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집회가 개인에게 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목소리를 내고 주장했다는 권리 행사의 실현이 아닐까 싶다.

추위가 걱정돼서 입고 온 옷이 무색할 만큼 1112일 그 날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오후 2시부터 여성대회에 참가했다. 한차례의 소란이 있었지만 평화로운 시위였다고 기억한다. 서로 노래를 부르고 앞에 나가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였다. 여성대회의 기조는 차별 없는 평등 집회였다. 다양한 몸, 다양한 생각, 다양한 지향을 아우르는 대회였기에 다양한 사람이 어울릴 수 있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강남역 10번 출구(페미니즘 페이스북 페이지)부터 성소수자 관련 협회까지 많은 단체들이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편안하게 참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이제까지의 시위에서 소외되었던 보편인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전국민에게 자괴감을 주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자신들에게 국민이 부여한 지위를 사적으로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다. 이들이 한 일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사회 공통의 문제가 대두되면 주변인들은 밀려나는 법이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두고 희화화하는 많은 단어들이 발생했다. 이는 곧 우리 사회 속 주변인들의 인권도 끌어내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미스 박’, ‘강남 아줌마등으로 발현된 희화의 방향은 결국 여성 혐오와 소수자 혐오로까지 넘어갔고, ‘이런 중대한 문제에서 인권같이 국소적인 문제를 이야기해야하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성대회 발언자 중 한 분의 말과 같이 보편인권이 국소적인 문제라면 누구의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을 수 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 문제는 전국민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은 여성 희화화로 이어졌으며 그것은 여성혐오로 2차 피해를 야기했다. 그 날의 시위가 우리에게 주었던 또 다른 의미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억압이 존재하는 시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주권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듯이 인권 실현 역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국민 주권과 인권 실현은 함께 가는 것이지 하나를 억압하여 다른 하나를 이룩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한다.

- 돌로레스 엄브릿지

 

 

 

 

 

1203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촛불집회가 지속되던 중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며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모인 민심을 비하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 반박이라도 하듯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회의 새로운 풍속을 만들며 더 크게 타올랐다. 광장에 LED 촛불이 등장하고 횃불이 나타났다. LED 촛불을 판매하는 가판대를 집회가 진행되는 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촛불대신 큰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시민들도 눈에 띠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23일 행진이 한창이던 독립문역 앞에서 노래가 울려 펴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반복되는 가사와 익숙한 리듬으로 행진 대열에 있던 남녀노소 모두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사가 전달하는 의미는 무거웠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흥겨웠다. 집회와 시위는 엄숙하다는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거리의 기억이 형성되는 시점이었다.

 

- 그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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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값도 죽이고 농민도 죽이고

-백남기 농민의 진정한 사망 원인-

 

 

왜 그는 민중총궐기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나

  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에 대한 주장은 분분하지만, 결국 민중총궐기에서 입은 부상이 일차적 사망원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백남기씨는, 그리고 농민들은 이러한 비극이 발생한 민중총궐기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을까?

 

  201511141차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2대 요구안을 내놨다. 농업 부문에서의 요구안은 밥쌀 수입 저지,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반대,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이었다. 이 세 요구안은 모두 수입 농산물로 심각한 가격 하락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 농산물과 쌀의 적정 가격 보장을 위한 것이다. 이전부터 농민들은 쌀의 적정 가격 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응해 대선 당시 쌀 1포대(80kg)의 가격을 17만원에서 2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공약과는 정반대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쌀값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85일 기준으로 전국 평지 산지 쌀값은 1포대에 137152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시점의 159972원보다 14.3%가 하락한 가격이다.

 

 

 

 

 

  이렇게 쌀값이 폭락한 이유 중 하나는 생산과다와 소비감소라는 구조적인 원인이다. 실제로 정부는 쌀 수급 문제의 주원인을 소비량에 비해 과다한 공급을 보이는 현 시장구조에서 찾고 있으며, 최근 4년동안의 풍작과 지속적인 쌀 소비감소가 현상황의 가장 큰 문제라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 쌀 소비량은 매해 감소세를 보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20141인당 쌀 소비량은 65.1kg으로 10년전인 20051인당 쌀 소비량 80.7kg에 비해 15.6kg이나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4년동안의 쌀 생산량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쌀 생산량은 2012년 약 400만톤에서 2015432만톤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현재의 쌀 수급 문제의 원인이 오직 생산과다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최근 4년만 보면 쌀 생산량은 증가 추세에 있으나 전체적인 추세를 보면 쌀 생산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위 그래프를 보면 국민 총생산의 분기점인 1988년도부터 2015년도까지 쌀 생산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소비의 감소 추세에 맞춰 생산량도 줄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쌀 생산 과잉 주장은 그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미곡의 소비-생산 구조에서 또다른 공급의 문제는 무엇일까?

