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거리의 기억

 

 

 

 

 

 

 

 

1112

처음에는 경악이었고 다음은 의심이었고 마지막은 분노였다. 하지만 답은 하나였다. ‘일단 나가야겠다.’ 솔직히 집회에 나간다 해서 무언가가 바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집회가 개인에게 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목소리를 내고 주장했다는 권리 행사의 실현이 아닐까 싶다.

추위가 걱정돼서 입고 온 옷이 무색할 만큼 1112일 그 날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오후 2시부터 여성대회에 참가했다. 한차례의 소란이 있었지만 평화로운 시위였다고 기억한다. 서로 노래를 부르고 앞에 나가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였다. 여성대회의 기조는 차별 없는 평등 집회였다. 다양한 몸, 다양한 생각, 다양한 지향을 아우르는 대회였기에 다양한 사람이 어울릴 수 있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강남역 10번 출구(페미니즘 페이스북 페이지)부터 성소수자 관련 협회까지 많은 단체들이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편안하게 참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이제까지의 시위에서 소외되었던 보편인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전국민에게 자괴감을 주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자신들에게 국민이 부여한 지위를 사적으로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다. 이들이 한 일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사회 공통의 문제가 대두되면 주변인들은 밀려나는 법이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두고 희화화하는 많은 단어들이 발생했다. 이는 곧 우리 사회 속 주변인들의 인권도 끌어내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미스 박’, ‘강남 아줌마등으로 발현된 희화의 방향은 결국 여성 혐오와 소수자 혐오로까지 넘어갔고, ‘이런 중대한 문제에서 인권같이 국소적인 문제를 이야기해야하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성대회 발언자 중 한 분의 말과 같이 보편인권이 국소적인 문제라면 누구의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을 수 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 문제는 전국민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은 여성 희화화로 이어졌으며 그것은 여성혐오로 2차 피해를 야기했다. 그 날의 시위가 우리에게 주었던 또 다른 의미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억압이 존재하는 시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주권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듯이 인권 실현 역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국민 주권과 인권 실현은 함께 가는 것이지 하나를 억압하여 다른 하나를 이룩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한다.

- 돌로레스 엄브릿지

 

 

 

 

 

1203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촛불집회가 지속되던 중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며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모인 민심을 비하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 반박이라도 하듯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회의 새로운 풍속을 만들며 더 크게 타올랐다. 광장에 LED 촛불이 등장하고 횃불이 나타났다. LED 촛불을 판매하는 가판대를 집회가 진행되는 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촛불대신 큰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시민들도 눈에 띠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23일 행진이 한창이던 독립문역 앞에서 노래가 울려 펴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반복되는 가사와 익숙한 리듬으로 행진 대열에 있던 남녀노소 모두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사가 전달하는 의미는 무거웠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흥겨웠다. 집회와 시위는 엄숙하다는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거리의 기억이 형성되는 시점이었다.

 

- 그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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