  농가 측에서는 정부의 쌀 수입 시장 개방을 그 이유를 꼽고 있다. 우리나라 쌀 수입 시장 개방은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시작된다. 당시 모든 농산물에 관세를 붙여 시장을 개방한다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약 아래,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1995-2004년까지 10년간 전면 개방을 유예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해외 농산물을 최소시장접근 물량인 MAA를 관세를 붙여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95년 국내 쌀 소비량의 1%5만톤에서 2004년에는 국내 쌀 소비량의 4%205천톤을 의무적으로 수입했다.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도하 라운드 재협상에서 정부는 쌀 개방을 막지 못하고 관세화를 통한 전면 수입을 수용하게 된다. 이로인해 쌀 시장 개방 재유예 기간인 2005-2014년이 끝나는 2015년부터 513% 과세로 국내 소비량의 8%41만톤을 수입하고 있다. 쌀 수입 문제는 공급의 과잉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장 질서 혼란이라는 악영향도 미치고 있다. 지난 2014년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수입쌀의 불법유통 적발현황은 총 1,131, 1788톤으로 이 중 84%953건이 원산지 허위표시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농가는 정부가 공급량 과잉을 해소시키기 보다 오히려 수입을 통해 심화시키고 있으며 수입쌀의 원산지 허위표시로 인해 국내산 쌀의 시장 경쟁력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대한 농가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미 20년 동안이나 유예시켜온 농산물 시장 개방을 더 이상 미루게 된다면, 유예 연장 종료 이후 농산물 의무 수입량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쌀 관세율을 농업협정 범위 내 최대 수준인 513%로 책정하였으며 이후 수입량이 일정 수준 증가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관세율을 높여 국내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긴급관세(SSG)를 적용하여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수입쌀의 부정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수입쌀, 국산쌀 혼합판매를 금지 및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의 문제가 이렇게 상반된 가운데 그렇다면 관리의 문제 과연 어떨까? 관리의 문제또한 농가와 정부의 입장이 다르다. 농가는 안일한 정책과 생산관리 실패로 인해 쌀 값의 저하를 가져왔다며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113월 농림수산식품부는 쌀 산업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통해 매년 70만톤의 과잉 물량을 예상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4만 헥타르에 타작목 재배를 추진하고, 정부쌀 할인공급과 가공용 쌀 재배단지 조성, 핵심가공기술 개발을 통해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를 꾀했다. 또한, RPC(미곡종합처리장)의 통합 규모화와 쌀 자조금제(미곡 재배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기금 조성, 소비확대를 위한 조사와 연구, 홍보 활동 등을 벌이는 것) 도입과 관세화 논의를 마무리하고 조기에 추진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쌀 산업발전 5개년 종합계획은 위에서 말한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전면개입을 제외하고 모두 실패 또는 무산으로 돌아갔다. 또한 풍작에 대한 예측은 했지만 관리가 제대로 돼지 않았다. 농촌 전문 연구소 GS&J인스티튜트의 159호 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계절진폭(전년 수확기 평균 쌀가격 대비 올해 수확기 쌀가격 변동폭)의 변동성에 대한 정확한 규정없이 담당자의 임의적인 판단과 당시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시장 격리와 방출이 결정하여 불안정성을 가중시켰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와 같은 임의성은 정부의 쌀 비축량 목표 17%를 실제로는 11%에서 35%까지 크게 변동시켰으며 비축미에 5년차 이상의 다량의 묵은 쌀을 포함하게 만들었다. 이는 비축량 관리와 품질 유지 실패뿐만이 아니라 현재 쌀 수급문제에 역계절진폭(비수확기의 쌀값이 전년 수확기보다 떨어지는 현상)까지 불러오고 있는 상태다.

 

  물론 이에 관해 정부쪽에서도 나름의 입장이 존재한다. 정부는 쌀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해 타품목 재배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로 2014년도에는 전년 대비 벼 재배 면적이 2.1% 감소했으며, 역계절진폭에 따른 쌀값의 저하를 막기 위해 RPC(미곡종합처리장)에 벼 매입 지원자금을 약 14천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더해서 올해 새누리당과 정부는 10월 초에 쌀 초과물량 시장격리를 2016년살 쌀을 연내 일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쌀 매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 쌀 공급자체의 감소는 주식으로서의 위치한 쌀이 대흉년을 맞았을 시 대책이 미비하다. 계속적인 정부 주도 쌀 매입도 결국엔 재고량 증가와 재정 부담을 낳고 있기 때문에 미봉책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현재의 매입한 쌀에 대한 처리는 선입선출법으로 처리되지만, 소비자들의 묵은 쌀에 대한 외면으로 인해 쌀의 고미화(시간의 경과로 인한 쌀의 산화, 주로 묵은쌀을 지칭)를 진행시켜 종래엔 악성 재고를 만들어내고 있다. 해결책으론 대북지원과 저소득층 쌀 지원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행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 쌀 매수는 정부의 명목금액과 시장 실질금액의 동일화에 의해 농가 경제 이득이라는 장점이 점점 퇴색되고 있으며 정부의 재정 부담까지 안겨주고 있다.

 

  정부의 쌀 공급·생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농가의 시름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가하면 그것도 미지수다. 농가의 실질소득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농협조사 월보에 의하면 농가의 소득 수준은 1990년대 도시 근로자 가구 소득은 97.2%로 거의 비슷했지만, 200080.5%로 떨어지더니, 60%대까지 떨어졌다. 현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일각에선 쌀 유통의 복잡함을 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쌀 유통과정은 농민-농협-민간 미곡종합처리장-도매업체-유통업체(소매업체)-소비자의 형태로 매우 복잡한 유통 단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런 복잡한 구조의 각 단계에서 운송비와 마진이 붙으므로 소비자 가격은 초기 가격의 몇 배로 불어날 수 밖에 없으며,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의 피해를 낳고 있다는게 이 주장의 골자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주장에 허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그래프는 현재 연 평균이 최종집계된 2010년도부터 2015년도의 수확기의 원산지 평균 가격과 소매 평균가격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복잡한 유통과정에도 불구하고 원산지 가격과 소매가격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농가의 실질 소득의 저하와 소비자가의 상승을 초래하는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일부분에선 높은 생산비를 들고 있다. 밑의 자료를 보면 연간 생산원가는 최소 50%에서 최대 70%까지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판매원가에 비해 높은 생산원가가 농가 실질소득의 저하와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의 장애인 것이다.

 

 

 

  농가는 농민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와 토지용역비의 가파른 증가 그리고 농업기계화에 대해 정부가 방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 정부는 농업생산기반정비사업, 농업의 현대화·기계화, 용수 공급을 통한 농가소득 증대 등, 여러 정책을 내놓았으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책임을 회피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쌀 문제는 농민의 생존권 문제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쌀 문제는 복잡한 원인관계 속에 놓여있다. 이렇게 꼬인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해결방안은 정부의 적극적인 쌀 시장 관리와 심층적인 분석을 통한 실질적 대책 마련이다. 아무리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다지만 아직까지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쌀 수급 문제는 식량 주권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렇게 중요한 쌀 수급문제에서 정부는 그동안 무사안일한 방관을 유지했다. 20년 동안의 유예기간 동안 국산 쌀 경쟁력 향상을 거의 방치해두었으며 그로 인한 시장 개방의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이 안게 되었다. 그에 더해 생산 관리의 허술함으로 인해 쌀 가격의 불안정성을 초래했고 재고 관리도 실정에 맞지 않아 고미화로 인한 악성 재고를 양상했다. 뿐만 아니라 농가의 실질 소득이 급락하는 가운데 실질 정책을 내놓지 못해 쌀 생산비의 고액화까지 불러일으켰다. 정부의 방관이 초래한 복잡한 쌀 문제 속에서, 식량주권을 위한 최소한의 생산성을 위해 더 이상 쌀 수급 문제를 생산자인 농민에게만 넘길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민 인구는 300만 명 선마저 무너져, 전체 인구 중 6%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6%도 안 되는 수가 우리나라 국민을 먹여살 리고 있는 것이다. 백 씨를 포함해, 정작 그렇게 우리를 먹여 살리던 이들이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할 위협에 처해 거리로 나섰다.

 

  백남기 농민은 단순한 시위 참가자가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농촌 문제의 한 단면이다.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그를 민중총궐기에 참가하게 한 원인인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농업문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국가 폭력 사태로 답할 것이 아니라 한국 농업 시장 문제의 전반적인 재고로 답해야 할 것이다.

 

 

-돌로레스 엄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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